그냥 가만히 흘러가고 싶을 때.
난 미용 행위를 귀찮게 생각한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주는 옷을 입고, 미용실에서는 '단정하게 해주세요'라는 말만 해 왔던 탓도 있을 거다. 처음으로 혼자 옷을 사러 나왔던 날, 결국 가게 몇 곳을 돌아다니다가 지갑 속에 있던 돈을 하나도 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지금이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옷을 하나 살 때에도 옷장 안에 있는 다른 옷들과의 코디를 고려해야 하고, 머리를 할 때에도 머리 색이나 펌에 따라서 스타일을 바꿔야 할 것 같은, 그런 모든 세세한 변화에 신경 써야 하는 행위를 싫어하고, 못한다. 사실 '귀찮아한다' 가 더 옳은 표현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난 미용실이 좋다. 물론 어떤 머리를 할 것인지 고르고 중간중간 잘 되어 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순간들은 귀찮고 불편하지만, 조금 딱딱하지만 편한 의자에 앉아 내 머리를 맡긴다는 기분이 좋다. 나보다 가위질을 몇십 번, 백번, 아니 천 번은 더 했을 사람한테 머리 손질을 맡기고 눈을 감곤 한다. 눈을 뜨고 있었으면 분명 들려왔을 형식적인 대화들은 멎고, 미용실의 초침이 째깍째깍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잠시 모든 것을 놓는다. 이 시간만큼은 나 혼자만의 시간이다. 창문 밖에는 바쁘게 승용차들이 지나가고 행인들이 추위 속에 발걸음을 옮기지만 난 그저 가만히 검은색 의자에 앉아 가위 소리를 음악 삼아 흘러간다. 서걱. 서걱. 그 소리와 함께 내 생각도, 내 마음도, 그저 흘러간다.
그 기분이 좋아서, 그저 힘없이 흘러가고 싶어서 이따금씩 미용사 분께 부탁한다.
"저기, 오늘은 좀 천천히 잘라주실 수 있나요."
처음엔 당황해하셨지만, 이젠 그러려니 하고 잘라주시는 미용사 분께 고마움을 느끼면서 눈을 감는다.
한 달에 한 번씩. 너무 자주는 아니지만 적당히 필요할 때 즈음에, 나는 머리를 손질하러 미용실에 간다. 몇십 분이 지나, 손질이 끝나고, 계산을 하고 거리에 나올 때 나도 모르게 움츠려든다.
이렇게 삶이 정신없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