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사라졌다.

유년기 동생의 죽음

by Noname

동생이 사라졌다.

다들 죽었다고 하는데,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내 동생이 나를 버리고 죽었을리가, 없으니까.


7살이었다.

유치원 졸업식이었다.

11월 겨울이었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너는 얼마나 추웠을까.

수없이 물에 빠지는 너를

물에 빠져, 그 공포와,

숨통을 조여오는 고통과,

온몸으로 스며드는 물과,

살을 에는 그 추위 속에서,

죽어가는 너를


수도 없이, 상상했다.


물을 볼 때마다, 경외심이 들었다.

사람을 살게도 하고, 사람을 집어삼키기도 하는 그 물에 대해서



그 사실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너 때문에 죽었어. 네가 동생을 챙기지 않아서.'

라는 말.


후천적으로 나는 기억력이 나쁘다.


물론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의 기억은,

자연적으로 사라져버렸지만


오로지,

1학년 때부터는 코피를 매일 한바가지씩 흘렸고,

3학년 때에는 거식증에 가까울 정도로 매일 토를 했다는 사실


그래서 매일 누워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여 피를 빼냈던, 뚝뚝 떨어지던 핏방울과

그래서 매일 스스로 바늘로 열손가락, 열발가락을 번걸아 따거나,

한꺼번에 따면서 봤던 휴지에 번지던 벌건 핏방울



그 외에는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걸

지우기 위해 살았다.


내 방어기제는 '기억상실'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남동생이 태어났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동생은 5살 짜리,

들리는 말에 의하면

똑똑하고, 깔끔하고, 나를 챙겨주고, 내 모든 짜증을 다 받아주는 그런 동생이었다.


지금 동생에겐 미안하지만,

갓난 아이는, 내가 찾는 그 동생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잘해주었다.

또다시 사라져버릴까봐 두려웠다.


그 무렵, 나는 남자아이 옆에 앉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 마저도, 선생님께 수치를 당하고,

다시 덩그러니 어둠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세상에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동생조차 나를 버리고 사라져버렸으니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었다.

동생이 사라져버리고, 아버지는 앓아 누우셨고, 엄마는 냉담해지셨다.


밑으로 여동생과, 남동생이 태어난 후론,

나는 미운오리 새끼처럼

'나만 없으면' 완벽해 질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동생이 사라지기 전, 우리 가족이 행복했던 때,

'엄마, 아빠, 나, 상록이' 이렇게 넷이 있는 가족이 이상적이었고,

나만 없으면 딱 그 구성원인데, 나만 이상하게 끼어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나는,

정말로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전처럼 사랑받지 못하고,

무얼 해도, 인정받지 못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건,

무책임하고 나쁜 거라고 생각했다.

깊은 슬픔 속에서 모두를 고통 속으로 빠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죽고 싶었지만, 죽을 수 없었던 이유,

나를 알고 있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러니까, 부모님이 살아 계신한,

나는 그런 고통을 줄 수 있는 자격이 없는 존재였다.

나 때문에 동생이 죽었으니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나면, 딱 한 시간만 살고 싶었다.

겨우겨우 살아내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간혹 부모님이 돌아가시길 바란 적도 있었다.

그래야 내가 죽을 수 있으니까.

정말로 그랬다.


35살이면 절에 들어가고 싶었다.

혹은 40살에 죽고 싶었다.


제발, 신이 있다면, 사고로 저를 죽게 해주세요.

언제든 죽고 싶었던 나는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고, 나로인해 슬퍼할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강한 집착으로 모든 사람들을 멀리했다.



그 어린 시절

초등학교 4학년 생이 쓴 시는

'동시' 대회에 나가지 못했다.

이미 '동시'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쨌든 살아야했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남동생을 찾는 노력을 시작했다.


전학 온 연하의 남학생을 보면 무조건 가서

'좋아해' 라고 말했다.

상대방의 반응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의 사라진 동생인지 확인 하는 작업이

'좋아해'라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동생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벌건 피를 보며 고통와 절망 속으로 점점 더 깊이 스스로 침잠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자전거를 타다 수차례 크게 다쳐, 고통스러웠던 날들

하지만 차마 부모님께는 혼날까봐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 감내 했던 날들과

중고등학생 때 한차례씩 당했던 교통사고, 외적인 흔적이 없어, 비밀에 부쳐놓고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10년이 넘도록,

매일 밤, 스스로 사혈을 했을 때, 고여있던 피와

뜸을 뜨며 태웠던 나의 살갗, 그 흉터들


그게 죽지 못하는 나의 소박한 자해였다.

교통사고 경험 이후로는 죽음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눈앞에 깜깜해졌다가, 눈이 떠지면 재수없게 산 거고, 눈이 떠지지 않으면 죽은 거구나.

그렇게 받아들였다.

언제든지 죽을 수 있구나.



헤르만헤세의 데미안과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 아예 미쳐버렸을 것이다.




내 이상형은 크게 두 부류가 있었는데

1. 연하 : 오빠같은 동생

2. 연상 : 우리 아빠 혹은 법정스님, 이태석 신부님, 박노해 교장선생님



남동생이 죽은걸 머리로만 알던 나는

대체 '오빠같은 동생'이 왜 내 이상형인지 알 길이 없었다.


대학생이 되어서


수없이 생각했다.

그게 정말 내 탓이었을까

어른들도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라도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지 않을까

어찌보면 기억이 없기 때문에 정말로 내 탓일지도 모르지 않은가


어른들을 용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냉정하고 쌀쌀맞게 살기엔

사람들을 너무나 좋아한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정없이 살려고 해도

그런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죽어도 누구도 슬퍼하는 사람이 없게 살려던 나의 계획은 실패했고, 사랑하기 시작했다.


20대에는

충분할 만큼 남자친구들을 만났다.

90할이 연하였고, '오빠같은 동생'들이었다.


새로 나타나는 모든 '오빠같은 동생'들은 찜을 해두고,

여자친구가 있던 없던,

결국 나를 보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늘 의문의 패턴


'주변에 맘에 안드는 사람 있으면 상아 소개 시켜줘'

라는 말이 돌 정도로,

다들 그렇게 어디로 떠나버리는 것이다.



아니, 떠나버리지 않으면

떠나도록 만들었다.



더 재밌는 사실은

초등학생 때,

친척 동갑내기가

"한 사람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랑,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을 택할래?"

했을 때, 나는 가차 없이 후자를 택했다.



상대가 떠나지 않으면,

내가 떠났다.



늘, 나는 당신 한 명을 만나기 보다는,

'나누는 학교'에 있는 다수의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고 싶다며


늘, 나는 당신 한 명과 함게 하며 가정을 이루기 보다는,

아프리카에 사는 결핍된 친구들에게 사랑을 줘야한다며


늘, 나는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어디론가로 떠나야한다는 관념이 있었다.

아프리카, 코스타리카... 폭력적으로 평화를 꿈꿨다.



늘 나의 이상형에 대해서 '거북이'라고 표현했다.

어딘가에 있을 그 거북이는 지금쯤 '태평양'을 헤엄쳐 오고 있어서

나에게 이르지 못한 것이라고.

느려터졌다고,



내가 찾던 거북이는, 죽은 동생이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문득 크리슈나 무르티가 헬렌 니어링에게 대한,

그 냉살기가 무엇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에겐 내가 가는 길에 있어 함께 할 동반자가 필요하지,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는 일상적 연애라는 건, 아마 깨달은 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에고이다.


마음공부를 바탕으로 유추한 나의 패턴은 다음과 같다.


1. 동생을 찾는다.

2. 동생인지 확인한다.

2-1 동생이 아닌거 같으면 가차 없이 버린다.

2-2 동생이 맞는거 같으면 잘 지내다가, 갑자기 대의명분을 들먹이며 마음속으로 버리기 시작한다.

2-2-1 마음속으로 버리기 시작했을 때, 상대가 눈치 채고, 나를 버리면, 버릴까봐 두려워서 집착한다.

2-2-2 마음 속으로 버리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사랑을 주면, 더 잔인하게 버리기 시작한다.

2-2-3 이러나저러나 종국에는 떨궈버리고, 너는 나를 버리고 가버렸다고, 피해자인 척하고, 슬퍼하고, 그리워한다. 나를 그리워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정신병자 같지만, 지금까지 저렇게 살아왔다.

연상을 만났을 땐, 보통

갖기 싫은데 남주긴 싫어서 붙들고 있거나,

존경할만 하지 않다고 무시하거나,

헤어져도 크게 타격이 없었다.


보통, 외적인 조건에 따라 시비분별 하고

탐욕으로 붙들려고만 했다. 마치, 장난감이라도 된듯.


왜냐하면, 나는 동생을 찾아야하니까.




마음공부를 하면서 알게된 충격적인 사실은

헤어지고나서 충격이 컸던 상대들 중, 80%가 누나나 형이 있는 남동생이었던 것.

나머지 10%는 외아들이거나, 장남이었는데, '경멸' 수준으로 싫어했다.

나머지 10%는 죄책감만 느꼈다.


그러니 얼마나 정신이 나간 행태인가.



저는 정말 인간 이하였습니다.

그 죄책감으로 31살 이후로는 사람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공식적인 연애는 27살이 마지막이었지만,

사람이란게, 지버릇을 개주기가 쉽지 않으니, 어떻게 썸이라도 타고 있었던 것이죠..


동생이 죽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고,

무의식에서는 지속적으로 동생을 찾아 다니면서

동생이 아니면 버리고

동생인 것 같으면, 너도 사라져버릴거라는 두려움에 휩싸여 먼저 미워하고, 버려버린 것입니다.


사람답게 살았어야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참회하고 사람답게 살겠습니다.


그 사람답지 못했던, 인간 이하인 저 역시 인정하고 사랑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

제 삶에 와서 저로 인해 고통 당했던 분들께 참회하고 또 참회하고, 수없이 참회하고 있습니다.


상처를 준 사람도, 상처를 받은 사람도 없었습니다.

버린 사람도, 버려진 사람도 없었습니다.


불완전한 한 인간이,

유년기에 동생을 잃은 한 인간이,

죄책감으로 점철되어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온갖 것들을 다 합리화하며 살아야만 했던 한 인간이,

가엾고 안타까웠습니다.




물론 지금도 대의를 위해서 저는 연애는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 또한 저의 에고입니다.


제가 품은 대의는

우주 평화입니다.


물론 그 대의를 이루는 데에

연애가 필요하다고 한다면 기꺼이 따르겠지만,


저는 참말로


제 남동생이 사라진게 아니라

죽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저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굴레 대로 또다시 같은 실수를, 잘못을 반복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동생이 죽었고,

동생이 죽은 것이, 제 탓이 아니라,

동생이 죽은 후로,

제가 느끼고 살아왔던 그 삶을 통해

지금의 저를 만들기 위해서 였다는 것 말입니다.



동생이 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제가 동생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리고 사랑하고 있는지,


동생이 저의 내면에서 저를 지켜봐주고, 돌봐주고 있었다는 것 역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오늘, 말입니다. (자정이 지나서 어제가 되었네요)


35년 만에,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33년이 넘도록 누구에게도 제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유년기 동생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반적인 사례를 검색해보다가

찾지 못해서,


혹시라도 저 같은 분이 계시다면 도움을 드리고자 글을 씁니다.



정말 간절히,

당신의 삶에 왔던 그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이

축복으로 전환되기를


간절히, 마음을 다해 바라고 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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