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야, 너 찐따냐? 왜 상의를 안하고 그렇게 혼자 고민하다가 이렇게까지 만들었어?
"언님, 아시잖아요, 저 완전 쩌리인거. 모르는 사람한테 볼펜도 못 빌려요."
거의 13년의 세월이다.
뉴질랜드로 떠나는 언님은 내게 내가 너를 잘못 봤던거 같다고 하셨다.
그렇게 안 생겨서 독하기도 독한 놈이 본인이 있는데도 미안해서 말 한마디 못하고.
어디가서 그러지 말고 뭐든 나한테 말해.
10여년 만에 돌아온 서여의도에는 여전히 언님이 계셨고,
언님은 누차 내게 말씀하셨다.
"상아야, 이상한거 하지 말고. 주류가 하는 걸 해."
회사도, 직무도, 투자도 모든게 그랬다.
주류가 하는 것들
어릴 때는 패기가 있었다. 좌우명이 '어디로든 길은 있다.'였다. 돈에 그다지 얽매이지 않게 해주신 부모님 덕에 속편하게 살았던 덕인 것 같다.
그러니 그 당시 3D 였던 직종에서 그 중에서도 희귀한 직무를 하겠다고, 여기저기 굴러다녔지.
지금이야 '오 IT!"하고 감탄하지만, 실제로 그 당시 IT는 3D였다. 주류를 지원하는 사이드 업무.
예산이 아까워 인건비를 절약하려고 아웃소싱하는 직무
당시 유수의 대기업에 소개를 해주겠다던 교수님과 지인분들이 계셨지만 마케팅이니 뭐니 하는 직무는 딱 질색이었다.
왜 그랬을까.
고리타분한 생각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선택한 것들이 주류가 되는 시대가 언제나 온다는 이야기이다.
진따같은 내 성격에도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에 있어서는 눈에 불을 켜고 찾아가서 묻고, 배우고, 해내고 말았다.
일이 아닌 이상, 자질구레하게 누군에게도 말을 걸거나, 마주치는 걸 불편해해서
아무리 친한 여직원분이라고 해도 화장실에서 마주치지 않으려고 자리로 되돌아오는 진짜 최고의 찐따랄까.
그런데 진짜 웃긴건, 엄마가 인사를 잘 하라고 했다는 이유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경비원분들이나 미화담당선생님분들이나 버스기사분들이나 점원분들이나 일단 마주치면 자동반사로 인사는 잘하니 또 이상하게 인싸로 보인다는게 함정이다.
하여튼 그냥 자동반사로 인사를 하는 소심한 찐따라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