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좋아졌다.
상담 5회기 지난 번에 이어 엄마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4회기 상담 이후, 엄마를 찾아 뵈었던 일과 장미 100송이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랐던 그 어린 시절의 소망을 이야기해드렸다.
그리고, 삶에 있었던 나의 모든 선택에서 엄마가 영향을 미쳤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엄마 말을 정말 잘 들었네요."
선생님께서 말씀 하셨다.
지난 번 글에도 적었지만, 엄마에게 나의 짝사랑이 끝나다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드렸었다.
선생님은, 그때 마음이 어땠는지를 여쭈어보셨다.
그저 우스갯소리처럼 넘겼던 그 말이, 선생님의 질문에 가시처럼 콕 찔렀다.
눈물이 났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미움의 크기만큼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엄마에 대한 미움이 걷히고, 엄마를 진심으로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무방비상태로 드러나버렸다.
선인장을 꼬옥 끌어안고 보낸 시절을 지나, 대학교에 진학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자 엄마를 자주 볼 수 없게 되면서 서서히 사람들에게 많이 듣는 말이 있었다.
"너는 참 사랑이 많은 아이야."
나는 정말 마음이 여린 편이다.
길을 지나다 보이는 개미 한마리, 어쩌다 사무실에 들어온 벌레나 벌들을 보면
사람들이 죽이려 할때마다 부리나케 달려가서 아니라고 내가 내보내겠다고 끝내 무사히 밖으로 돌려보내곤 했다.
기후변화에 열을 올리며 화를 냈던 이유도,
단지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추구된 모든 것들이 초래한 결과,
방글라데시 작은 마을이 물에 잠긴 일, 빙하를 잃어 쉴곳을 찾지 못한 북극곰이 너무 먼 거리를 헤엄을 치다 익사하는 일, 고래들이 낚시줄에 걸려 익사하는 일
그 모든 일들이 너무도 내 일처럼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었다.
지나친 감정이입일 수 있다.
내가 생각해도 지나치다.
대학생 시절 본인의 좋지 않은 일을 말했던 친구 두명이 "너는 너무 네 일처럼 내 일을 생각해서 깊이 슬퍼하기 때문에 뭘 말하고 싶지 않아."라고 말했을 정도로.
연락을 자주 하지 못하는 이유도 사실은 그런 비밀이 있었다.
누군가 그 날일을 말하면 나는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비슷한 경험을 한 것같이 감정소모가 발생한다.
클라이언트와 한판하고 와서 그 짜증과 원망을 늘어놓으면 나는 그 짜증과 원망을 내 몸으로 흡수해버린다.
왜 이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된다.
그래서 대둔산에 있을때, 많은 사람들이 내게 자신들의 깊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위로를 받고 내게 진심으로 고마워했었지만
그때는 명상을 매일매일 꾸준히 하던 때라 그 모든걸 감당해낼 수 있었다.
상대방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반감시켜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어려운 누군가를 단순하게 돕는게 아니라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 욕구가 있다.
물론, 도움을 청하는 경우에만
나는 지금도 사랑이 많은 사람일까
내 마음과 몸이 여유롭지 않을 때에도 사랑을 뿜어낼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러러면 운동도 명상도 꾸준히 해야겠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자가최면을 배울때, 내 안에 있는 아주 큰 사랑을 본적이 있다.
그게 사랑이었다. 자주 그 때의 기쁨을 환기 시켜야겠다.
박노해 시인께서 말씀하셨듯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는 것
작지만 끝까지 꾸준히 밀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삶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