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605 뻔한 레파토리

매달 뻔해도 너무 뻔하다.

by Noname

어린 시절부터 아주 뻔한 레파토리가 있다.


달거리 전 그 언저리의 시가에 물밀듯이 밀려오는 회의감


부여잡고 있을 걸 일부러 만들지 않아서, 삶에 아쉬울게 없다.

그러니까 종족보존의 본능에 강렬하게 저항하는 삶이란

이렇듯 호르몬의 지독한 댓가를 치르게 만들어진 걸까 싶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자연과 사람들은 충분히 많이 봤다.


내 삶을 희망적으로 만들어 삶을 연장하기 위해선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매달 이 뻔한 레파토리에 대응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계획과 이런저런 소중하고 아름답고, 사랑으로 가득찬 순간들이 필요한 법이다.


매달 너무 하지 않나

그 뻔한 호르몬의 농간에 매번 깜빡 속아 넘어가 버리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런데 사실 이 시기만 잘 넘기면 또 다시 반짝반짝 아름다운 삶이 펼쳐진다.

그리고 이 시기에도 나는 우리 동네 천을 유유히 떠다니며 얕은 물에 가서는 걷고, 다시 헤엄을 치는 오리를 보며 너무나도 행복해한다는 거다.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죠,

어쩌면 갱년기지나고 노년기에 접어들어 우울조차 찾아오지 않는다면

인생이 주는 쌉싸름함이 없어서, 그보다 더 큰 달콤함을 느끼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면 그저 너무 지루하겠지, 그리고 그때는 정말로 내가 없어진 상태로 세상을 관조할 수 있게 될까


그리하여 마지막 순간엔 자연스럽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가 바람이며 흙이며 풀잎이라는 걸 깨닫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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