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그러지 말고, 마음을 열자
요즘 멘털 유지에 가장 많이 추천되는 말이 '그럴 수 있지'인 것 같다.
그런데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을 떠올리면 나는 바로 옛날 드라마 '선덕여왕'의 미실이 생각난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사람은 안 됩니다.'
라는 말이었다.
정확히는 아래의 대사
사람은 능력이 모자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부주의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사람은 그럴 수 없어
실수를 했을 때, 냉정하게 버림받아 본 적이 있다.
사회 초년생 시절, 파견직이 뭔지 몰랐던 순진한 취업준비생은 당시 이영애와 같은 산소같은 미모를 가진 인력소싱업체 과장님의 달콤한 말을 믿고, 해외 대기업에 파견직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당시 콘텐츠 기획을 병행하던 나는 설문지의 답변 텍스트 박스 하나를 잘못 만들었다.
마케팅팀에서는 중요한 항목이었기에 500자 입력 박스를 50자 입력 박스로 만들어 놨으니, 난리가 났었다.
내부 사람이었다면 용인되었겠지만 파견직의 실수는 용납이 되지 않는다.
그 후 2년의 계약기간을 채우고, 방출되었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 뒤로 나는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사실 IT업계에서는 파견직이 흔하고, 그 안에서도 엄청난 노력으로 잘 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그 안에 속할 수 없었다.
그 경험이 없었다면, 이렇게 일에 있어서 철두철미해지지 못했을 거다.
또한, 그렇게 해서 자유롭게 직장을 옮겨 다니며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일에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현재 회사에는 한 회사에 10년 넘게 길게는 20년을 재직하신 분들이 수두룩하다.
나는 그런 충실함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언제 어디서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2010년 어느 여름날에 했던 그 실수 덕분에
그런데 사실은 얼마 전까지 내 일상에서조차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만성꼰대가 되어있었다.
실수나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
철두철미하지 못하면 불안하고, 두려워지고, 정신이 산만해졌다.
남에게는 어느 정도 관대했지만, 스스로에게는 말로만 '그럴 수 있지'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의 장기계획, 1년 계획, 반기 계획, 분기 계획, 월 계획, 주 계획, 일 단위 계획 및 시간표가 등장하지 않았겠지.
어쨌든, 다시 돌아온 건 일일체크리스트다.
수많은 계획과 일정 관리를 하다 보니 결국 본질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
못할 수 있다.
나의 15분 단위 계획표에 부합되지 않는 하루를 보낼 수 있다.
타인에 의해, 상황에 의해 흐트러질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지난주 상담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삶이 좀 더 재미있고 멋진 걸 수도 있잖아요.'
내 뜻대로 되는 건 나의 근육이면 충분하다.
사실 처음에는 그마저도 남들처럼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는 것에 불만이 있었지만, 이젠 정말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럼 이제 삶도 그렇게 즐겨보자.
큰 틀은 벗어나지 않고, 계획은 원 없이 세워.
하지만, 절대 그게 틀어졌다고 자책하진 말자.
지금 이 순간은 언제나 내게 완벽하다.
그 모든 게 나를 위해 필요한 일일 뿐이다.
마음을 좀 더 여유롭게, 너그럽게, 사랑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