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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399 내가 찾은 내 삶의 의미

우아한 죽음

by Noname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삶의 의미란 존재에 있다고 했다.

존재하는 것, 어떤 경우에도, 견뎌내고 이겨내는 것


살아내는 것.


10살 무렵부터 수도 없이 물어온 질문


삶이란 무엇인가.


마블시리즈인 '토르;라그나로크'에서 토르의 아버지 오딘은 토르가 하나만 보고 둘은 모른다고 말한다.


삶은 죽음이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

삶이 있으니 죽음이 있다.


삶의 의미는 정확하게 죽음에 있다.

삶의 목적은 죽음이다.


죽어가는 것이 삶이다.


무에서 창조된 유

유에서 소멸되는 무


탄생과 죽음

죽음과 탄생


살아가는 것과 죽어가는 것

죽어가는 것과 살아가는 것


나는 죽어간다.

그리고 나는 살아간다.


내 삶의 목적은 우아한 죽음이다.


결국 우리는 죽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


초등학생 시절 하나만 알았던 그 시절엔

그저 나로 인해 슬퍼하는 사람이 없이,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길 바랐다.


그러나 이젠 둘을 봐야할 시기다. 곧 불혹인데 아직도 유아기적 사고에 머무를 수야 없지 않은가.

가능한 내가 사랑한 이들이 나의 죽음을 깊이 슬퍼하고, 한동안 애도하되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수 있길 바란다.


우아한 죽음이다.


결코 추하거나 속되지 않고, 구차하지 않고 담백하되

충분히 깊이 슬퍼하고, 충분히 깊이 감사하며, 충분히 깊이 사랑을 느끼고


살아생전 사랑했음을 마지막 순간에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적당한 고통과 적당한 목소리와 적당히 헤어짐을 받아들일 시간적 여유와

사후 장기기증과 시신 기증이 충분히 의미를 갖을 정도의 건강한 신체가 보장되어야한다.


우아한 죽음을 위해 준비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내 삶의 목적이 우아한 죽음이 된 후로는 크게 조급해 하지 않는다.

내가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냄이 나의 우아한 죽음을 준비해 줄 거라는 확신이 있다.

존엄사에 집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지, 걸리는게 있다면 이정도로 충분한가 였다.


어제 상담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본인에게 너무 불친절하세요. 본인에게 관대해 지셔야해요. 원하시는 대로 자유롭고, 평안해지기 위해서요."


"이미 그렇게 녹초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일하시는 걸로 충분해요. 뭘 더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렇게 믿기로 했다.

나는 내 자신이 한없이 부족하다고 느껴 늘 매순간 스스로를 비난하고 개선점을 찾아 내기에 급급했다.


40년 가까이 그렇게 살았으면 되지 않나.

어차피 내 그릇이 이정도라면 그냥 이 수준에 만족해도 되지 않나.


오늘 처음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많은 돈을 벌진 못해도 충분히 내 자신을 위할 정도는 된다.

어차피 그렇게 물질적인 욕심이 많은 편도 아니다.


나그네 처럼 살다갈 인생이라는 걸 아는데 뭐 그렇게까지 소유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언제든지 미련없으려면 그 편이 수월하다.


그런데 타인과 같아지기 위해 노력하면서 원하지 않는 걸 원하려다보니 힘이 들 수 밖에


홀연히, 우아하고 담백하게


삶도 죽음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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