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오사무 선생님만큼 사랑스럽다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을 윌라로 듣고 있었다.
마지막 장이 끝나고, 종이책을 집어 들었다.
마음이 뭉클했다. 내가 그를 이제야 만난 건 나의 깨달음이 그에게 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이제는 오랜 친구를 만난 것과 같은 뭉클함이 일어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
그의 글을 통해 어렴풋이 엿볼 뿐인 그의 삶이, 그의 존재가 나의 심장부를 관통했다.
깊은 카타르시스, 이건 그저 따뜻한 희망의 감동과는 다른 류의 감동이다.
헤세나 로맹가리가 주는 냉철한 비판이 주는 희열이 아니다.
그의 눈을 오랜시간 마주치고, 그의 영혼과 이야기함으로써 치유 받은 영혼의 울림이다.
어떤 사람이 사람을 만나길 꺼리게 되는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테지만
나에게 있어서 사람을 만나길 꺼리게 되는 이유는
영혼의 소통에 있다.
명상과 독서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이런 울림을 느끼게 되면 그 충만감에 도취되어 일반적인 관계가 주는 행복을 어리석게도 등한시 하게 된다.
삶이란 무엇으로 이루어진 것일까
뇌신경가소성 확보에 인간관계와 사회화가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것을 배우기 전까진 지나치게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그럴수록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거다.
그러니 찾을 필요가 없다.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음에 감사하지만
그건 내가 그 사랑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기에
나는 아쉬울 것이 없다.
그러니 내게는 책과 명상과 운동이 내 삶의 원소가 된다.
한때는 그러한 것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한 적도 있었으나 결국 고독만이 나를 구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쇼펜하우어 선생님
다자이오사무 선생님 만큼 사랑스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