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풋에 따라 다르지
결국은 타산지석, 반면교사다.
물론 나는 그러한 성향이 지나쳐 쇼펜하우어 선생님의 말대로 '자기 혐오'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 '자아성찰'과 '자기 수정'은 본인에게 결코 독이 되진 않는다.
그 정도가 지나처 자기 혐오에 이르는게 위험한 일이겠지만,
자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전제한다면 독이 될 일은 없다.
아마 '자기 혐오'의 경우는 행동, 사고체계, 마음가짐, 생활 방식, 습관 등을 개선이나 수정하지 않으면서 그저 자신을 한없이 벼랑 끝으로 내모는 걸 말하는게 아닐까.
인풋이 자아성찰과 자기혐오일지라도 아웃풋이 자아존중을 바탕으로한 자기 개선이면 될 것 같다.
어제는 그런 글을 올렸지만
사실은 내 안에 존재하는 그런 가부장적(회사 대리님은 그걸 여성에게 빗대기 위해 가모장적이라고 바꿔 말씀하셨다. 우리는 한참 웃었다.)인 면모가 그 상대와 부딪히는 거겠지.
그리고 내 안의 우월감과 열등감이 같이 반응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거기서 한발자국 물러서 그걸 인식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큰 차이를 가져온다.
그걸 인식할 수 있다면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내가 더 좋은 선택을 할수 있게 된다.
또한 상대로 하여금 내 안의 모난 부분을 대패질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감정을 기반으로 하는 관계에 있어, 감정적 동요가 없을 순 없고, 그 과정에서 잠시 감정적 동요가 표출될 순 있겠지만 상대를 진정으로 아끼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 순간의 끄달림이 지속되록, 그리고 극에 치닫도록 두진 못한다.
그건 아주, 부끄러운 일이니까.
후에 감당할 수치짐과 죄책감을 너무도 잘 아니까.
사람이 다듬어져 가는 과정에서 실패를 겪은 비관과 염세주의가 팽배한 철학이 많은 이의 공감을 살 수 있는건, 그만틈 사람들이 무력감에 빠져있다는 이야기겠지.
그런데 거기서 자아성찰마저 하지 않는다면,
그저 "당신의 인생이" 힘들어도 됨을 허용한 채로, 그렇게 살아가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