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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name Dec 30. 2023

마흔-344 자아성찰은 정말 자기혐오인가

아웃풋에 따라 다르지

결국은 타산지석, 반면교사다. 

물론 나는 그러한 성향이 지나쳐 쇼펜하우어 선생님의 말대로 '자기 혐오'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 '자아성찰'과 '자기 수정'은 본인에게 결코 독이 되진 않는다. 

그 정도가 지나처 자기 혐오에 이르는게 위험한 일이겠지만, 

자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전제한다면 독이 될 일은 없다. 


아마 '자기 혐오'의 경우는 행동, 사고체계, 마음가짐, 생활 방식, 습관 등을 개선이나 수정하지 않으면서 그저 자신을 한없이 벼랑 끝으로 내모는 걸 말하는게 아닐까. 


인풋이 자아성찰과 자기혐오일지라도 아웃풋이 자아존중을 바탕으로한 자기 개선이면 될 것 같다. 


어제는 그런 글을 올렸지만 

사실은 내 안에 존재하는 그런 가부장적(회사 대리님은 그걸 여성에게 빗대기 위해 가모장적이라고 바꿔 말씀하셨다. 우리는 한참 웃었다.)인 면모가 그 상대와 부딪히는 거겠지. 


그리고 내 안의 우월감과 열등감이 같이 반응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거기서 한발자국 물러서 그걸 인식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큰 차이를 가져온다. 


그걸 인식할 수 있다면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내가 더 좋은 선택을 할수 있게 된다. 

또한 상대로 하여금 내 안의 모난 부분을 대패질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감정을 기반으로 하는 관계에 있어, 감정적 동요가 없을 순 없고, 그 과정에서 잠시 감정적 동요가 표출될 순 있겠지만 상대를 진정으로 아끼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 순간의 끄달림이 지속되록, 그리고 극에 치닫도록 두진 못한다. 


그건 아주, 부끄러운 일이니까. 

후에 감당할 수치짐과 죄책감을 너무도 잘 아니까. 


사람이 다듬어져 가는 과정에서 실패를 겪은 비관과 염세주의가 팽배한 철학이 많은 이의 공감을 살 수 있는건, 그만틈 사람들이 무력감에 빠져있다는 이야기겠지. 


그런데 거기서 자아성찰마저 하지 않는다면, 

그저 "당신의 인생이" 힘들어도 됨을 허용한 채로, 그렇게 살아가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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