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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name Jan 02. 2024

마흔-341 별개 다 트라우마

그래서 예민하지.

언젠가 엄마에게 사과를 요구했을때, 엄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아니, 그런 거 가지고 다 상처를 받으면 대체 무슨 말을 하겠니?"


그후로 1년 간 나는 엄마의 연락을 단 하나도 받지 않았다. 

당연히 만난 적도 없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 명상을 배우고 점차 스스로 치유해나갈 힘을 얻으면서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엄마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고, 내가 받은 상처는 엄마에 대한 나의 사랑에 비하면 별거 아니라는 걸 마음으로 깊이 느꼈을 때쯤, 다시 연락을 했고, 공교롭게도 그때 엄마는 먼저 말씀하셨다. 


"엄마가 미안해. 그땐 엄마가 너무 어렸어."


맞다, 엄마는 어렸다. 


어쨌거나, 엄마의 그 모진 말들과 표정 하나하나에 섬세하게도 지극정성으로 상처 받았던 나는 

그 섬세함만큼이나 예민하고, 타인을 믿지 못하고, 늘 경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나의 예민함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가장 둔하고, 가장 수더분한 성격의 사람인냥 살았다. 


산에 올라 그 모든 것들의 임계점을 높여버리면 그런게 어렵진 않았다. 

나는 참 성격 좋고, 좋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사람의 무의식을 정화하는 방법은 마치 달팽이관을 타고 내려가는 것과 같아서 

표면에 드러나 있는 얼기설기 대충 덧씌어 놓은 별거아니어 보이는 보철을 걷어내고 나면, 

그 걷어낸 자리에 참으로 그로데스크한 뭔가가 층을 더할 수록 더더욱 흉측스럽게 모습을 드러내다가 

결국엔 생채기가 난 작고 여린 심장이 튀어나오곤 하는 것이다. 


그러니 참 지금 보면 별거 아닌 사건이

그 어린 시절엔 존재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참으로 큰 두려움으로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을 정도로 충격적인 수치심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죄책감으로 남는 것이다. 


그덕에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이 되는 것이겠지.


그 반대급부로 충분히그런 감정들을 상쇄시킬만큼의 사랑을 가득 받는다면. 



엄마는 늘 내게 말씀하신다. 


"너는 정말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어."


그런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그렇게 보낸 한 아이가 지금까지 큰 사고 없이 번듯하게 살아갈 순 없는 노릇이다. 

그게 우리 외할머니의 정성어린 기도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여튼 나라는 존재는 이렇게 저렇게 사랑을 많이 받은 덕에

기억조차 없는 그 사랑의 감각들이 다시 나를 수면위로 밀어 올리는 느낌이다. 


예민한 사람은 무의식과 의식이 맞닿아있는 사람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느끼지 않을 감정들을 나는 적나라하게 모두 느끼고 살았다. 


이를 테면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바탕으로 살의를 비롯해 

사람들이 겁을 집어 먹고, 꾹꾹 무의식 저편에 꾹꾹 밟아 묻어버린 감정들 말이다.


그걸 명상을 배우면서 더더욱 실감했다. 


나는 이 감정들과 생각들로 늘 고통스러웠는데, 어째서? 하는 생각도 했다. 


명상을 배우기 전에는 만나는 사람들의 감정에 쉽게 전염됐다. 

그건 생존본능이니까. 


어쨌거나 큰 사건이든 작은 사건이든 상관없이 

인생에 처음 겪는 모든 일들이 기쁨이자 충격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니 별개 다 트라우마일 수 밖에 없으며 


굵직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한 인간을 자연 속에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기 위한 개체로 만들기 위해 계산된 필연이라고 봐야하지 않나.


 

그냥 랜덤게임일 수도 있고. 

"아이쿠, 이 정도는 버틸 줄 알았는데, 죽어버렸네."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아마 저렇게 말하지 않을까. 


길을 가다 개미를 밟아 죽인 인간이 개미를 의식이나 하겠냐만, 

나같은 인간은 혹시라도 밟으면 진심으로 미안해하긴 하거든. 


"아이쿠, 이런. 밟아버렸네. 미안해 좋은 곳으로 가렴. 

그런데 너네는 이렇게 죽을 확률이 높아서 개체수가 많은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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