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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나무 Feb 06. 2021

북한산 영봉, 싫다는 아이들 데리고 오르기

 - 이웃집이 자주 간다길래 나도 아이들 데리고 한번 가봤더니......

누가 자주 간

둘째 아이 가정보육이 다시 시작되고 큰 아이도 방학을 했을 때였다. 어린이집 엄마가 자기 아이 데리고 자주 오른다는 영봉이 떠올랐다. 우리 딸 보다 한 살이 어린 집이다. 아이가 갈 수 있냐고 물으니 아주 잘 간다고 했다. 아이가 힘들어할 때마다 몇 걸음 앞장서서 하리보 젤리 봉투를 보여줘야 한다고 알려줬다. 


도선사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등산로 입구를 표시해 둔 나무 아치 문으로 향했다. 계단 몇 개 올라 탐방안내소 옆에 위치한 마지막 화장실을 들렸다. 두 아이와 함께 문을 통과하자마자 둘째 딸아이가 뒤 돌아 집에 가자고 한다. 첫 난관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큰 아이도 투덜투덜거린다. 날이 아이들에게 추울까, 땀이 나진 않나 살폈다. 적절히 젤리 투여하며. 얼만큼 올랐을까. 울퉁불퉁 돌길이 이어졌다. 좁아진 길을 통과하고 있는데 저만치 간 큰 아이가 빨리 좀 오라고 소리친다. 둘째는 오빠가 소리쳤다고 운다. 동생이 울자 큰 아이도 울기 시작한다. 한 사람 지나기엔 넉넉하지만 양쪽에서 마주 오면 얼른 비켜줘야 하는 좁은 길에서 하필 울음이 터졌다. 정신줄을 가만히 잡고 있는데 올라오던 아주머니가 그냥 못 가고 서성이신다. 괜찮냐 물으시길래 해탈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한참을 맴돌다 올라가신다. 마음만 고맙게 받는다. 아이들 울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린다. 춥고, 힘들겠지. 그래도 방구석에만 있는 것보다 훨씬 좋단다 얘들아. 하지만 이건 경험이 있는 나만 아는 것일 게다. 아이들에게 말로 전해질 수 없을 것이다. 올라가서 직접 느껴보자꾸나. 


바위를 오르는 아이 발이 미끄러지지 않게 신발 뒤축에 발을 대어주었다.


다시 영봉으로 오른다. 하루재를 지나면서 정말로 조금만 가면 된다고 말해준다.  영봉 팻말을 따라 내리막인 백운대길로 가지 않고 오른쪽 오르막길로 오른다. 산을 오르며 기온이 떨어지자 둘째 얼굴이 불긋불긋 해지기 시작한다. 온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온도 알레르기다. 곧 간지럽다고 하기 시작하겠네. 눈만 나오는 버프를 씌우고 장갑도 끼운다. 핫팩도 붙여준다. 커다란 바위가 연속되자 작은 아이가 재밌어 하기 시작한다. 옆에 한 발씩 디딜 수 있게 다듬어 놓은 놔두고 바위 위로만 골라 오르기 시작한다. 올라가던 길을 엉덩이 미끄럼을 타고 다시 내려가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목적지를 염두에 둔 어른들은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다. 산에서 재밌었던 기억이 쌓일 수 있게 지켜봐 준다.  큰 아이는 벌써 올라가고 없다. 더 이상 갈림길이 없으니 "끝에서 만나자" 하고는 펄떡이는 큰 아이를 놓아주었다. 


정상이다. 한 시간 조금 올랐는데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아이들도 뿌듯해한다. 좋아할 줄 알았다! 우리 서로 참아가며 오르길 잘했다. 아이들은 한눈에 보이는 풍경을 내려다보며 집을 찾아보기도 하고 구름이 흘러가는 걸 보기도 한다. 아래서 보면 거대해 보이던 인수봉이 바로 눈 앞에 보인다.   


내리막 길은 순식간이다. 큰 아이는 큰아이 걸음 크기로 성큼성큼 내려가고 작은 아이는 보이는 바위마다 엉덩이로 미끄럼을 타고 내려간다. 어떤 방법으로 내려가든 내려가는 길은 순식간이다. 온갖 진상들을 참아내길 잘했다. 온갖 어려움을 견뎌내길 잘했지? 우리의 다시 집콕 시기도 잘 지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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