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끝나지 않을 나의 아홉수
나는 누구보다 일찍 취업을 하기로 마음먹었었다. 안정적이고 높은 급여를 보장하는 전공을 버리고 남들이 놀 때 일해야하는 (급여도 적은) 업계를 선택했을 때 결심한 것이었다. 남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으니 누구보다 빠르게 성공하겠다는 다짐. 성공의 척도가 빠른 취업과 나이에 비해 높은 직급이냐고 지금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답할 수 있겠으나, 그때는 어렸으니까.
23살 인턴을 시작으로 복학해서도 지원사업을 운영했고 졸업 전인 25살 1월에 취업하여 29살까지 정말 쉴 틈없이 일을 했다. 바쁘고 정신없었던, 새벽까지 이어진 근무 스케쥴과 책임감을 짊어지고 고생은 어린 나이에 하는 것이라며 야간에 대학원도 다녔다. 그 때는 남들의 '회사에 대학원에 과대까지!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살아?' 라는 말이 내 자존감의 기반이 되었었다.
23살 인턴, 25살 첫 회사, 27살 2번째 회사를 거쳐 어느덧 29살을 3개월 앞 둔 어느 날이었다. 사내에 꽤 큰 프로젝트들의 PM을 맡아 진행하고 있었고 이 프로젝트들은 앞으로 내 커리어에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을 알았기에 전력을 다했다. 그렇게 마지막 프로젝트가 끝난 새벽 1시 나는 행사장 뒷편에서 펑펑 울며 팀장님께 퇴사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기뻐야 할 날인데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회사에서 인정도 받고 있었고, 스스로도 만족할만한 성과와 커리어를 쌓아왔고, 서울에 독립하여 사는 집도 있었으며, 오래 만난 남자친구와 안정적인 연애까지, 어린 나이에 내가 원했던 '남들이 보기에도 완벽하고 스스로도 만족하는 삶'을 누리고 있었는데 나는 왜 퇴사가 하고 싶었을까?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나고 눈물이 났을까?
그저 회사 내부 상황이 복잡하고 어려워서 그런거라고 생각했다. 사내 정치는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으며 회사에서 대한 불만은 계속 쌓여갔으니까 그렇다고 나는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팀장님의 '일주일만 쉬고 와'를 받아들였다. 일주일을 쉬고 오니 정말 괜찮은 것 처럼 느껴졌다. 시기가 딱 맞게 코로나에 감염되어 1주일 재택근무까지 하고 나니 예전의 열정을 다시 되찾은 것만 같았다.
그게 아니라는걸 깨닫기까지는 한달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