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꿈꿨던 29살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일주일 아니 사실상 코로나 기간까지 합하여 2주를 쉬고 복귀했을 때 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지 되돌아본다면 별로 큰 이유는 아니었다. 그냥 단순히 정말 오랜만에 아무 고민과 생각과 걱정 없이 쉬었기 때문이었다. 바닥난 인내심과 차올랐던 분노 그리고 사라진 열정을 모두 정리했다고 생각했었다. 절대 아니었는데, 그냥 단순히 수면 아래에 잠들었을 뿐이었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다시금 사라져 눈에 보이지도 않던 열정을 불태우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였고, 밀렸던 업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당시 회사는 과장 좀 보태 한 달에 한 번씩 업무 분장이 바뀌고 있었는데, 커리어 목표가 명확한 편이었던 나는 이 회사에서 하고 싶은 업무와 해야할 업무 사이에서 중간지점을 선택해 의사를 표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진행이 거의 확정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프로젝트는 2달 만에 모두 드랍되었고 업무 분장은 전혀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확정되었다. 다잡았던 마음과 멘탈이 곱게 접어 하늘 위로 날라가다 못해 우주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순간이었다. 시키는 일을 안하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야근을 해서라도 내가 바쁘더라도 상관없으니까 원하는 업무를 하게 해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심지어 신규업무가 아니라 이미 담당 했었던 업무였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와 나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는걸 깊이 이해하는 연차였음에도, 더 이상 개인의 성장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혼란하던 생각이 하나의 방향성으로 합쳐지며 나의 28살은 막을 내렸다.
그렇게 29살, 아홉수가 시작되었다. 1월, 온라인으로 시무식이 진행되었다. 다들 어떤 생각으로 이 시무식에 참여하고 있는걸까 궁금했지만, 타인을 이해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아 이내 생각을 포기했다. 2월 승진과 연봉협상의 시기가 다가오며 회사는 더욱 큰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온갖 소문과 카더라, 어느 팀은 인센티브가 나온다더라, 어쨌다더라. 승진 대상자였던 나는 2월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봉인상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대리' 직함만 주어진다면, 미련없이 퇴사를 해야지 생각할 뿐이었다.
함께 퇴사를 고민하던 동료들에게 물어보아 사직서를 확인하고 인사팀과 1차 면담도 마쳤다. 마지막 이직 이후 쳐다도 보지않던 구직 어플을 깔고 퇴근하면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기 시작했다. 업무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인수인계서를 작성했다. 이 회사와의 인연도 끝나가는구나, 남자친구랑 권태기가 오면 이런 기분인데 싶었다.
근데 퇴사를 결심하고서도 어떠한 열정도 다시 샘솟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회사가 가기 싫어서 모든걸 놓아버리고 싶었다. 구직사이트도 열심히 보지 않았고 괜찮은 공고가 떠도 막상 서류를 작성하면 접수를 망설였다. 그때쯤부터는 번아웃 증상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자가진단에 불과하지만 이게 번아웃이 아니라면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무것도 없었기에 번아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마침 딱 맞게 대학원 졸업시험도 합격하여 석사 논문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와중에 1월 초에 서류를 접수하였던 대기업에서 면접 연락이 왔다. 그래도 보러는 가야지... 서류 경쟁률이 높아서 면접 일정이 늦어졌다는 인사팀의 설명에 오히려 다른 부분으로 안심되었다. '이 회사에 오고싶었는데 다행이다!' 가 아니라 '아 내 서류가 그래도 합격권에 있구나'. 면접은 서로가 서로에게 맞지 않는 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였고 홀가분하게 면접장을 나와서 다짐했다. 학교도 휴학하고 회사도 쉬자. 그러자.
2월말 모든 면담을 마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업무 폴더와 장문의 인수인계서를 통째로 넘기고 웃으며 회사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29살의 나는 백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