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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식성 염소 Jul 04. 2024

지금 당신의 가정은 행복하십니까? 불륜의 비극적 결말

다큐멘터리 '애슐리 매디슨 : 섹스, 거짓말, 스캔들'

2015년 대한민국에서 간통죄 위헌 판결이 났다. 국민의 자기결정권과 사생활 침해 등의 이유로 위헌 판결이 났는데, 지금까지 보았던 위헌 중 가장 파급력이 컸다고 생각한다. 당시 갓 성인이 된 나에게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가치관과 '불륜'에 대한 정서를 피부에 와닿게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간통죄의 존재로 인한 불륜의 '형사적 처벌'만 불가능해졌을 뿐 '민사적 소송'은 가능했는데 간통죄의 오랜 존재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불륜을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때 그 광고를 보게 되었다. 

2015년 당시 신문 만화


인생은 짧습니다. 바람을 피우세요. (Life is short, Have an affair)


바람을 피우라는 광고가 한국에 등장했다며 간통죄를 진짜 폐지하는게 맞는건지에 대한 뉴스보도가 나올 정도로 저 짧은 몇 단어의 파급력은 거셌다. 애슐리 매디슨이라는 외국 사이트의 광고였는데 간통죄의 존재로 인해 한국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다가 폐지와 함께 잽싸게 신규시장 진입을 노린 것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단어의 조합을 보고 나도 두 눈을 의심했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체면치레와 불륜에 대한 거부감은 해당 사이트를 성공신화로 이끌지 못했고 심지어 검색하면 '성인키워드'라는 안내와 함께 야동사이트...가 함께 뜨는 바람에 망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2024년 넷플릭스에서 그 이름을 다시 보았다 '애슐리 매디슨 : 섹스, 거짓말, 스캔들'

출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 애슐리 매디슨>


이 다큐멘터리는 애슐리 매디슨의 성공 신화와 몰락 그리고 회원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3편의 시리즈이다. 불륜을 매칭해주는 사업아이템으로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 있는 비결에는 인간심리에 대한 분석과 그에 따른 마케팅 전략이 있었다. 실로 대단한 전략을 구사하며 전세계적인 사업으로 성장한 애슐리 매디슨은 최근 불륜의 트렌드라는 오픈채팅방의 모체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사라지기도 했고 해외 이슈에서도 애슐리 매디슨의 이름을 들어본 적 없어 아직도 운영을 잘 하고 있는 줄만 알았는데 다큐를 보며 대차게 망했다는 걸 알게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해킹'. 가장 비밀스러워야할 사이트에서 회원정보가 유출된 것이다. 애슐리 매디슨과 해킹단체는 결국 사업도 죽이고 사람도 죽였다. (우리나라에서 간통이 폐지되었던 해에 사건이 벌어졌더라..)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큐멘터리에서 확인하세요!)


출처: 넷플릭스 애슐리 매디슨: 섹스, 거짓말, 스캔들

다큐 속 인물들이 말하는 불륜의 이유와 과정을 들으며 많이 화가 났지만 나에게 있어 다큐의 핵심 포인트는 애슐리 매디슨의 CEO 노엘 비더만이었다. 불륜 매칭 업체의 대표라면 응당 굉장히 비도덕적이고 바람기가 충만하며 일부다처제를 원하는 사람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노엘 비더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아내와 함께 방송에 출연하며 자신은 일부일처제를 지향하고 한 번도 바람을 핀적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물론 당연하게도 이 모든 것은 거짓말이었고 해킹단체는 노엘의 이메일까지 해킹하여 그의 불륜 사실과 18~19세 미성년자와 관계가 있었다는 충격적인 내용까지 폭로했다. 방송과는 다르게 애슐리 매디슨의 대표는 그저 그런 사람이었던거다.

출처 : 포토뉴스 / CEO 노엘 비더만


그가 쓰레기인 것은 확실한데 여기서 나는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보통 CEO나 업체 직원이 직접 대외홍보를 할 때면 '자사 제품을 직접 써야' 고객의 신뢰도가 올라간다. 그러나 애슐리 매디슨은 정반대로 CEO가 자사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PR함으로써 성공적인 마케팅을 이루어냈다. 바람을 피지 않고 가정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는 CEO의 불륜매칭 사이트라니! 가장 비도덕적인 제품을 가장 도덕적인 모습으로 브랜딩한 것은 어떠한 마케팅 효과를 불러온 것일까.


*아래부터는 주관적인 분석과 생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애슐리 매디슨의 마케팅을 뉴스레터나 레퍼런스로 접했다면 이해하기 어려웠겠지만 다큐멘터리에서 나는 '아 저게 이유겠구나!'를 은은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애슐리 매디슨의 실제 사용자들이 자신이 사이트를 이용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듣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합리화 쩐다'고. 그리고 그들의 합리화에 CEO의 도덕성은 매우 중요한 기반이 되었을 것이라고.

(물론 오픈 메리지나 폴리 아모리와 같은 다양한 연애, 결혼의 형태가 존재한다고 하지만 이 사이트의 이용자들은 상대방과 협의되지 않은 불륜이었기 때문에 논하지 않겠음)

출처: 넷플릭스 애슐리 매디슨: 섹스, 거짓말, 스캔들


애슐리 매디슨에 가입하는 사람들도 불륜에 대한 도덕적인 거부감이나 나쁜 것이라는 학습이 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기본적인 도덕적 관념이 심히 낮은 사람이나 죽어도 사이트에 가입해야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본인의 심리적 장벽을 낮추기 위해 알게모르게 자기합리화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언론에 비춰진 노엘 비더만의 모습은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다. '나는 바람을 피기위해 애슐리 매디슨에 가입하지만, 도덕적인 CEO가 운영하는 이 사이트에 가입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만큼 나쁜 행동이 아닐 것이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불륜사이트를 운영하는 그는 바람을 피지 않는 가정적인 사람이니까 블륜사이트에 가입하는 나도 가정적인 사람이라는 착각. 노엘 비더만이 이런 부분까지 전략적으로 구성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단순히 자신만은 도덕적인 사람으로 비춰지길 바래서 일수도) 굉장히 성공적인 전략이었음에는 틀림없다. 


가장 도덕적인 인간의 비도적적 사업. 그렇기에 가입하는 나도 그렇게 비도덕적인 것이 아닐거라는 심리적 위안. 더 나아가 도덕적이고 똑똑한 사람이 만든 사이트니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

출처: 넷플릭스 애슐리 매디슨: 섹스, 거짓말, 스캔들


그러나 결국 애슐리 매디슨은 '해킹'과 '개인정보유출'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또 다른 비도덕적인 사람들에 의해 무너졌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의 기반이 되었던 노엘 비더만은 그냥 그저그런 불륜을 하는 사람이었다. 모든 것은 거짓이었고 애슐리 매디슨 회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최악을 맞이하였다. 


애슐리 매디슨은 사라졌지만 각자의 문화권에 적합한 방식으로 제2, 제3의 애슐리 매디슨은 계속 등장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아는 '사랑과 전쟁'의 마무리 멘트 '4주 후에 뵙겠습니다.'는 시즌 3가 되서 바뀐다. 그 마무리 멘트를  애슐리 매디슨 다큐멘터리를 본, 혹시 바람과 불륜의 짜릿함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지금 당신의 가정은 행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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