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잠자는 숲속의 소녀들'
나는 건강염려증이 있다. 조금만 아파도 무조건 병원을 가고 약간은 과장해서 병의 증상을 걱정하는 나를 볼 때마다 오버스러워도 이게 나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최근에 별 것 아닌 증상으로 검진 차 병원에 방문했다가 예상 외의 조직검사를 진행하게 되며 건강염려증은 폭발했는데, 온갖 최악의 결과에 대한 증상들을 찾아보며 걸리지도 않은 병에 대한 대비책을 세웠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조직검사 후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정말 그 병에 걸린 것처럼 비슷한 증상들을 느꼈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결과를 듣고 병의 증상은 다 사라졌다.
걱정과 불안이 실제로 신체에 나타나는 것. 실제 병이 없음에도 통증이나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경험해본 적 한번쯤은 다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걱정많은 사람들이 많이 느끼는데 이러한 증상이 심각한 질병으로 발현된 사례를 모아둔 책이 있다
'잠자는 숲속의 소녀들'
아름다운 동화같지만 뭔지 모르게 섬찟한 제목의 책은 스웨덴에서 난민 자격을 박탈당하고 체념증후군에 빠져 일어나지 못하는 아이들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래서 제목 또한 '잠자는 숲속의 소녀들'이다. 아이들은 어떠한 신체적 문제 없이 그러니까 의학적 질병 없이 잠에 빠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다양한 의사들이 방문하여 아이들을 진료해보았지만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해결할 수도 없었고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잠에 빠져 잃어버리고 있었다. 작가가 의사이기에 중간중간 의학적 분석이나 용어가 많이 나와 솔직히 완벽한 이해가 어려운 지점도 있었지만 아이들의 병은 결국 사회적 이유라는 것이 작가의 분석이었다.
난민 신청이라는 인생의 중요하고 중대한 사안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 스스로할 수 있는 거부 의사를 표명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를 '체념증후군'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는데, 체념이라는 마음이 몸의 큰 질병으로 드러날 수 있다니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싶으면서도 그렇게 밖에 저항할 수 없는 아이들의 상황이 너무 슬펐다.
책은 체념증후군 아이들과 유사한 8개의 사례를 소개한다.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답답하기도 슬프기도 한 사례를 보면서 마음가짐의 중요성과 사회적 상황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새삼 깨달았다. 과학의 발전에 따라 의학이 발전하고 인간의 수명은 계속해서 연장되고, 과거에는 죽음에 이르렀던 질병들을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과학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마음'과 '상황'은 우리에게 더 큰 불치병을 안기고 있었던 것이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사회적 상황과 불가피한 상황은 몸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과학이 증명할 수 없는 방법으로. 결국 사람의 생각과 마음, 그 사람들 둘러싼 환경들을 바꾸어야 해결되는 질병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을 해야만할까?
앞서 말했던 것 처럼 내가 느꼈던 증상은 '아무 이상 없어요'라는 의사의 말 한 마디와 함께 완치되었다. 책에서 나온 사례자들은 의학적 진단을 받을 수 없었기에 또는 사회적 상황으로 의학적 진단을 믿지 않았기에 전혀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때로 질병은 우리가 선택한 삶이 우리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신호가 된다."는 작가의 말처럼 마음의 병에 대한 치유는 결국 삶 그 자체의 변화, 삶에 대한 태도 변화, 그리고 공동체와 주변 사람들의 변화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과학적이지 않은 미스키토인의 종교의식을 받고 병이 나은 사람들처럼 아픈 사람을 병명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환경을 꼭 함께 봐야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환경을 변화시키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치유할 수 있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내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우는 왕자님이 될 수 있다고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