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걸 놓쳤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아이들의 잔소리가 늘었다. 내 화도 늘었다. 아이들이 말이 많아졌다는 건, 감정이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자라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이들도 바쁘고, 나도 바쁘다.
각자의 세계에서 살아낸 하루가, 저녁 식사시간에 충돌한다. 협회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저녁 강의가 생겼다. 내가 하는 날은 단 이틀, 하지만 총 횟수를 감안하면 12회다. 처음엔 괜찮을 줄 알았다. 원래 그 시간은 비워두던 시간이었다. 책과강연 스퍽깅연 한달에 한 번. 그게 전부였다. 그 외의 저녁은 오롯이 아이들의 차지였다. 하지만 고정된 강의가 생겼고, 아이들과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럴 줄 알았다. 하나를 취하면, 다른 하나는 취할 수 없는 것이 살아가는 이치 아니던가...

지난 목요일은 예외였다. 일정을 미뤘다.
아이들과 밥을 먹고, 밤 산책을 하고, 받아쓰기까지 챙겼다. 금요일 아침에도 컴퓨터 앞에서 여유롭게 일어났다. 일찍 일어난 아이들과 여유롭게 식사도 하고, 받아쓰기 최종 점검도 했다. 모처럼 괜찮은 시작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 우리 오늘 중국어도 받아쓰기 있는 날이야.”

순간 뇌가 멈췄다. 나는 그걸 놓쳤다. 아...

나는 함꺼하는 프로젝트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혼자하는 프로젝트와는 또 다른 일이다. 그래서 아이와의 시간을 줄였다.

그런데, 문득 내가 진짜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장 지키고 싶었던 건 그 프로젝트가 아니라, 아이들이었다는 걸.

나는 모든 걸 해주는 엄마는 아니다. 스스로 해낼 수 있게 두는 편이다. 내손길이 깊숙하게 가면, 순간의 결과는 물론 조금 더 낫겠지만, 육아의 본질은 독립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이를 외롭게 두고 싶진 않았다. 그저, 늘 보고 있다는 느낌 정도는 주고 싶었다.

“너희들 때문에”라는 말은 하기 싫어서 내 삶을 챙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 때문에”라는 말도 싫었다.
그보다는, “우리가 함께”라는 말이 필요했다.

그래서 잠시 멈추고,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해보려한다.

늘리는 일보다 줄이는 일이 더 어렵다.
그래도 나는 지금, 조금 줄이고, 조금 멈추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가장 지키려고하는 아이들이 보내는 신호에 대한 나의 대응이다. 아이의 말 한마디가, 이번 주의 균형을 다시 그리게 해준다. 오늘도 조금씩 자라는 초보엄마... 엄마는 언제쯤 능숙해질까?


#1년의미라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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