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 배웠습니다
우리집 마당 내 방 바로 앞에는 뿌리기둥이 엄청 두꺼운 족히 100년은 넘어 보이는 큰 나무가 있다. 거대한 뿌리를 타고 뻗어나간 나뭇가지들은 담장너머까지 펼쳐져 이파리들이 집 앞 도로 한 켠을 덮을 정도다. 뜨거운 해가 내리쬘 때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늘이 되어주고 스콜시즌에 갑자기 예고없이 비가 쏟아질 때는 임시 피난처가 되어준다. 나무 아래 마당 한 켠에는 주인아저씨가 나무로 만든 높고 넓다란 테이블이 하나 있는데 내가 이 집에 들어온 뒤로 테이블에 맞는 벤치가 하나 더 만들어졌다. 마음껏 마당에서 놀고 쉬라는 주인아저씨의 배려다. 해가 지면 담장너머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시원한 밤공기가 묵직하게 내려앉는데 이 때 나무아래 벤치에 나와 앉아있으면 나무가 차지하고 있는 담장너머 자리까지 온동네가 내 것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젯 밤에는 나무아래 앉아 노트북을 뚝딱 거리며 이런 저런 할 일을 하는데 문득 그런 나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낯선 곳에와 모든 것이 새로웠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일상을 꾸려가고 있구나. 불안하고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던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 걸까 고민하면 이것저것 시도했고 나를 끼워맞추려했던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고 현재의 나를 보며 생각했다. 나를 안정되게 만들어주는건 충만한 기쁨이 스며든 사소한 일상이구나. 내가 좋아하는 시간과 나만의 공간을 갖는 것. 그리고 그 곳에서 사부작 거리며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일상.
치앙마이에 산 지 5개월이 되었지만 사실 요즘도 가끔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일상이 비현실적이게 느껴질 때가 있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다 스치는 풍경들이 내가 살던 도심 속 잘 정렬된 빌딩숲과는 너무 달라서, 어느 오후에는 책상에 앉아있다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등산을 갔는데 매번 오르는 산인데도 오피스에 앉아있던 내가 순식간에 동남아 열대우림 한복판에 놓여져 있다는게 믿기지가 않아서, 얼마 전 밤 사찰에 기도하러 갔을 때는 깜깜한 산중턱에 비춰지는 달빛과 금관으로 장식된 화려한 절이 어우러지면서 공간을 뒤덮는 향초 냄새와 사람들의 기도소리가 섞여 묘한 기운에 압도되어 그곳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절을 바라보았을 때도.
여전히 믿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순간들이 내 생활 곳곳에 존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를 지탱해주는건 마음이 요동치게 감동적인 순간들이 아니라 너무 작고 사소해서 인지하지 못하는 내 일상에 스며든 순간들이다. 우리집 보안관(금빛 털을 가진 고양이)은 항상 내 방 문 앞이나 신발 위에 누워있다가 내가 마당에 나와 앉아있으면 내 관심을 끌기위해 괜히 내 주변을 맴돌고, 마당에서 오고가며 마주치면 밥은 먹었는지 물어봐주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두 팔 걷어붙이고 도와줄 사랑스러운 태국 가족분들이 항상 그 자리에 있다는게 나를 안심시킨다. 집 앞 단골카페에서는 내 플레이리스트를 챙겨가서 커피마시러 갈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한국노래가 흘러나오는 것, 요즘 러닝과 다른 운동하느라 무에타이를 못가서 체육관 친구들과 코치님이 돌아가며 나를 보채는 와중에도 체육관에 운동하러는 안 가면서 놀러갈 때만 찾아가서 코치님한테 욕먹는 것도(ㅋㅋ) 나를 지탱해준다.
30대에 들어서고 나서는 20대 때 내가 어렴풋이 그렸던 30대와는 완전히 다르구나를 알게됐다. 앞으로 보낼 30대를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전과는 다른 목표설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할까 고민을 했었는데 요즘은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과 실제 내 안의 모습이 일치할수록 그와 비례하게 나는 더 나답게 행복할 수 있겠구나. 앞으로 나의 30대는 그 사이 간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어야겠구나, 하고. 나는 요즘 고요하고 편안하다. 겉으로 반짝이는 것에 나의 내면이 희석되지 않도록 이것을 지켜내는 것이 앞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해야할 가장 중요한 임무가 아닐까. 이것이 이 곳에서의 삶에서 배운 것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