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운동하는 태국 친구들이랑 치앙마이에서 북쪽으로 1-2시간 가량 떨어진 산으로 캠핑을 떠났다. 아침일찍부터 체육관에 모여 M이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한참을 갔다. 체육관에 모여 같이 운동을 하거나 운동 후 허기진 배를 채우러 식당을 가거나 한 적은 있어도 1박2일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건 처음인지라 매우 들떠있었다. 산 중턱에 위치한 캠핑장을 가기 위해서는 워낙 가파르고 험한 길을 지나야 했기에 산 아래 언저리즈음 주차장에 우리의 차를 주차하고 캠핑장 주인의 지프차로 갈아타 올라가야 했다. 운전자분이 출발하기 전에 미리 우리에게 주의를 주었듯 길은 정말로 험했고 우리의 엉덩이는 공중으로 올랐다 내려왔다를 반복했고 우리는 어린아이 마냥 소리를 질렀다. 진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다들 아프다고, 괴롭다고 소리는 쳤지만 얼굴은 웃고있었다.
캠핑장은 곧 마을이었다. 미얀마 국경지대와 가까운 이 곳은 여러 소수부족이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마을이기도 했다. 같이 간 태국 친구들 조차 잘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사는 산골자기 마을이었다. 텐트에 짐을 풀고 산 아래를 내려다 보는데 어딜 봐도 울창한 나무가 숲을 이뤄 빼곡하게 펼쳐져있고 그 위로는 구름이 걸린 하늘밖에 없어서 내가 지금 동남아 열대우림 한복판에 서있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해가 지고 우리는 바베큐를 시작했다. 사장님이 조그마한 화로 같은데에 숯을 넣어 우리에게 가져다 주었고 우리는 노란 돛자리 위에 준비해온 음식들을 하나 둘 꺼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친구들이 미리 장을 봐온 음식들). 우리는 화로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둘러 앉았다. 산 속에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 중으로 화로 불이 따다닥 하는 타는 소리, 그 위에 지글지글 고기가 익는 소리, 친구들의 비음 섞인 태국어로 잔잔하게 나누는 대화소리가 들렸다. 나는 당연히 알아듣지 못했고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어둠속에서 보이지 않는 저 산너머를 내려다 바라보고 가끔 눈치껏 음식을 하는 친구에게 주변에 놓인 식재료들을 건네는 일이었다.
우리들의 대화는 주로 영어로 시작해 중반부터는 태국어로 변하는 식이었다. 친구들은 유일한 외국인인 나를 위해 영어를 쓰긴 했지만 영어로 대화하다가 대화는 곧 태국어로 돌아갔고 나는 대화 속 주체에서 주변인으로 변하는 이 과정이 편했다. 심지어 안도감마저 느꼈다 . 나때문에 영어를 쓰느라 머리를 굴리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하게 만드는게 미안할뿐더러 딱히 대화에 끼어들어 신나게 떠들어 재끼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행여나 무리 중 누구 하나가 혹시라도 나를 제외하고 자기네들끼리 태국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나를 불편하게하진 않을까 나를 신경쓰게 될까봐 조마조마할 정도였다. (다행히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그날 밤도 그랬다. 나는 그저 앉아 열심히 먹기만 했다. 내 앞접시가 비워지면 이내 곧 고기를 굽는 손이 분주하게 내 접시를 채워주었다.
굳이 애써서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고 그들도 딱히 내게 바라는 것도 기대하는 바도 없었다. 나는 그저 그들 무리 속에서 병풍처럼 가만히 있다가 가자는데 가고 먹자는거 먹으며 따라다니기만 하면 됐다. 그들 사이에서 언제나 나는 챙김대상이었고, 그 따뜻한 보살핌 안에서 안정감을 얻었다. 보통의 친구관계에서도 기브 앤 테이크가 오가기 마련인데 나는 태국어를 못 하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어딜가나 항상 챙김받기만 하는 존재였다.
내가 방콕으로 다시 내려가기 이틀 전 날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기 위해 샤부샤부 집을 갔다. 테이블도 아담했고 모든 반찬들이 다 내 손에 닿을 거리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내 앞, 옆에 앉은 친구들은 열심히 내 앞접시에 음식을 올려두었다. 옆에 앉은 N은 이것도 먹어봐, 저것도 먹어봐 하며 접시를 내 가까이에 놓았다. 덕분에 나는 팔을 멀리 펴지 않고도 내 코 앞에 놓인 앞접시만 몰두하며 배부르게 식사를 했다. 괜찮다고 내가 알아서 먹겠다고 말을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대로 두었다. 그냥 마지막까지 더 친구들의 챙김을, 따뜻한 마음을 받고 싶었다. 굳이 고맙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괜히 말하면 유난떠는 것 같기도 하고 투머치로 감성에 젖어들었다고 생각할까봐. 그리고 말하면서 내가 혹시라도 눈물이 맺힐까봐.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친구들이 내 앞접시에 계속 음식을 놓아주는 모습. 이것은 지난 나의 치앙마이에서 보낸 반 년의 시간을 모두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치앙마이가 나를 키운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치앙마이 친구들이 나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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