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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는지 Oct 22. 2023

아시아 여성, 나의 정체성

방콕의 번화가를 오가다 보면 언제나 내 눈길을 사로잡는 불편한 모습이 있다. 


화려한 거리를 거니는 커플들. 그 속엔 늘 손을 꼭 잡은 늙은 서양남자와 어린 태국여자가 있다. 

태국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던 나는 처음 와본 도시의 낯선 모습에 조금 당황했다. 한번 의식을 한 뒤로는 어딜가든 이 조합의 커플들만 눈에 들어왔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커플이라서 그런게 전혀 아니다. 이상하게 내 눈을 사로잡은건 그 커플들의 대부분이 여자는 태국 혹은 다른 나라의 동양인이고 남자는 서양남자라는 사실이다. 


이런 비슷한 느낌을 에티오피아 살 때 받은 적이 있다. 어린 동양인 여자애였던 나는 언제나 동네에서 길만 걸어다니면 애건 어른이건 할 것 없이 지나다니는 남자들에게 너무도 쉽게 장난과 추근덕거림의 대상이 되었다. 같은 인턴동기 오빠랑 비교해보면 나에게 가해지는 장난의 빈도수가 너무도 많았다. 내가 여자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추근덕거림이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린 어느 날 노르웨이 여자사람 친구와 퇴근 후 저녁을 먹다가 알게됐다. 이 친구는 나만큼 에티오피아 남자들의 타겟이 아니었다는 것을. 


어느 날은 파타야로 혼자 여행을 떠났던 날이다. 해가 지면 파타야 해변을 따라 줄지어 있는 가로수 아래 태국여자들이 가벼운 차림을 하고 남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나가던 남자들은 다가가서 말을 걸고 영어가 안 통하는 사람들은 핸드폰 구글번역기를 틀고 열심히 가격흥정을 했다. 파타야가 섹스투어리즘으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안 건 나중 일이었다. 


저녁을 먹으러 근처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누군가 나를 뒤따라와 말을 걸길래 뒤를 돌아봤다. 듬성듬성한 백발의 머리. 처진 피부.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고 퉁명스럽게 태국사람 아니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어쩐지 너가 예쁘고, 어쩌고 저쩌고 길게 말을 늘어놓는다. 짜증이 나서 획 고개를 돌리고 씩씩대면서 가던 길을 걸어 레스토랑에 들어왔다. 맥주 한 잔 주문하고 벌컥벌컥 들이키는데 감정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내가 태국에 사는 동안 마주하는 이런 광경들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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