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짜뚜짝 시장에서 북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 논타부리라는 곳에 쓰레기매립지 하나가 있다. 위생매립지라고는 하지만 한국, 일본에서 워낙 선진화된 매립지만 봐왔던 터라 거의 내 눈엔 쓰레기산(Open dump site)과 다를게 없어 보였다. 가스처리시설도 안 보였고 나름 냄새나 유해물질 누출을 막기 위해 덮개라고 덮어 놓은 플라스틱 비닐은 먹이 찾아 온 큰 새들이 날아와 부리로 쪼아대 금방이라도 뚫릴 것 같아 보였다.
11월이라 나름 태국에서는 선선한 날씨에 속했지만 그럼에도 낮 기온 33도에 육박하는 여전히 숨막히는 찜통 더위가 이어지는 날이었다. 반경 수십키로 부근에서 쓸어 온 생활쓰레기들이 이룬 쓰레기산이 하늘에서 내리 쬐는 뜨거운 뙤약볕, 낮 동안 데워져 끌어오르는 지열과 만나면 온갖 종류의 쓰레기가 한 데 섞여 나는 형용할 수 없는 냄새가 화산에서 용암이 분출하듯 폭발하는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마스크를 착용하긴 했지만 그것을 뚫고 들어오는 냄새는 어쩔 방법이 없다.
장비를 나눠끼고 쓰레기더미 사이로 트럭이 지나다니는 길을 따라 걷는데 저 멀리 간간히 펼쳐져있는 파라솔들이 보였다. 높게 쌓아 올려진 쓰레기 사이에 기둥을 박고 세워져 있는 파라솔들의 모습이 이상하게 나는 해변의 모래사장에 펼쳐진 알록달록한 파라솔의 모습과 겹쳐져 보여서 그 모습이 참 생경했다. 하지만 이곳의 파라솔들은 분명히 여기 어딘가에서 건져올렸을 것으로 보이는 낡고 바래고 찢어진 것들 있었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보니 파라솔 아래 사람들이 있었다. 쓰레기를 한 가득 실은 3 톤짜리 트럭들이 줄지어 들어와 쓰레기를 바닥에 쏟아내면 이 분들은 그 속에서 돈이 되는 것들을 골라냈다. 지자체에서 쓰레기 선별을 위해 고용한 노동자들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서 이곳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돈이 되는 쓰레기들을 줍고있는 Informal workers, 즉 제도권 밖의 사람들이다.
그 중 한 모녀가 있었다. 쓰레기더미 위로 나무판자를 깔아 나름 평평한 바닥을 만들었고 그 위에서 아이는 엄마에게 머리를 맡긴 채 아무렇게 쌓아올린 상자위에 핸드폰을 두고 유투브를 보고 있었고 엄마는 다리가 깨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아이의 머리를 곱게 빗고 양갈래로 땋아주고 있었다. 어릴 적 아침에 학교가기 전에 내가 아침밥을 먹고 있는 동안 뒤에서 엄마가 내 머리를 바싹 올려 묶어주던 때가 생각났다.
이런 혐오시설들을 방문하는 날이면 나는 곧장 집으로 갈 수가 없다. 그날 맡은 이상하고 꾸리꾸리한 냄새가 옷이나 머리에 배어 하루종일 나를 따라다니는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본 것들이 자꾸만 잔상이 남아있어서 애써서 그것들을 환기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시설들을 다녀오고나면 나는 평소보다 더 좋은 곳을 가고 더 예쁜 것만 보면서 내 안에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그 때의 기억들을 밀어냈다. 그날도 어김없이 집에 들어가기 전 평소에 점찍어 두었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들려 비싼 밥을 먹고 귀가했다.
그 다음 날도 그런 날들 중 하나였다. 마침 한국에서 방콕으로 출장을 온 지인이 있어서 오랜만에 방콕에서 요즘 가장 핫한 방콕의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루프탑 바를 갔다. 음료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는데 바 뒤로 큰 나무 둘러싸고 광섬유들이 길게 늘어져 바람에 흐드러지고 있었다. 마치 영화 아바타에 생명의 나무같았던 바 테이블 옆으로는 방콕 야경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는데 그야말로 화려함의 끝이었다. 옆에 있는 DJ부스 앞으로 살짝 취한 사람들이 한 손에 술을 들고 음악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고 있었는데 나는 거기서 자꾸만 머리를 곱게 빗던 모녀가 생각나 헛헛한 마음 감출 수 없었던 그 날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