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이 좋게 일본정부가 주는 장학금으로 공부하는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현재 전세계 플라스틱 발생량을 지역별로 나눠보면 경제성장 속도가 빠른 신흥국들이 주로 동남아지역에 몰려있다. 폐기물(쓰레기는)의 종류는 국가의 경제성장과 관련이 있고, 플라스틱 쓰레기 역시 경제성장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일본정부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아세안 지역 내 플라스틱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내가 다니는 학교에 장학금 및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었고 나는 동남아 국가 출신은 아니지만 여자저차 운 좋게 장학생 리스트에 들 수 있었다. 이 말은 즉, 함께 공부한 내 동기들이 대부분 동남아 국가 출신 친구들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플라스틱도 플라스틱이지만 나는 이것이 개도국의 현실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인생의 기회라고 생각했고 방콕 어딘가에 따로 집을 구하지 않고 이 친구들과 함께 살아보고 싶어서 기숙사로 들어갔다. 내 동기들은 나 포함 약 30명이 좀 안되는 인원이었고 국적은 태국, 인도, 파키스탄, 부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미얀마, 아프가니스탄, 브라질, 짐바브웨, 잠비아로 그리고 한국(나)로 구성되었다. 우리는 함께 밥을 먹고, 공부했고, 과제를 하고, 놀러가고, 매주 일요일 아침에는 인도 친구 리드아래 함께 요가를 하고, 인도 음식을 먹으며 인도에 대해 알아갔다. 교내에서 제일 큰 도서관에서 제일 가까운 식당이 인도음식점이 몰려있는 아케이드였던 바람에 기숙사 사는 동안 나는 태국음식보다 인도음식을 더 많이 먹었다. 아침 7시 요가가 끝나면 근처 카페에 가서 모닝커피를 하며 수다를 떠는게 우리의 자연스러운 루틴이었는데 나는 이게 그렇게 재밌었다.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모였기 때문에 정치, 종교, 젠더 등 우리의 대화주제는 정말 다양했지만 이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가장 재밌었던건 '그냥 사는 얘기'를 할 때였다. 우리는 비슷한듯 달랐다. 미디어가 아니라 내 친구들의 일상, 생각, 행동을 통해서 그리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됐다. 몸은 태국에 있었지만 친구들을 통해 동남아시아 전체를 새롭게 보게됐다. 어쩌면 새롭게 보게됐다는 표현보다 처음 알게됐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 왜냐면 나는 가족여행이나 출장으로 몇일 베트남이나 캄보디아를 다녀온거 빼고는 태국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동남아 국가들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고 아는 바가 없었으니까. 내게 동남아는 그냥 관광지 혹은 개도국들이라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돌리는 현장. 단지 그 정도였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은 채로 가서 그런가. 내게는 일상의 모든 것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어느 날 밤, 학교에서 열린 파티를 즐길 때 다들 신나서 방방 뛰며 노는 와중에 어디선가 싸늘한 기운을 감지했다. 트월킹 춤을 추는 브라질 여자친구와 그 모습을 아니꼽게 바라보는 전통의상을 갖춰입은 수염난 파키스탄 남자친구의 눈빛을 나는 봐버렸다. 모르는척 했지만 자꾸 마음 한 켠이 불편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내가 태국에 오기 전부터 이들 사이에는 너무 상반된 문화로 빚어지는 보이지 않는 텐션이 있었다고 한다. 브라질 친구는 그날 밤 더 보란듯이 트월킹 춤을 췄다.
어느날은 필드트립가서 밥을 먹을 때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방글라데시 친구가 앞에 앉은 짐바브웨 친구와 까만 피부를 갖고 사는 것에 대한 고충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데..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접시에 코를 박고 조용히 밥만 먹었다.
가장 나를 화가나게 한 건 조별과제를 할 때였다. 이 학교는 유난히 조별과제가 많았다. 그런데 조를 짤 때마다 늘 했던 친구들이랑 묶였고 (조원 짤 때마다 언제나 나는 눈치싸움에서 실패했다..) 내가 속한 그룹은 늘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부탄, 미얀마 친구가 기본으로 있었고 때때로 태국친구들이 돌아가며 함께했다. 언제나 나서서 조원들을 구성하는 건 방글라데시 남자애였다. 그 애는 꼭 빠릿빠릿하고 똑똑해 보이는 애들을 모아서 조를 짰는데 나도 그 중 하나로 늘 그의 수작(?)에 걸려들었다. 조별과제를 할 때마다 그 애는 언제나 자료조사는 하나도 안 하고 하더라도 그닥 의미있는 소스는 가져오지 못 하면서 언제나 조장을 자처하고 나서고 발표를 담당하고 나서서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그가 우리를 리드해서 과제를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백번 양보해서 학교 다닌 때 조별과제할 때마다 이런식으로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이야 항상 있는 존재들이니까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 애 신경쓸 시간에 조금이라도 내 일을 챙기는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언제나 자료조사를 성실하게 하고 가장 많은 공을 들이는 친구들은 인도네시아와 부탄에서 온 여자친구들이었는데 자신들의 공을 앗아가는 방글라데시 남자애한테 불만이 있기는 커녕 수업시간에 그 방글라데시 친구를 우리의 리더로 추켜세우는 것이다. 몇 차례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것인데 그들 사이에는 묘한 젠더다이나믹이 있었다. 도무지 이해하지 못 하겠는 나는 따로 뒤에서 인도네시아와 부탄친구에게 너네가 조별과제에 공헌한 만큼 크레딧을 가져가라고 말했고 나중에는 방글라데시 애가 마치 리더처럼 굴 때 대놓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깨달은 사실인데 친구들 사이에 나는 이간질을 하는 사람이 돼버렸다.
정이 많은 동기들은 종종 자기네 나라 음식을 만들어서 친구들 전체를 초대해 다같이 나눠먹는 일이 많았는데 옹기종기 모여 같은 음식을 먹어도 늘 나만 배탈이 났다. 자기네 나라 음식을 잘 먹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내친구들은 신이 나서 내 접시에 듬뿍 음식을 더 얹어주며 신나게 이것저것 부연설명을 더했다. 그런 친구들 앞에서 차마 못 먹겠다고 할 수가 없어 나는 억지로 음식을 더 먹고 친구들 눈치를 살피다가 몰래 빠져나와 화장실을 가기 위해 열심히 자전거 페달질을 해서 내 기숙사 방으로 돌진해야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우리 사이 벽을 느낀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중에 우리가 조금 가까워지고 나서 친구 한 둘이 내게 그제서야 털어놓은 사실인데 한국에서 온 내가 자기네들이랑 어울리고 싶지 않을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 곧바로 손사레를 치며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뒤돌아 기숙사 방으로 돌아오는 길. 방금 한 말이 정말 진심인지 모르겠어서 얼른 이불 속으로 들어가 나만의 동굴에 숨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