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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는지 Oct 22. 2023

내 친구가 탈레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아마 나는 졸업을 못 할 것 같아..내 이름이 탈레반 블랙리스트에 올라갔어’


2021년 8월 가을학기를 시작으로 첫 학기가 시작됐다. 코로나로 인해 바로 태국으로 갈 수는 없었던지라 학기 초반은 원격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온라인 강의실에 들어온 동기들의 각기 다르게 생긴 얼굴들과 가지각색의 영어발음들이 낯설었다. 낯설고 긴 이름들에 익숙해질때즈음인 10월인가. 아프가니스탄 여자 동기의 낌새가 심상치 않았다. 불안정한 인터넷때문에 자꾸 수업시간에 혼자 강의실에서 튕겨져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를 반복했다. 히잡을 둘러쓴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애였다. 


2021년 8월. 20년 만에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재장악했다. 탈레반은 국제사회 시선을 의식해 과거와 달리 인권과 여성 권리를 존중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적으로 민주정치 조직 해체와 언론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여성의 장거리 여행이나 교육을 금지시키는 등 점점 더 본색을 드러내면서 여성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히잡을 둘러쓴 나의 동기는 UN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였다. UN에서도 UN Women 이라는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일하는 조직이었다. 내 친구는 그 중에서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 교육과 관련해서 일하는 친구였다. 당연히 내 동기는 탈레반에게 1티어 타켓이 되었다. 


2021년은 코로나로 인해 태국정부가 국경을 꽁꽁 닫아놓고 있을 때였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위해서 비자를 준비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고 동기들은11월 무렵부터 하나 둘씩 동기들이 각자 나라에서 태국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졸업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학교 실험실에서 실험수업을 이수하고 필드트립도 가야했기 때문에 늦어도 다음학기가 시작되는 1월 전까지는 태국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거의 80%의 동기들이 캠퍼스에 도착해서 오프라인으로 만나 함께 공부를 하게된 1월 무렵에도 나는 여전히 한국이었다. 회사 일을 병행하느라 최대한 늦게 출국하기를 선택했고 진행중인 일만 마무리되면 출국하기 위해 회사에서는 마무리작업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 때 나를 포함해 아직 태국으로 가지 못 한 소수의 친구들은 태국에서 이미 만나서 유대관계를 쌓아가는 다른 친구들을 보면서 소외감 아닌 소외감이 커져갔고 남아있는 우리들은 서로 언제쯤 태국에 가는지 서로의 상황을 공유했다. 그 중 아프가니스탄 친구도 있었다. 


나는 최대한 늦추고 늦춰서 2월 말에 태국에 입국했다. 동기들 중에는 거의 마지막에서 2-3번째로 입국한 꼴이다. 학교 캠퍼스 안에 있는 자가격리 시설에서 일주일을 보내는 동안 온라인 강의실에 접속해있는 아프가니스탄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너는 언제쯤 태국에 와?”

“글쎄..안 그래도 이걸로 교수님이랑 이야기를 나눴는데..나는 아무래도 못 갈 것 같아..내 이름이 탈레반 블랙리스트에 올라갔어. 아마 내가 공항에 가면 나는 바로 붙잡혀서 어디론가 끌려갈거야.”


이럴 때 무슨 말을 해야하는지 모르겠어서 고민을 하다가 뻔하게 안타깝다, 건강하고 안전 챙겨라, 라는 말을 남기고 메신저를 껐다.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모든 것이 너무 낯설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한국을 떠나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오긴 했는데 격리시설에만 있다보니 태국에 온게 실감이 나지 않았고 방안에 있는 오래된 책상과 침대 그리고 90년대 학교 양호실에 칠해져 있을 것만 같은 벽에 발린 바랜 페인트 색깔에 둘러쌓여 있는 내가 세상 어딘가 동떨어진 곳에 홀로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울적한 마음이 들어서 자주듣던 팟캐스트를 꺼내 들으며 겨우 잠에 들었다. 







사진출처: SBS 뉴스  '여성 탄압' 탈레반, 이제는 놀이공원도 금지…"율법 안 지켜져" 

원본 링크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967293&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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