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는지 Oct 08. 2023

서른 돼도 안 괜찮아져요

세상에는 나이 서른과 관련된 영화드라마가 차고 넘친다밥먹거나  때도 조용하게 배경음악처럼 틀어놓을 정도로 좋아했던 드라마 <멜로가 체질> 서른을 통과하는  여자의 사랑와 일에 대한 이야기다

 

나이먹는 것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딘 감정을 가지고 있는 나라서 그런지 사실 이런 류의 드라마나  속의 주인공들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채로 세월에 떠밀려 서른을 맞이한 헛헛한 감정들을 쏟아낼  마다 나는 딱히 공감하지  했다. 29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아직 서른이 돼보지도 않았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야 말하건데솔직히 나는 서른을 기다렸다워낙 20대때 남들처럼 소위 '갓생'사느라 쉼없이 달려왔기 때문에 30대가 되면 좀더 쉬엄쉬엄   있겠지하는 조금의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와 생각해보니 나는 아무래도 무의식적으로 소비해왔던 '나이 서른 컨텐츠' 희생자가 아닌가 싶다

다들 서른서른 하니까 마치 서른은 무언가 인생의  변곡점이라는 데에 나도 모르게 세뇌당했던  같다전환점까지는 아니더라도 반드시 인생의 무언가의  기점이라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말이다

 

 세뇌덕분인지 한국나이로 서른이 되는 해에 나는 지독하게 '서른 앓이' 했다내가 예상해왔던 30 커리어 우먼의 모습은 커녕자신의 현실을 한탄하던 드라마  서른살 주인공(솔직히 보면서 나는 저거보단 낫겠지 하는 우월의식으로 보았던)보다도 못한 현실에 처한 나를 보며 자존감은 계속해서 낮아졌다.  

 

'내가 생각했던 서른은 이게 아닌데 나이에 이정도는 됐을  알았는데 아니네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회사에서는 내가 원하던 위치만큼 가지 못했고주위엔 나보다 집안학벌외모까지 잘난 사람들이 수두룩 빽빽이고그렇다고 20 때처럼 패기로 똘똘 뭉쳐서 당차게 무언가에 도전할  있는 용기는 더이상 없고

'나이 서른 컨텐츠' 갖고 있는 뻔한 레퍼토리가  현실이 되다니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현실에 불만족스럽지만 그렇다고해서 무언가 다시 노력하고 싶지가 않았다 해에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들  하나는  걸음이라도  나아가려면 뭐라도 해야하는데 예전만큼 뭔가 도전할 용기가  난다며 한탄했던 말들이다그래도 괜찮았다나름 이제껏  살아왔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이제는 천천히 가도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런 생각에 자꾸  나이가 브레이크를 걸었다나이에 무딘 내가 조금씩 예민해지기 시작한건 남들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채기 시작하면서 부터다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던 그게 뭐가 중요해 내가 아니면 됐지하고   길을 가면 좋겠지만 나는 남들의 생각이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혼자있을  괜찮다가도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면 괜히 주눅마저 들었다.

 

가뜩이나 예상치 못한 '서른 상황에 어안이 벙벙한데 종종 서른 앞에 '여자'까지 붙을 때면 서러움이 밀려온다요즘 시대에도 '여자가 나이 서른이면~' 하고 운을 떼며 말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또래에도 여전히 많다심지어 그들  여자들이  많다는 사실은 믿기 어렵지만 이것이 현실이다지금까지 인간관계 필터링 한다고 해왔는데 여전히  주변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니이러한 상황들 속에서 나는 자꾸 조바심이 났다

 

<멜로가 체질 드마라 작가인 여주인공이 써낸 드라마의 제목은 <서른되면 괜찮아져요>

밥먹으며집안일 하며일하며 열번도  돌려본  드라마  드라마의 제목을 보며그리고 서른을 통과하는 여자 주인공들의 나레이션을 통해 나는 지난 나의 치열했던 20대를 회고하며 조금 안도했는지도 모르겠다서른되면 그래도 괜찮아 지는구나하고 말이다.

 

하지만 서른을 지나온 나는 서른을 앞둔 사람들에게  들으라고 크게 외치고 싶다

 

서른돼도  괜찮아요

절대.







이전 01화 열정은 20대와 함께 날아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