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필 눈치가 없었고요.
3년의 인연을 정리하기로 했다. 거창한 관계는 아니고.
한때 내가 성장함을 느끼게 해 주던 직장 상사와 점점 대화가 줄어든다. 그러다가도 한마디 건네줄 때면 신나서 대화를 하기도 한다. 갑자기 대화가 멈추고 눈이 마주치면 어색하게 웃어줄 뿐이다.
아직은 나를 이끌어줄 인생 선배가 없다는 게 어색하지만 아무나 내 곁에 둘 수 없다. 그 기다림을 잠시 아쉬움으로 채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3년 전. 처음 맡은 업무에 나는 나에게 한숨을 자주 쉬었다. 집에 오면 40대 중반 딸이 70넘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난 지금까지 뭘 배우고 산 거지?"
책상 위엔 늘 문서가 대여섯 개 늘어져 있었고 업무 요청은 화면에서 번쩍이며 나타났다. 문서를 읽다가 깨닫는데. 아차, 이 문서가 아니었네! 이게 다반사였다.
그렇게 만든 보고서를 상사 앞에서 들고 무표정에 불안을 숨기고는 서있었다. 통과를 기다리는 학생처럼.
"이렇게 계속 틀리면 어떻게 믿고 일을 맡기겠어요?"
아. 눈만 꿈뻑꿈뻑. 내 밑에 후배들이 몇 명인데... 책상 밑으로 나를 숨기고 싶었다.
이 말을 들은 40대 중반 여자가 울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보기 숭하다. 그래서 퇴근길 차 안에서만 울기로 했다. 꺼이꺼이.
다시 70넘은 울 엄마 앞. 송장처럼 누워 입만 움직인다.
"3년 후엔 이 분야에서 잘 나갈 거 같아. 지금 혹독하게 배우고 있거든."
또르르. 눈물은 또 왜 나냐. 차 안에서만 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래도 간혹 받는 인정받음에 즐거웠다가 자주 초라함을 느끼다가 하는 롤러코스터에서 3년을 보냈다. 잠깐의 달콤함을 잊지 못하고.
나의 한때 멘토였던 상사는 일을 잘했다. 같은 여자가 볼때 육아와 일을 완벽하게 해낸다고 생각했다.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다.
시간이 지나자 나의 마음은 다른 목소리를 냈다. '일이 어렵나..마음이 어렵지!' 일을 잘한다는 것은 일 사이에 낀 사람들의 감정을 잘 처리하는 것도 포함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절한 마음은 전력 소모가 많은 난로다. 그래서 체력을 키워야 한다. 결국 친절이란 성품의 문제를 넘은 체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분은 그저 친절할 힘이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힘이 있었다 한들 나에게 쓸 정도로 내가 중요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누군가 그분을 씹으면 나는 반사적으로 방어막을 친다.
"그래도 배울 게 많은 양반이야."
"일이 많아서 에너지가 없어서 그래요~진심은 아니야."
존경심이나 애틋함 때문만은 아니다. 그저 내가 지난 3년 동안 배웠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 어쨌든 나도 사람 됐다. 할 말, 안 할 말 이제 조금 구분할 줄 안다. 아!! 오타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러니 욕을 해도 내가 한다.
남들은 모르는 우리만의 시간이 거기 있었다. 그거면 됐다. 이제 퇴근하자.
나는 이제 눈치 보지 않고 할 말은 하는, 따뜻한 펭수 같은 멘토만 찾으면 된다. 친절할 체력을 키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