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의 삶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풀고 그만큼의 인정을 받는다면 그건 호구가 아니다. 최선을 다 했지만 미움받는 것.. 그게 호구다. 나는 호구의 삶을 살아왔다. 아주 오래전부터 쭈욱.
어린아이 때 받은 미움이 어찌 내 탓이겠냐만, 커서도 이러면 나도 문제가 있는 거다. 연애를 할 때도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쓸게까지 내어주다 만신창이가 되어 빠져나오곤 했다. 그러다가 처음 배려받는 기분을 알게 해 준 사람을 만나 결혼을 다짐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 번 호구 영원하라~ 남자 친구 뒤에 부모님이 계셨고, 특히 어머님은 나에게 바라는 게 많으셨다. 그리고 나는 그걸 다 했다. 힘들었지만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애썼다. 항상 이게 문제다. 그렇게 수 없이 남자 친구 부모님의 요구에 응하다가 딱 한번 빠져나올 구멍을 찾아서 만세를 불렀는데, 그날 사달이 났다. 내가 자신들이랑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을 안 한다는 이유였다. 억울했지만 남자 친구도 그다지 내편이 아니었다. 힘들다, 싫다, 수 차례 얘기했지만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다 상견례 직후 화산이 폭발했다. 왜 그렇게 화가 나신 건지 지금도 모른다. 표면상 이유는 빨리 결혼을 진행하지 않는다는 것...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결혼을 미루겠다 했고, 왕례를 끊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부모님도 남자 친구도 내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해도 욕만 먹다가 안 해버리니 대접을 받는다. 이건 뭐.. 뭐 같은 세상이다.
그 후로도 사건이 몇 번 더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평화를 찾았다. 그렇게 호구의 삶에서 벗어나는 듯했지만, 아니었다. 한 번 호구 영원하라~ 설마 낳아주신 부모님께서 나에게 이러실 줄은 상상을 못 했고, 누군가를 믿는다는 게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 구구절절한 얘기는 재미가 없으니 줄이고, 위의 사례보다 스케일이 서른 배는 더 크며 내 인생의 절반쯤을 부정당했다고 요약하면 될 것 같다.
나는 부모님을 위해 대가 없이 가족 사업에 참여해 끝까지 할 수 있는 힘을 다했다. 그러면 알아주실 줄 알았다. 설마 모르실까 싶었다. 그런데... 정말 모르신다. 오히려 나를 부모에게 기대어 사는 무능력자로 여기셨고,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또 남 탓이나는 소리를 들었다. 여러 차례 이야기할 자리를 마련해 보았지만 소용없었고 분노만 더 키웠다. 내가 한 일은 당연한 것, 내가 하는 요구는 괘씸한 것이었다.
성공의 결실은 엉뚱한 사람에게 전부 가버려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여지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결국, 빠져나왔다. 손은 빈 손, 가슴은 상처 투성이었다. 하지만 이제라도 털어버린 것이 다행이다 여기며 최대한 깨끗하게 하루라도 빨리 그 일에서 내 흔적을 지워주길 부모님께 요구했다. 진심으로 싫기도 했고,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랬더니... 이게 뭔가.. 그분들이 내 얘기를 들어주기 시작하신다. 미약하나마 처음으로 '사과'라는 걸 받아보았다. '이해'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그렇게 피 토하는 심정으로 제시했던 해결책들 중 극히 일부이나마 그들이 먼저 제안하기 시작했다.
한심하다. 나 말이다. 내 문제를 모르지 않는데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제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낳아주신 부모님을 못 믿는데 누굴 믿겠는가? 모두가 나를 효용가치가 있어서, 뜯어먹기 위해 옆에 두는 것 같다.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좋은 건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반대다. 싫은 걸 좋게 받아들이면 바보가 된다. 사람들은 날 무시하고, 그들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나를 몰아세운다. 결국 나는 병신이 된다. 몸이 아니라 마음에 병이 있는 병신 말이다. 이런 나를 고쳐야 하는데, 한 번 박힌 관념이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언제쯤 호구의 삶에서 벗어나 나도 행복하고 주변 사람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제발 아이들에게만이라도 건강한 마음을 전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