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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서 Feb 23. 2020

돌보지 않는 아이

마음이 다친 아이

아이를 데리고 자주 가는 육아종합지원센터가 있다. 거기에 늘 이모와 함께 오는 아이가 있었는데, 친 이모가 아니고 고용된 이모다. 처음엔 친할머니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 이모님이 묻지도 않은 아이의 가정사 이야기를 줄줄이 해주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알게 된 바로는, 그 아이는 재혼가정의 늦둥이다. 문제는, 부모가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는 거다. 세상 풍파 다 겪은 듯 보이는 '이모'에게 아주 저렴한 월급으로 24시간 케어를 맡겼다. 잘 때도 그분이 데리고 잔다고 한다. 갈 때마다 거의 항상 있는 이모는 아이를 놀이 시설에서 혼자 놀게 한 뒤 휴게실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거나 여기저기 전화 통화를 하거나 다른 엄마들에게 말을 걸어 수다를 떨었다.

모든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정답게 노는 틈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아이는 당연히 문제 행동을 했다. 다른 아이의 장난감을 빼앗고 때리고, 그러니 아이들과 부모는 더 피했고 아이는 더욱 혼자가 되었다. 딱 한 번, 아이가 안쓰러워 관심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그 약간의 정에 아이는 찰싹 달라 붙었고 어디든 쫓아왔다. 약간 무서울 정도로.. 그리고 결국 우리 아이 장난감도 뺏어서 울게 만들었다. 게다가 나를 쫓아 화장실까지 들어왔다가 이모에게 한대 툭 맞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렇게 두어 번 갈등이 생기자 할 수 없이 아이를 떼어내야만 했다. 씁쓸했지만 남의 육아에 이러쿵저러쿵 참견할 입장은 못되었다.

그런데 39개월이라 했던 아이는 말 한마디 하는 걸 못 보았다. 발달이 느림에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정서적으로 너무나 결핍되어 보였다. 항상 무표정했으니까. 웃는 얼굴도 우는 얼굴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몇일 전, 아주 오랜만에 그 센터에 다시 갔을 때 그 아이도 와있었다. 이모가 아니고 터울이 많이 진 언니가 데리고 왔다. 같이 놀아주러 온 건 아니고 시간제 보육 맡기러.. 방치하는 이모는 없고, 보육교사가 놀아주려 애쓰는 모습이 다행스러워 보였지만 이제 7살은 되었을 아이는 여전히 무표정했고 말이 없었다. 보육교사는 노력했지만 아이는 노는 방법을 모르는 듯 보였다. 특히 누군가의 전적인 관심이 어색해듯 보였다.

너무 안쓰럽고 걱정스럽다. 특별한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아이에 대한 무관심이 낳은 결과로 보이기 때문이다. 뚜렷한 학대가 없어도, 가정이 궁핍하지 않아도, 아이는 망가질 수 있다. 도움이 절실해 보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안타까워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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