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 엄마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시종일관 밝고 경쾌하고 여름 햇살이 싱그러운 영화다. 그래서일까, 슬픔은 한 발 늦게 찾아왔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디즈니월드 건설을 위한 개발정책에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쓰는 단어로 가난한 사람들이 정부의 도움으로 모여사는 집단 거주 시설을 부르는 이름 '프로젝트'와 같은 뜻도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주인공 모녀는 프로젝트와 다름없는, 혹은 그보다 못한 모텔에 살고 있다.
영화에서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은 생기발랄하고 귀여운 아이 '무니'다. 명랑함이 지나쳐 망나니 같다는 후기도 보았다. 어쨌든 시종일관 영화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건 그 아이고,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브루클린 프린스라는 깜찍한 배우이다.
하지만 나는 무니의 엄마에게 더 감정이 이입되었다. 내가 엄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핼리'(작가는 일부로 이름을 이렇게 지었을까?), 가진 게 정말 없는 여성이다. 남편 없고 집 없고 배운 것 없고 직업도 없고, 부모도 없는 것 같고, 개념도 없다. 아이 옆에서 줄담배를 피우고 입과 손가락에 욕을 달고 산다. 놀러 나갈 때면 양갈래 머리를 하고 한 뼘짜리 스커트를 입는다. 전직 스트리퍼였고 온몸에 문신이 있고, 코너에 몰리면 폭력도 불사한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딸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엄마의 사랑 덕에 아이는 좋다고 할 수 없는 환경에도 아랑곳없이 해맑게 자랐다. 하지만 보조금을 받는 것도 취업도 실패한 엄마는 각종 꼼수로 생활을 이어간다. 암표를 팔고 재고 상품을 구해 싸게 판다. 하지만 이마저 녹록지 않자 자신을 판다. 이것이 그녀가 아이를 지키는 방식이다. 소중한 딸을 책임지기 위해, 당장의 먹을 것과 잘 곳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을 마지막까지 버린 것이다. 좀 더 영리하고 성실하다면 다른 생활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녀는 철 없고 똑똑하지 못한 여성이다. 기댈 곳도 하나 없다.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분명히 처참한 배경을 가졌을 터인데, 책임과 사랑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더 슬픈 것은, 그녀는 언제라도 딸을 잃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정말로 잃게 되었을 때 절규했다. 자기 스타일대로 욕을 퍼부으며..
겉보기에 누가 봐도 문제 많은 엄마에게서 무니를 떼어내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아직은 어려서 괜찮지만, 더 크면 무니는 또 다른 핼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지경이 되기 전에 조금 더 도움을 주었다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도록 가르쳐주었다면, 세상에서 서로를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을 강제로 떨어 뜨리는 일은 없어도 되지 않았을까. 미국은 우리와는 많이 다른 가족관을 가진 나라이고, 그 나름의 경험과 이유가 있겠지만, 그들의 복지라는 것의 실천 방식이 매우 폭력적으로 보였다.
다시금 생각할수록 눈물이 나는 대목은 엄마가 아이를 너무 사랑한다는 점이다. 여느 엄마들과 표현이 다르고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나도 그 마음을 읽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아이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워대지만 사랑한다. 아이를 길거리 판매에 대동하지만 사랑한다. 아이의 도가 지나친 장난도 방관하지만 사랑한다.
그녀가 삶을 꾸리기 위해 닥치는 대로 하는 것들을 도덕의 잣대에서 보면 많이 어긋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랑과 책임을 기준으로 한다면 누구보다도 심지가 곧고 굵은 여성이다. 어쩌면 나보다 나은 엄마인 것 같다. 만약 그런 환경에 처했을 때 나라면 그녀만큼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