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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서 Mar 19. 2020

엄마의 점심

맛은 통이요 비주얼은 불통입니다

아이 데려다주고 마스크 사러 갔다 실패하고 돌아오니 10시 40분.. 좀 기다렸다가 11시에 오픈하는 동네 국숫집에서 밥을 먹으려고 했으나 바람이 너무 불었고 급히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할 수 없이 돌아와서 먹스타그램을 보며 뭐를 먹나 고민의 고민.. 그러다 배는 고픈데 졸음이 쏟아지고, 먹고 싶은 건 너무 많은데 고르기가 어렵고 해 먹기는 귀찮았다. 그때 정답을 알았다. 나는 누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싶은 것이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

그 상태로 30분을 누워있다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 냉장고를 열었는데... !!! 먹다 남은 밥, 계란말이, 제육볶음, 탕수육, 치킨, 햄버거가 있는 것이 아닌가?! 묶은 열무김치볶음까지 곁들이니 코스요리가 따로 없었다. 먹을게 많은 나머지 계란말이랑 탕수육은 건들지도 못했다. 그리고 화룡점정! 생크림 케이크가 있었다! 그 어느 인스타 맛집보다 훌륭한 완벽한 한 끼가 아닐 수 없었다.

확실히 맛있긴 했는데 조금은 씁쓸하다. 먹은 것보다 해치운 빈그릇이 더 많다는 게.. 조금씩 담아놓은 남은 음식들, 상하기 직전의 음식들, 살짝 탄 음식들.. 다 내 거다. 소중한 가족에게 그런 걸 줄 수 없고 그들에겐 예쁘게 담아주어야 한다. 하지만 나의 상은 최대한 냉장고를 가볍게 하고 설거지를 줄이는 쪽으로 차린다. 엄마의 삶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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