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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서 Apr 07. 2020

따귀 맞는 여자

한국 고전 영화

영 재미없게 사는 나도 조금은 남다른 취미가 하나 있다. 우리나라 옛날 영화 찾아보기다. 기술상의 약간의 어설픔과 더불어 옛 시대상을 보는 맛이 있고, 과거 배우들의 매력에 푹 빠져보는 재미도 있다. 내세울 만큼 많이 본 건 아니고, 대충 꼽아보면 20편쯤 되는 것 같다.

느끼는 바야 영화마다 다르지만, 종합해보니 확연히 눈에 띄는 게 있다.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 따귀를 때리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는 거다. 멜로 영화라면 무조건 한 번은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비련의 여자 주인공은 성폭행을 꼭 당한다. 심지어 자신을 성폭행한 사람과 운명적인 사랑을 하기까지.. 여기에 비춰 당시 여성의 인권이 얼마나 바닥이었는지가 보인다.

고작 2003년 영화인 클래식에서도 조인성이 여자 따귀를 때리는 장면 있다. 손예진에게 직진할 자신이 없어서 손예진의 가장 친한 친구를 이용해놓고 뭘 잘했다고.. 조인성에게 속은, 조인성이 자기 애인인 줄 알았던 그녀에게 맞아도 싸건만, 끝까지 이기겠다고 계속 때리는 장면이 어떻게나 로맨틱하게 포장이 되는지... 아니 두 여자에게 같은 선물 했으면 말한 거 아닌가? 지질함의 극치다. 그 외에도 이 영화에 대해서 할 말이 많지만 우선은 여기까지다.

가장 최근 우연히 본 옛 영화에서도 기가 막힌 장면이 있었으니, 새 사람이 생긴 전 여자 친구를 납치해서 강제로 질질 끌고 물가에 가 죽일 듯이 몇 번 빠뜨렸다 건지더니 "넌 이제 깨끗해졌어"라는 대사를 치지 뭔가..  과거는 잊어줄 테니 나에게 돌아와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자가 더 가관이다. "나 사랑하니?"라는 물음에 "사랑했어요"하며 안긴다. 갑자기 나타나서 납치하고 물고문시킨 남자에게 안긴다. 서로 제정신이 아니다.

요즘 남성들이 억울해하는 이유가 여기 있나 싶다. "옛날엔 그래도 되었는데 지금은 왜 안 되는 거야!" 혹은, "난 안 그러니까 이만하면 잘하는 거지. 근데 왜 불만이야?"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남성들의 성의식 비교 대상은 아버지라고 한다. 아버지보다는 나은 것 같으니 그들은 그리도 떳떳하고, 자신의 훌륭함을 알아주지 않으니 억울한 것이다.
다행인 걸까? '클래식' 이후 내가 본 한국 영화에서 멀쩡한 캐릭터의 남주가 손바닥을 날리는 장면을 본 기억은 없다. 이제 한 대 맞고도 눈물만 좀 글썽이는 여주의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는 게 발전이라면 발전인가 보다.

하지만 넷 상에서 벌어지는 착취와 혐오 가득한 댓글을, 여성의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한 관대함 등을 보면, 형태가 달라졌을 뿐 가혹함의 정도는 그대로가 아닌가 싶다. 아주 드물게 등장하는 여성 가해자는 관전의 대상이 되어 남녀 모두로부터 가차 없이 두들겨 맞을 뿐 아니라 법의 심판도 한치의 자애가 없다.

극명한 예로, 숱하게 많은 아내들이 남편에 손에 죽어왔지만 그 어느 남편도 얼굴과 신상이 공개된 적이 없는 반면, 고유정은 용의자 신분일 때 이미 국가에 의해 신상이 공개되었다. 여기서 받는 인상은, 남성에 의해 여성이 당하는 폭력은 너무 일상적이어서 죽음마저도 놀랍지 않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럴 수도 있지'하는 생각이 은연중에 깔려 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어찌 감히! 어떻게 그럴 수가! 하는 감정의 개입이 가장 공정해야 할 공권력의 처우에서 가장 부끄러움 없이 드러난다.

비슷한 시기에 아내가 남편에게 골프채로 맞아 죽었고, 중학생 아이 하나가 의붓아버지에 의해 살해됐다. 그런데 가해자의 신상은 공개되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다르기에 그런가. 고유정은 토막 살인이기 때문에? 토막은 살해 방식이 아니라 뒤처리 방식이다. 골프채로 사람을 죽을 때까지 때렸다.. 피해자가 당한 고통의 크기를 생각하면 잔혹함의 기울기는 어렵지 않게 판단될 것이다. 제발 그것을 기준으로 남자든 여자든 다르지 않게 판단했으면 한다.

오래된 영화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따귀 신(맞는 쪽은 여자이고, 간혹 먼저 때렸다간 도로 한때 더 새게 맞는)에 생각이 길어졌다. 영화에서는 따귀 한대지만 사회 전체로 확장하면 폭행이 되고 살인이 된다. 여성은 남성에게 물리력으로는 당할 수가 없다. 그러니 사회가 보호해주어야 하는데... N번방 사건이 수면 위에 올라와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은 여전히 편파판정에 부끄러움이 없다.

하지만, 숱한 좌절을 겪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더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아직은 더디기만 한 변화의 속도가 더 빨라져서 여성들이 최소한 법 앞에서라도 공평한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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