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나라 남의 나라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투표를 못 하게 해야 한다는 이유로 군인들이 민가에 들이닥쳐 사람들의 팔을 자른다는 뉴스를 보았던 게 시작인 것 같다. 아프리카에 관심이 생긴 것이.. 백색증 환자의 사지를 절단해서 제를 지낸다는 뉴스도, 미신을 이유로 어린 자녀를 버린다는 뉴스도, 말라리아도 에이즈도 사진만 봐서는 피부에 닿지 않았다. 콩고의 여성들이 항상 성폭행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는 것이나 지상낙원 같은 마다가스카르가 여행하기 위험한 나라라는 것도 간접적으로 전해 들어보긴 했어도 실감하기엔 그곳은 너무 멀다.
도대체 왜 유독 아프리카에 이런 일들이 많이 생길까 하는 궁금증이 꿈틀거렸다. 그렇다고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입장에 여행을 갈 수는 없고, 한 번쯤 꿈꿔 본 것처럼 멋진 여성 종군기자가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런저런 정보가 담긴 글을 찾아 읽으며 지식을 담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호기심이라 해도 할 말은 없다. 내가 그들의 고통을 해결해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프리카의 현실이 담겨 있다는 영화 세 편을 소개받았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로드 오브 워', 호아킨 피닉스가 짧게 나오는 '호텔 르완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블러드 다이아몬드'다. 모두 다 실화적 정보와 재미도 충족되는 추천작이다.
세 편 모두 배경으로 하는 나라는 다르고 사건도 다르지만 그리고 있는 현실은 비슷하다. 제국주의 시절부터 얽히고설킨 관계와 전쟁, 분노와 광기로 차오른 정부군과 반군들, 그리고 그들에게 학살당하는 무고한 사람들과 매춘만이 살 길인 여성, 흩어진 가족.. 그리고 무기와 자금을 대며 뒤에서 조정하고 이득을 취하는 백인들과 간간히 등장하는 소수의 정의로운 백인들, 공식은 하나처럼 똑같다.
'로드 오프 워'는 아프리카나 중동 같은 전쟁이 진행 중인 나라에 각종 불법적인 수단과 미국의 묵인하에 돈을 버는 무기상의 이야기다. 한쪽에선 기를 쓰고 불법 무기상을 잡는데 다른 한쪽 더 높은 곳에선 슬그머니 빼준다. 가장 끔찍했던 대목은 무장한 군인들이 도망친 소년병을 찾아 아이를 보호하려는 엄마까지 칼로 내려치는 장면이다. 그들의 가진 무기가 다 어디서 왔을까.
호텔 르완다는 1994년 몇 달간 이루어진 대학살 중 보호되어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인 만큼 비교적 평화로운 분위기이나 그들이 처한 죽음의 공포가 생략되어있진 않다. 르완다의 790만 인구 중 100만 명이 죽은 사건이니 당연하다. 표면적 이유는 후투족과 투치족의 갈등이지만, 사실 뒤에서 갈등을 부추기고 군인들을 지원한 것은 벨기에와 프랑스다.
헐리웃의 자본으로 만든 박진감 넘치는 영화다. 하지만 재미있는 다큐멘터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 두 영화보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이 많지만 오히려 그 부분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실상은 아마도 더 끔찍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원인은 다이아몬드, 그 결과 이득을 취하는 건 말쑥한 영국의 다이아몬드 상인들이다.
영화는 모두 해피앤딩이었으나 그건 영화이기 때문이고, 현실은 과거도 현재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아프리카는 여전히 자원이 풍부한 나라고 그걸 탐내는 부국들이 많은 이상, 한쪽에서 갈등을 만들고 한쪽에선 치료해주는 묘한 상황이 지속되리라 예상한다.
사실 한때는 그 모든 것이 마냥 욕심 많은 제국들 탓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금은 그곳 사람들 특유의 성향도 영향이 없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인류의 기원이 탄생한 땅, 아주 오랫동안 이동하지 않은 사람들이 남아있는 곳, 그곳 사람들에게는 좀 더 태초에 가까운 특징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아무래도 감정과 행동이 일치하는 면이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알면서 그걸 이용하는 인간들이다. 내가 생각하는 솔루션은 그냥 그들을 도와주지도 말고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그들은 그들 안에서 자신들의 방식으로 질서를 찾지 않을까. 물론 상상에 지나지 않는 일이다. 인간의 욕심이 살아있고 본능의 한 부분에 악이 담겨 있는 이상 전쟁과 빈곤은 끊임없이 곳곳에 뿌리내릴 것이다. 아프리카는 물론 중동에서 남미에서, 전쟁은 현재 진행 중이지만 아무도 막지 못하고 있고 그럴 생각도 없어 보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