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장관리 vs 호구
'사랑이 뭘까'라는 일본 영화를 보았다. 한 명의 쿨녀와, 한 명의 어장관리녀와, 두 명의 호구 남녀와, 한 명의 처음엔 어장관리 남이었다가 나중엔 호구가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청춘 드라마인 만큼 풋풋하고 예쁘고, 잔잔한데 지루하지 않아 재미있게 보았다.
영화를 보며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는 어장관리 쪽이었어 호구 쪽이었어?" "나는 어장관리 쪽이었지."라고 대답하는데 유독 힘차게 굵어지는 목소리가 "나는 당연히 단연코 어장관리 쪽이었지!"로 들렸다. 요일별로 다른 여자를 만났으나 사귀지는 않았고, 무조건 더치페이했는데 그래도 신기하게 여자들이 부르면 나왔다나? 참나..ㅋ
반면 나는 단연코 호구 쪽이었다. 그래서 여주인공이 한심하고 말리고 싶어도 솔직히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기에, 나의 옛 모습이 그러했기에, 목구멍에 뭐가 걸린 듯 불편했다. 나 또한 여주처럼 좋아하는 마음을 있는 대로 다 표현했었고 잘해주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으니까.
그래도 그때의 내가 있기에 지금의 행복한 내가 있다. 스스로 반성을 했다기 보단 남편을 만나 저절로 다른 내가 되었다. 하늘이 도왔다. 너무 다행이다. 남편 또한 그리 보낸 시간이 있었기에 어느 날 회의를 느끼고 한 사람에게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연찮게도 그 상대가 나인 것이다.
제 짝이 있긴 한가보다. 남편도 나도 지난 역사들과 정 반대의 연애를 했는데 결혼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를테면 나는 나이가 대여섯 살은 더 많은 아빠 같은 느낌의 사람들과 인연이 잦았고, 데이트 비용은 거의 그들의 몫이었다. 그땐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하지만 세심하게 챙기고 잘해주는 건 내 쪽이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연하를 만났고 마침 돈을 벌기 시작한 시기어서 내가 돈을 쓰기 시작했다. 동시에 전에 없던 관심과 챙김을 받았다. 받는 사랑이 그리 행복하다는 걸 서른이 되어 처음 알았으니 말 다했다.
한편 남편은 오빠 소리 듣기를 좋아해서 연하만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모두 눈이 크고 예뻤고, 키가 작았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결혼한 여자는 키가 크고 눈이 작은 연상녀다. 이만큼 정확하게 거꾸로이기도 힘들 것 같은데 이게 실화다.
결과는 지금까지로 봐선 성공이다. 연애부터 9년째에 접어든 지금, 남편 입장이야 들어봐야 알겠지만, 나는 여전히 그를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들이 둘이나 생겼다. 그리하여 우리 둘 사이는 이제 육아 전쟁에 동참한 전우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아쉽지 않다. 이 관계 또한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예상보다 더 책임감이 강하고 최선을 다 하는 아빠여서 나만 잘하면 앞으로도 우리 가족 큰 걱정은 없을 것 같다. 한때의 어장관리남과 한때의 호구녀가 만나 운 좋게 성공한 케이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