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과 선택 사이의 춤

AI 시대, 큐레이터는 어떻게 창작하는가

by 류임상

#1. 선형에서 순환으로


생성과 선택 사이의 춤. AI 시대 창작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은유입니다.

전통적 창작은 선형적이었습니다. 구상 → 실행 → 완성.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할 때 저는 이 경로를 충실히 따랐습니다. 전시 주제를 정하고, 작품을 선정하고,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6개월이 걸렸습니다. 각 단계는 명확히 구분됐고, 되돌아가는 것은 실패를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AI와의 창작은 춤입니다. 제가 리드하는 순간도 있고, 알고리즘이 리드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교차입니다. 제가 의도를 제시하면, AI가 해석을 내놓습니다. 그 해석은 제 의도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의도를 조정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혹은 더 열린 방향으로. AI는 또 다른 해석을 내놓습니다.


이것은 대화가 아닙니다. 대화는 언어로 이루어지지만, 이 춤은 결과물로 이루어집니다. AI는 말하지 않습니다. 생성할 뿐입니다. 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선택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 생성과 선택의 반복 속에서, 처음 제가 상상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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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춤의 세 가지 리듬


춤에는 리듬이 있습니다.


첫 번째 리듬은 '제안과 반응'입니다. 저는 프롬프트로 제안하고, AI는 결과물로 반응합니다. 이 리듬은 빠릅니다. 30초에서 1분. 미술관에서 전시 작품 하나를 선정하는 데 며칠이 걸렸다면, 지금은 몇십 초입니다. 하지만 속도가 빨라졌다고 판단이 얕아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판단은 더 본질적으로 압축됐습니다. '이것인가, 아닌가'를 직관적으로 알아차리는 능력. 20년간 수천 점의 작품을 보며 축적된 감각이, 이제 초 단위로 작동합니다.


두 번째 리듬은 '통제와 우연'입니다. 저는 프롬프트로 방향을 통제하려 하지만, AI는 항상 예상 밖의 요소를 포함시킵니다. 처음엔 이것이 오류처럼 느껴졌습니다. "내가 원한 게 이게 아닌데." 하지만 점차 깨달았습니다. 이 예상 밖의 요소야말로 AI와 춤추는 이유라는 것을. 완전히 통제 가능하다면, 그건 춤이 아니라 프로그래밍입니다. 완전히 통제 불가능하다면, 그건 춤이 아니라 도박입니다. 춤은 그 사이, 의도와 우연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일어납니다.


세 번째 리듬은 '발견과 정제'입니다. AI가 생성한 결과 중에는 제가 찾던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제가 찾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발견하고, 그 발견을 다음 프롬프트에 반영합니다. 이렇게 우연히 발견한 요소가 점차 작품의 핵심이 됩니다. 춤의 처음 스텝과 마지막 스텝은 완전히 다른 방향을 향합니다. 하지만 그 궤적은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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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 파트너와의 동시 춤


단순한 춤이 아닙니다. 3차원의 춤입니다.


음악 AI에게 프롬프트를 줍니다. 멜랑콜리한 분위기의 인디 포크. 결과가 나옵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음악에 맞는 영상을 상상해야 합니다. 해질녘 바닷가? 아니면 비 오는 도시?


영상 AI에게 프롬프트를 줍니다. 'cinematic sunset over empty beach, melancholic mood, golden hour'. 결과를 봅니다. 음악과 맞습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합니다. 이 조합에 어떤 이야기를 얹어야 할까?


가사를 씁니다. '파도가 기억을 지운다'는 첫 줄. 음악을 다시 듣습니다. 가사와 멜로디가 어긋납니다. 음악 프롬프트를 수정합니다. 'add more space between verses, contemplative pauses'.


새 음악이 나옵니다. 가사와 잘 맞습니다. 하지만 이제 영상의 템포가 너무 빠릅니다. 영상 프롬프트를 수정합니다. 'slow motion, longer takes'.


이것이 진짜 춤입니다. 음악과 춤추는 동시에 영상과 춤추고, 글과도 춤춥니다. 하나를 수정하면 다른 두 개가 흔들립니다. 세 개의 파트너와 동시에 춤을 추는 것. 어느 하나에만 집중할 수 없습니다. 세 가지를 동시에 감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세 요소가 서로를 변화시킨다는 점입니다. 음악이 영상의 방향을 바꾸고, 영상이 가사의 톤을 조정하고, 가사가 다시 음악의 편곡을 요구합니다. 순환적 영향. 이것은 단순한 조합이 아닙니다. 상호 변형입니다.


전시를 기획할 때도 작품들 사이의 관계를 고려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완성된 작품들 사이의 배치였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영상도, 음악도, 글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세 가지가 서로를 만들어가며 동시에 완성됩니다. 큐레이션이 창작이 되는 순간입니다.


#4. 다섯 가지 선택


이 춤에서 인간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생성이 아닙니다. 그건 AI가 합니다. 실행도 아닙니다. 그것도 AI가 합니다. 인간은 선택합니다. 하지만 이 선택은 단순한 선택이 아닙니다.


첫째, 방향의 선택입니다. 첫 프롬프트를 쓸 때, 저는 무한한 가능성 중 하나의 방향을 선택합니다. 이 선택은 이후의 모든 춤 스텝을 규정합니다.


둘째, 판단의 선택입니다. AI가 제시한 결과들 중 무엇이 "그것"인지 판단합니다. 이 판단은 기술적 완성도가 아니라 미적 적합성에 대한 것입니다. 측정할 수 없는 것. 설명하기 어려운 것. 그러나 분명히 느껴지는 것.


셋째, 조정의 선택입니다. 다음 프롬프트를 어떻게 쓸 것인가. 더 구체적으로 갈 것인가, 더 열린 방향으로 갈 것인가. 어떤 요소를 유지하고 어떤 요소를 바꿀 것인가. 이 선택이 춤의 다음 스텝을 결정합니다.


넷째, 종료의 선택입니다. 언제 이 춤을 멈출 것인가. 완벽을 추구하다 보면 춤은 끝나지 않습니다. 항상 더 나은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큐레이터의 핵심 역량입니다.


그리고 3차원 춤에서는 다섯 번째 선택이 추가됩니다. 균형의 선택입니다. 음악, 영상, 글. 어느 하나가 너무 강해지면 나머지가 묻힙니다. 세 요소가 서로를 살리는 지점. 그 균형을 찾는 것이 MX(Music experiment) 디자이너의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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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능성의 항해


생성과 선택 사이의 춤은, 결국 가능성의 건축학을 실천하는 방식입니다.


AI는 가능성을 펼쳐놓습니다. 무한에 가까운 선택지를. 인간은 그 가능성들 사이를 항해합니다.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변형할 것인가. 이 항해 과정이 춤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춤이 혼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AI 없이 인간은 상상한 것을 즉시 형태로 만들 수 없습니다. 인간 없이 AI는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모릅니다. 파트너십. 그러나 대등한 파트너십이 아닙니다. 인간은 의도를 가진 존재이고, AI는 실행하는 도구입니다. 하지만 그 도구는 단순한 도구가 아닙니다. 예측 불가능한 제안을 하는, 창조적 긴장을 만드는 파트너입니다.


#6. 멈추지 않는 움직임


춤은 계속됩니다. 오늘도 저는 새로운 프롬프트를 씁니다. 첫 스텝을 내딛습니다. 어디로 갈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하지만 그것이 춤입니다. 목적지가 정해진 여행이 아니라, 움직임 그 자체가 의미인 춤.


AI 시대의 창작은 이 춤을 얼마나 우아하게 출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리드할 줄도 알고, 팔로우할 줄도 알고, 예상치 못한 스텝을 즐길 줄도 아는.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 춤을 멈출지 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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