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왜 집회에 나오지 않을까?

by 태이

탄핵 정국을 지나오며 나의 흥미를 끌었던 사건이 있다. 바로 서부지법폭동. 사건 자체의 불법성과 폭력성을 넘어서 남성들이 분노를 분출하는 방법이 무척 흥미로웠다. 폭동을 일으켰던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불만을 국가 사법기관의 집기를 부수며 드러냈다. 왜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언론에서는 탄핵 정국 내내 청년 남성과 여성을 비교하며 보도했다. 서부지법폭동도 마찬가지. 젊은 남성이 다수였다는 취재를 쏟아내며 현재 한국의 젊은 남성 극우화가 얼마나 심각하게 진행 중인지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극단적 사례를 자극적이고 대결적으로 보도하는 프레임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그들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여전히 궁금했다. 청년 여성들은 정치적 불만이 있을 때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그냥 참는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뉴스를 보면서 한숨을 쉬거나 가족 친구들과 모여 이야기한다. 그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되진 않지만 그래도 감정은 풀 수 있다. 계속 참다가 한계가 오면 직접 행동하는 방식을 택한다. 물론 일상생활에 큰 부담을 짊어지지 않는 방식으로. 예를 들어 자주 사용하는 SNS에서 댓글을 달거나 주변 사람에게 게시물을 공유한다. 문제의식의 확장을 시도하는 셈이다. 조금 더 하자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조금 더 정치적인 활동을 원하는 여성들은 서명에 참여한다. 물론 주로 온라인으로 다른 사람이 올린 서명에. 스마트폰으로 1분 만에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세상이니 그다지 어렵지 않다. 마지막으로 더 딥하게 불만을 해결하고 싶어지면 드디어 발을 움직인다. SNS를 통해 집회 소식을 확인하고 가까운 지인과 함께 참여한다.


반대로 남성의 경우를 살펴보자. 사실 온라인 커뮤니티까지 크게 다르지 않다. 조금 더 활동적인 남성이라면 서명까지도 가능하다. 그러나 집회 참여까지 문턱은 매우 높다. 실제로 주변에 집회에 참여해 본 적 있냐는 질문을 남성 친구들에게 해보면 그 정도까진 못하겠다고 답한다. 그 이유를 물어보면 역시 시간과 돈 문제를 꼽는다. 바쁘고 힘들어서 내 일상의 시간을 어딘가에 쓸 수 없다고 한다.


집회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사실 전 국민 중에 일생에 한 번이라도 집회 참여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을 물어본다면 정말 손에 꼽을 거다. 하지만 청년 남성과 여성의 정치적 불만 해결 방식에 다름이 있다는 건 눈여겨볼 만하다. 집회 현장에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공동체적이고 집단적 행위인지. 집회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개인으로 모이지만, 막상 시작하면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같은 구호와 동작을 반복한다. 그 과정을 경험하는 시민들은 얼굴이 보이는 익명의 다른 시민과 '하나 됨'을 경험한다.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정치적 현장에서 파편화된 개인이 아닌 집단 안에서의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사실 집회의 결과로 정치적 불만이 해결되느냐는 덜 중요해진다. 참여의 경험만으로 위안과 희망을 얻게 되니. 우리는 그걸 '연대'라고 부른다.


집회라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연대감을 느껴본 여성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자조적 놀이문화를 향유하는 남성들. 비교하려면 그렇게 비교할 수 있겠다. 참고로 남성들이 그래서 여성들보다 못하다거나 열등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고민은 집회에서 경험하는 폭력적이지 않은 연대의식을 청년 남성들이 느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뾰족한 답이 떠오르진 않는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남들과 단절되어 홀로 설 수 있는 건 대단한 권력이다. 인간은 본디 사회적 동물이라 하지 않는가. 누구나 타인과 연결되어야 살 수 있다. 집회에 나가지 않고 스마트폰 화면으로만 익명화된 누군가와 소통하면서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아주 큰 권력을 지니고 있는 거다. 더 크고 인간적인 차원의 연결이 없어도 충분히 '살만한'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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