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으면 모든게 완성될 것 같았어

아이낳으라는 가스라이팅

by 늘미쌤

한국나이로 27살, 만 나이로는 25살의 나이에 결혼을 했다.

그때는 약간 빠른거지 뭐..라고 생각했는데 만나이로 바꾸어 생각해보니 무척이나 빠른 결혼이었다.

예비 남편과 함께 우리 부모님을 만난 자리에서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자, 엄마의 얼굴은 숨길수없이 붉게 달아올랐다. 내가 초보엄마가 된 듯, 친정부모님도 이런 상황은 초보인 부모이셨을게다. 나중에야 말씀해주셨는데, 두분은 정말 단순히 남자친구를 소개해주는 자리인 줄 아셨다고 했다. 남편을 보내고,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길. 엄마아빠는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이렇게 빨리 첫째딸을 시집보낼줄은 몰랐다고 하셨다. 그때 엄마가 말한, “빠른 결혼” 이란 단어는 내 귀에는 그저 스쳐가는 말이었다. 결혼하고 싶었고, 결혼하고 싶은 남자를 만났으니 그저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친정 엄마도 그 나이 세대에서는 조금 이른 결혼을 하셨다. 그래서 종종 “결혼은 천천히, 혼자 살 능력있으면 안해도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엄마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엄마의 결혼생활이 ‘유독’ 힘드셨나보다 했다. 나는 누군가의 사랑과 보살핌을 원했던 것 같다. 연애는 그런 나의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다. 언제든 헤어지면 그만인 관계였으니까. 그래서 결혼이라는 것이 하고싶었다. 결혼을 하고나면 헤어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사랑할수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와 나를 결혼이라는 제도로 꽁꽁 묶었다.

관계에 서툴러서 조금만 어긋나도 금새 헤어지곤 했던 내가, 한 사람과 평생 맞춰가야하나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저 나에게 잘 맞춰줄 남자를 골랐다고 생각했다. 신혼때는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너무 행복해서 이 행복이 달아날까봐 두려울 정도였다. 어쩜 이렇게 좋은 남자를 골랐을까 나의 안목에 스스로 머리를 토닥였다.

남편이 좋은 사람이다보니 시부모님도 좋은 분들이셨다. 자라는 내내 친정엄마가 시집살이에, 시댁식구들의 유난에, 힘들어하시는 모습만 보고 크다보니, “시”자가 들어가는 건 무조건 안좋은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오래된 나의 선입견을 한순간에 바꾸어주신 분들이었다. ‘시댁이 이렇게 좋을 수 있다니!’ 나의 나쁜 선입견은 좋으신 분들을 계속해서 의심하게 만들었다. 처음이니까 그럴거야. 곧 본성을 드러내실거야. 시댁은 시댁일뿐이니까..하고. 그러나 나의 의심은 한번도 깨어진적이 없었고, 시댁식구들끼리 했던 둘째의 돌잔치에서 아버님이 하신 연설에 나는 눈물을 흘리고야 만다.

“잠깐, 내가 일어서서 말 좀 해도 되겠나? 오늘은 우리 손자의 첫돌을 축하하러 모인 자리이기는 하지만, 나는 우리 며느리한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한번씩 우리집에 와서 며느리의 모습을 보면, 아장거리는 두 애들한테 눈한번 못떼고 종종거리는게 나는 너무 안타까웠다. 내가 못보는 모든 날에 그렇게 지낼텐데 얼마나 힘들겠나 싶어.. 이때까지 공부만하고 곱게 컸을텐데 애들 키운다고 일도 그만두고 집에 있느라 고생이 많다. 고맙다 며늘아..”

아버님의 모든 말이 다 정확하게 기억나는 건 아니다. 한두마디 시작하고 나서부터 눈물이 앞을가려서 눈물을 훔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모두에게 괜찮다. 안힘들다고 애써 웃어보였는데, 오랜만에 곱게화장하고 나와서는 눈물을 줄줄 흘리는 가련한 모습이라니.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않아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참았다. 아마 그때 나를 보는 시선들이 없었다면 눈물콧물을 다 흘리며 엉엉 울었을 것 같다. 내 앞에 앉아있던 시조카가 나를 보며 “숙모 진짜 고생 많으셨죠?”하는데, 웃으면서 “아니야. 삼촌도 많이 도와줘서 괜찮았어.”라고 애써 웃어보였다. 위로의 힘, 알아주는 말의 힘은 이런 것 같다. 남편이 내 고생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을때는, 울분을 토하면서 “내가 얼마나 힘든줄 알아? 오늘은 뭘했고, 뭘했고, 어쩌고 저쩌고...”하고 쏟아냈었다. 그런데 “힘들지? 내가 다 알아. 정말 고생이 많아.” 한마디에는 “아니에요. 괜찮아요.” 하는 말이 나오다니.


어찌됐건 이렇게 좋은 남자를 만나서 신혼의 달콤함을 만끽하던 나는, 출산과 육아도 가볍게 생각했다. 우리 둘이서 이렇게 행복하니, 이제 아이를 낳고 완성된 가정을 만들어 더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

왜 모두 아이를 낳으면 더 행복해지고, 더 완성된 가정이 된다고 나를 가스라이팅 한걸까? 이건 사회전체적인 가스라이팅이 틀림이 없었다. 나는 아무 의심조차 하지않고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아이를 가졌으니까..

깜짝 선물이라며, 엄마아빠에게 첫째의 초음파사진을 내밀었을때도 엄마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으셨다. 딸의 고생을 예감하는 엄마의 걱정이었으리라. 손주를 만난다는 기쁨보다 엄마는 내딸의 고생이 더 걱정스러우셨나보다. 그때는 생각보다 놀라고 기뻐하시지 않는 것 같아서 의아했는데 지금은 너무도 알것같다. 나도 지금의 딸에게 그때의 우리엄마처럼 말해주고 싶으니까.


어찌됐건 나는 정말 동화같은 가정의 모습을 꿈꿨다. 그때는 동화스럽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너무도 현실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햇살이 내리쬐는 거실, 토끼같은 두 아이가 깔깔 웃으며 뛰논다. 나와 남편은 소파에 붙어앉아 그런 아이들을 보며 미소짓는다. 드디어 우리의 가정이 완성된 것 같다. 나와 남편은 손을 꼬옥 마주잡고, 서로를 보며 행복한 미소를 주고받는다.]

마치 어느 가족영화의 해피엔딩 장면같다.


그러나 현실은..

[햇살이 내리쬐는 거실, 햇살 때문에 먼지가 풀풀 날리는게 너무도 잘 보인다. 토끼라기보다는 망아지 같은 두 아이가 괴성을 내면서 뛰논다. 나와 남편은 그런 아이들에게 “밑에 집에서 올라와! 뛰지마!!”하고 성을 내고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다. 나는 소파에 앉은지 몇초도 되지않아 다시 벌떡 일어나서 첫째에게 달려간다. “위험해! 조심하라고 했지?” “여보! 둘째 똥쌌나봐 기저귀 좀 갈아!” 부엌에 아이들 밥을 준비하러 갔던 남편도 소환된다. 집안의 풍경은 며칠째 치우지 못한 집처럼 엉망진창이다.]


가정의 완성. 4인가족. 그 꿈은 이루었으나, 이게 정말 나의 꿈이었나? 내가 고민해보고 벌인 일은 맞나? 나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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