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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Nov 30. 2022

건강한 한부모 양육 문화 조성을 위해

결혼 실패자의 변명

토요일 아이들과 가족 퀴즈대회에 참가했다. 대회는 관내 가족센터에서 일 년에 한 번 하는 성과보고회 세부 프로그램 중 하나로 개최된 것이었다. 나는 휴직 시기 어린이집을 통해 참여했던 부모역할 수업을 계기로 가족센터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 센터에서 운영하는 밴드에 가입하여 센터의 다양한 행사 소식을 받아보고 있었다. 센터는 주로 다문화 가정, 맞벌이 가정, 조손 가정 등 도움이 필요한 가정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데 올해 우리 가족은 가족사랑의 날 맞이 축구관람에 이어 이 성과보고회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성과보고회는 센터에서 올 한 해 동안 이룬 성과와 업적을 관계기관에 보고하고 지역주민과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기에 볼거리, 즐길거리, 선물까지 풍성한 잔치나 다름없었다. 트리 만들기 체험, 가족 퀴즈대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었고 퀴즈대회 상품 또한 굉장했다. 회사에서 공모전 행사 담당을 고 있는 나로서는 굳이 상품을 타지 못하더라도 관이나 지자체에서 하는 행사의 규모나 진행 방식, 식순 등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에 일주일에 한 번 아이들 축구 수업도 빼먹기로 하고 행사를 기다렸다.


행사 당일, 주차 때문에 늦어지는 일을 막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선 우리는 행사 시작 40분 전에 행사장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행사장은 리허설 준비 중인 합창단, 응원단, 발표자들로 붐볐고 우리는 행사장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리허설을 지켜보았다. 청소년 응원단의 치어리딩 리허설이 끝나고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 빨간 나비넥타이를 두른 합창단이 무대로 들어섰다. 다문화가족 엄마와 자녀로 구성된 합창단원들은 중국민요 모리화를 중국어로 열창한데 이어, 한돌 작사 작곡의 '홀로 아리랑'을 불렀는데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라는 가사가 행사장울려 퍼지는 순간, 언어와 문화가 다른 타국에서 많이 외롭고 힘들었을 그녀들의 모습과 합창이라는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 그녀들의 시간이 가슴에 새겨져 눈물이 흘렀다. 다문화가족, 한부모가족 등 색다른 가정의 형태를 바라보는 차별적 시선이 줄어들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서서히 자리 잡고 있다지만 거대한 동종 집단 안에 이질적인 존재로 자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으로, 부부들 사이에서 혼자로, 아빠 엄마가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엄마 혹은 아빠만 있는 아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외롭고 힘든 일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에서 사회적 약자로 구분되는 한부모가정, 조손가정의 일부가 가계소득을 기준으로 복지의 테두리 밖에 존재해야 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금전적 수혜가 아니더라도 가족센터에서 운영 중인 이 합창단처럼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사회복지서비스는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데 말이다.


누가 등을 떠민 것도 아니고 덜 불행해지는 길을 찾아 스스로 결정한 이혼이었음에도 이혼 후 얼마 동안 나는 참 많이 힘들었다. 이혼 과정에서 겪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공황장애에 시달렸으며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부모가 그렇듯 내 마음의 상처를 치료할 틈도 없이 아이들의 상처를 살펴야 했으며, 가정의 형태가 바뀌고 주거 공간이 바뀐 혼란 속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출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이혼 후 두 해를 꼬박 채워 보낸 지금, 제법 마음의 건강을 회복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게 휴직이라는 기회가 있었으며, 그것을 통해 사회에서 일정 부분 분리되어 나와 아이들, 내 가정만 오롯이 챙길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많은 한부모들에게 휴직의 기회가 남아 있는 것도 아니며, 기회가 있더라도 생계를 위해 휴직을 선택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알기에 한부모의 휴직이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은 한부모들이 아픔과 상처를 극복하고 긍정적인 한부모 양육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돕는 사회 전반의 노력이다.


나의 이런 바람에 대해 결혼에 실패한 여자가 성공한 사람들의 세금을 갉아먹으려 헛소리를 해대는 거라 치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때론 포기할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한 법, 나는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 발달을 위해 결혼 생활이 주는 경제적 안정과 보편적 가족형태를 포기하고 결혼 실패자가 되었지만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결혼 실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 계속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잦은 다툼은 물론 가정 폭력까지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혼 전에 부부상담도 받고 부부관계 개선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며 결혼생활을 정상적으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 부부의 결정적 이혼 계기는 생활습관이나 성격 차이가 아닌 남편의 외도와 거짓말이었고 나는 그것들을 용인해 줄 만큼 품이 너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기에 더 큰 화를 부르기 전에 이혼을 선택한 것이다.

 

이혼은 행복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덜 불행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덜 불행하기 위해 과감히 결혼 실패자의 길을 선택한 많은 한부모들이 아픔과 상처를 극복하고 건강한 한부모 양육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만들어지기를 다시 한번 간절히 바라 한부모들이 경제적 정서적 어려움으로 인해 행복한 가정문화를 만들지 못하고, 그로 인해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에 지장이 생긴다면 그 손해는 우리 몫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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