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당스 예술과 '도취'
첫 저작인 『비극의 탄생』(1872)에서부터 그리스 비극의 흔적을 모으고 정리하는 문헌학자보다는 모순의 삶을 정당화하는 철학적 프로그램, 예술가-형이상학Artisten-Metaphysik을 제시하는 철학자의 면모가 두드러짐에서 볼 때, 니체는 언제나 철학자였을 것이다. 이 잠재성이 형상화되고 외부로 드러나는 계기는 바그너와의 친교였다. 그도 그럴 것이 출판된 그의 첫 저작이 바그너에게 헌정된 것이었고, 전 저작 중 세 편의 제목은 바그너의 이름을 취하며―『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1876), 『바그너의 경우』(1888), 『니체대바그너』(1888)―또 나머지 저작에서 그가 예지하는 미래, 차라투스트로서 고지하는 삶이란 넘쳐나는 생명력에서 비롯해야만 하는데 그 대척점에 하강하는 생명력의 담지자로서 바그너가 있다.
『비극의 탄생』에서 바그너의 예술을 그리스 비극과 동일선에 놓던 니체는 반시대적 고찰 시리즈 중인 마지막 편인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에서 바그너를 아이스킬로스에 빗대어 다시 한 번 높이 산다. 그런데 다음 집필한 저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88)에 이르면 그 입장이 완전히 돌아선다. 이후 『바그너의 경우』에서는 삶의 활력성 원리에 따라 구분한 뒤 조직한 통일체인 데카당스—다른 하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다른 이름은 바그너적인 것이 된다. 『니체대바그너』는 필연을 마주함에서 부정의 태도를 보이는 바그너적인 것과 긍정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대비를 이루며 뚜렷해진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 독자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이 있다. <탄호이저>, <로엔그린>, <마이스터징어>와 같은 작품에 대한 평가도 바그너에 대한 입장이 바뀐 이후 뒤집힌다는 것이다. 바그너의 작품들은 변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더해 예술의 경험과 연관하는 도취의 문제도 후기에 이르러서는 다른 언어로 설명된다. 여기에는 고통의 문제가 있다. 고통의 문제는 니체로 하여금 스스로를 바그너에게 “선물”하게 했으며, 끝내는 스스로에게 복귀하도록 한다.
니체는 바그너와 그의 음악에 대해 착각했다고 말한다. 그 진상은, 바그너의 작품은 훌륭한 형식을 띄지만 그 내면은 퇴락할 수밖에 없다. 니체는 그 내면의 퇴락을 본능적으로—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냄새 맡는 코와 내장으로—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철학이 어느 정도 성숙하여 심리학자로서 그 진상을 파헤쳐낼 때까지 확신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흐름은 이러하다. 초기 니체는 바그너의 작품과 디오니소스적 예술은 모두 고통으로부터 잉태된다는 점을 파악했지만―『비극의 탄생』, 그의 이해에 무언가 결여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며 바이로이트에서 확신하게 된다―『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 이후 니체는 마침내 (예술을 잉태하는) 고통의 근원까지 간파하게 된다—이후 모든 저작. 이 오해와 그 맥락을 따져보기 위해서는 니체의 저작들을 순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니체가 『비극의 탄생』에서 바그너에 보내는 찬사는 그의 작품들이 다루는 고통의 심원함, 강인한 비극적 영웅들, 또 바그너가 음악적 천재라는 그 자체 외에도 많은 것들을 포함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그너에 음악에 대한 찬사에 사용하는 언어들은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대한 묘사로도 보여진다는 것이다. 니체는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예술과 문화에서의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훌륭한’ 독일정신 연관시키고 있는데, 이는 바그너에 대한 간접적이면서도 가장 강렬한 찬사이다. 그가 독일정신이 “디오니소스적인 힘을 그대로 지닌 채“, ”접근할 수 없는 심연에서 안식을 취하면서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할 때, 그 잠든 독일정신의 ‘증거‘가 바그너라는 사실의 전언이야말로 이 책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기술技術적인 면에서는 바그너가 신화와 상징을 사용하는 면을 높게 평가했다. 바그너는 옛 신화를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깊이를 부여하는 능력이 뛰어났으며 이것이 훌륭한 형식으로서 드러났던 것이다. 또한 신화적 깊이를 통해 바그너의 작품에서는 보편적인 주제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서 신화와 상징의 사용에 있어서 근대인과 고대 그리스인들이 니체에게 근본적으로 다르게 파악되는 이유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신화를 변용하고 상징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그리스인들은 ’디오니소스 가면‘ 뒤에서 자신을 보았다. 그들이 가진 삶에 대한 강력한 옹호본능은 지상의 것—세계, 나, 삶—을 부정하지 않는 자애적이고, 명랑한 면모를 내세워 비극을 탄생 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젊은 날의 니체가 볼 때, 바그너는 고귀한 비극적 영웅들이 있는 신화의 변용으로서의 오페라에 비극적 요소를 적재적소 사용하여 인간성을 고양시킨다. 다시 말해 바그너의 음악은 그리스 비극의 효과를 답습하는 것이고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다.
바그너에 더할 수 없이 호의적이었던 젊은 니체는 중요한 변곡점을 맞게 되고,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는 그 가운데 쓰였다. 이 에세이는 명목적으로는 바이로이트에서의 성공적인 공연을 이끌어낸 바그너와 그의 작품들을 말하고 있지만, 여지없이 바그너를 칭송하는 것만으로 보기는 어렵다. 전작과는 다른 은밀한 비평의 목소리가 곳곳에 드러난다. 물론 이 에세이의 표면적 목적은 잘 지켜졌으며, 그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다음과 같이 표명한다. ”그 텍스트에서 바그너라는 단어가 나오면, 거기에 내 이름이나 ‘차라투스트라’라는 단어를 한 점 주저함없이세워도 무방”하다고.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바그너“라는 이름은 하나의 상징으로서만 니체의 이상을 대변하고 실재적인 바그너를 칭하는 곳곳에서 비판의 뉘앙스를 읽을 수 있다. 언제나 양면성을 함축하는 니체의 사상처럼 니체의 말도 다층적 의미를 고려한다면 말이다. 다음과 같은 예를 보자. 니체가 바그너의 오페라 공연이 연극이 성공적이었으며 대중들은 열광했다는 현상적으로 긍정적인 면을 제시할 때, 대중—딜레당트—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가지는 바그너의 작품이 그 작자作者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주는가의 반문 역시 함축한다. 그리고 『바그너의 경우』가 그 반문에 대한 답이다. 이 에세이에서 바그너로 대변되는 이상을 서술하지만 바그너적 실재성은 한순간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의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에 대한 논평은 이런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마지막 문장은 의미심장하다. 니체는 바그너가 “그가 우리에게 보이고 싶어 했던 미래의 예언자의 모습이 아니라, 과거를 해석하고 변용하는 자”라고 말한다. 이는 바그너의 음악적 성취가 앞으로 다가올 것에 대한 비전이라기보다는 이미 있었던 것에 대한 해석이라는 의미다. 그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그너의 작품, 특히 그의 오페라가 이전 시대의 사상, 신화에 깊이 뿌리 박혀있다는 것이다. 니체가 볼 때 이런 (이집트화된) ‘과거’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한하며 진정한 예술은 ‘옛’ 것과 단절하고 도약하는 창조에 있다.
니체의 모호하고 유보적인 태도를 볼 때 그는—책의 목적을 위해—일부러 숨기고 있거나 지금껏 느껴오던 것을 바이로이트에서 확신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 사태를 놓고 바그너에 대한 자신의 초기 이해가 완전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니체는 이 오해에 대해 탐구하게 된다.
그는 ‘심리학자’로서 탐구한다. 니체가 처음 ‘심리학’을 언급하는 것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다. 이 책은 니체가 고전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그의 초기 철학적 스타일에서 벗어나 좀 더 독창적인 접근 방식으로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결과에서 원인을, 원인의 동기를 추적하는 것을 니체는 “심리학”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심리학의 등장은 니체가 인간의 행동, 동기, 그리고 행동을 유발하는 원시元是적 힘의 복잡성—이후 니체의 철학의 지속적인 주제가 됨—을 탐구하겠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가지는 동기들, 힘들을 찾아내고 분석하는 심리학적 관찰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에 대하여 숙고하기에 적합하다. 한편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옹호하는 바그너와 바그너적인 것들—이성주의적이고 이집트주의를 고수하는 창조의 공간을 상실한 것들: 바그너의 작품들, 철학자들, 학자들—은 그 반대이다. 니체가 누누이 밝히듯 그리스도교적 가치, 그러한 도덕은 인간에게 원죄를 부여하고 지상이 아닌 천상의 것들을 지향하고자 본능을 부정하도록 명령할 뿐이지 지상의 것과 유대감을 가지거나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따라서 ‘심리학자‘ 니체의 시각을 빌려 이해해본다면 바그너적인 것들은 어쩌면 검토할 필요도 없이 반드시, 언제나 예술로서 실패한다. 왜냐하면 심리학자는 이미 ’벌어진 사태‘에서부터 동기를 좇아가기 때문이다. 바그너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는 심원한 고통을 알고 변용할 수 있는 자이지만, 그 고통이 삶의 결핍으로부터 온다. 이것은 바그너적인 것의 가장 크고, ’유일한‘—다른 모든 것들은 여기서 파생되기에—문제다. 생명력의 결핍으로 고통 받는 자는 삶을 부정하면서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과거는 ’영속적‘인 개념이다. 즉 삶을 부정하는 자에게서 잉태된 것은 삶을 부정하고 앞으로도 삶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즉 바그너적인 것은 그 출발점인 창작자로 인해 영원히 예술—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아니다.
고통을 생명력의 정도라는 발단에서부터 관찰하자 고통은 두 가지로 나뉘게 된다. 자연스럽게 예술에 대한 니체의 개념 또한 두 종류로 나누어지는데, 예술의 출발이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 둘은 판가름 짓는 것은 고통의 문제다. 이 과정을 거치자 니체는 바그너를 좋은 예술에서 나쁜 예술 범주로 재분류한다. 『니체대바그너』에서는 이것이 다음과 같이 체계적으로 드러난다. 모든 예술, 모든 철학은 항상 고통과 고통을 전제로 하며, 삶을 나아가게하거나 퇴락시키는 도취제이다. 삶을 증진하는 예술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비극적인 통찰력과 미래다. 이들에게 예술은 디오니소스적인 도취를 맛보게 하며 이때 생명력은 고양된다. 그런데 어째서 어떤 사람들은 삶을 퇴락시키는 나쁜 예술을 소망할까? 이들이 생명력의 결핍으로부터 쇠진한 상태에 있어 전진하기보다는 휴식, 잔잔한 바다 또는 황홀경을 원할 수밖에 없어서다. 이들은 예술과 철학이 제공하는 ’도취‘—그러나 여기서는 경련과 마비—에 심취한다. 이것으로부터 니체는 바그너의 작품들은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아니라 ’도취‘시키는 것이라고 확정한다. 그런데 『비극의 탄생』을 돌이켜보면, 니체가 논하던 바는 도취는 디오니소스적인 체험으로부터 따라나온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니체는 모든 '도취’가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예술을 통해 삶 그 자체에 도취할 수도 있고, 경련과 마비의 도취를 통해 삶으로부터의 일시적인 도피만을 갈구할 수도 있다. 젊은 니체에게 그리스 비극과 견주어 세우던 좋은 예술의 정점으로의 바그너 음악은, 두 번째 종류의 도취를 주는 것이므로 더 이상 예술이 아니게 된다.
앞에서도 말했듯 진정한 예술에 대한 니체의 생각은 언제나 잠재되어 있었다. 『비극의 탄생』에서부터 그는 무대조, 음송조, 그리고 당대의 새로운 예술장르인 오페라처럼 미학적 욕구에서 탄생한 것이 아닌 것은 비미학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것들이며, 이들은 처음부터 다른 목적으로 태어났기에 예술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다. 니체에게 예술은 언제나 오직 디오니소스적인 예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극의 탄생이나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에 니체가 높게 평가하는 면들을 가진 바그너는 분명히 어떤 면에서 ‘대가’였기에 니체는 스스로를 바그너에 “선물”하고 말았던 것이다.
훌륭해 보이는 형상을 빚는 대가인 바그너를 보면서 그 역시도 한 때 바그너주의자였기 때문에 니체는 더욱 격렬하게 바그너에 대항했다. 바그너에 환호하는 대중들이 이미 병든 상태이기는 해도 바그너의 음악이 그 훌륭한 형상으로 병든 가치들을 효과적으로 지지하기에 홍보와 권유까지에 이른다. 니체는 바그너적인 것들이 병든 당대 독일문화를 더 병들게 한다고 봤다. 차라투스트라의 표현을 빌리면 바그너는 사제이다. 그런데 유능한 사제다. 열심히 고함을 지르고 양 떼들을 몰아 한 곳으로 끌어간다. 그러나 사실은 그 목자 또한 양 떼의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