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돈을 주고 살 수 있다. 그림이 돈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자본주의 역사보다 훨씬 이전부터 그림은 교환 거래에서 가치가 있었다. 그런 그림이 미술 경매 시장이 생기면서 온갖 경제 화폐로 거래되고 있고 NFT 시장에서 그림은 제 역할을 하려(!) 관계자들이 굉장히 애를 쓰고 있다. 여윳돈이 있으면 주식을 하거나 그림을 살 수 있는 지금. 그림을 보러 가는 것도 역시 돈을 준다. 당연한데, 왜 당연하지 싶은 전시 경제의 세계에서 보편적인 공감을 받는 것은 미술 그것도 회화 미술이다. 전국 각지에 공공 미술관은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빌려와 그림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갤러리는 입장료는 없지만 그림을 팔기 위해 전시를 해둔다.
그림을 좋아하는 엄마를 두었지만 엄마는 전시회나 갤러리에 갈 시간은 없었나 보다. 기억나는 유년시절부터 엄마와 그림을 보러 가는 문화생활 기억은 없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과 '뭐 하고 놀까' 카테고리에 전시 관람이 추가되어 보러 가는 경험을 쌓았다. 전시회를 통해 유명함을 학습하는 경험이었다. 그림을 보는 방법을 잘 모르니까 캔버스 앞에서 요리조리 생각하며 이런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하는 거구나, 이런 화풍을 인상파라고 하는구나 그런 것을 배웠다. 그림의 낙찰 가격을 듣고 여러 번 놀라면서 말이다. 그림을 볼 줄 아느냐는 나에게 중요한 질문이 아니다. 나에게 느낌을 주는 그림을 알아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사고 싶은 그림이 있다. 지금까지 사고 싶다고 생각한 그림이 딱 하나 있다. 세계 미술사에서 알아주는 그런 유명 화가의 그림이 아니다. 난다 긴다-사간다 하는 그림들보다 내 눈에 확 들어왔던 그림은 남원에서 책방을 운영할 때 동네 미술 전시에서 본 그림이었다.
사고 싶은 이 그림의 제목은 <왕 위옌의 손>
작가가 전북도립미술관 레지던시 참여 작가로 활동할 때 함께했던 대만작가 왕위옌의 손을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인체의 부위, 특히 손을 가지고 애니메이션을 만드는데 이 손이 주는 굴절과 동작이 허무하면서 서정적이면서, 활동적이다. 작가의 애니메이션에도 확인할 수 있다.
https://youtu.be/BvhrJq_bRm8?si=9u6d-ont_AqoExE9
내 눈이 익숙한 화풍이 아닌 그림을 보고 강한 느낌을 받은 그림이었다. 작품 속 손을 보고 내 손을 번갈아 보게 된다. 손의 움직임과 형태, 손과 나와의 관계를 볼 수 있게 만들어준 그림이다.
작가와도 아는 사이인지라, 그림을 보자마자 '성애바(작가 별칭), 나 이 그림 사고 싶어. 소장하고 싶다' 말했다. 작가는 사라고 했지만 살 수는 없었다. 둘 곳이 없기 때문이다. 노마드 인생에서 그림은 책 보다 이고 지고 다니기 더 힘겨운 품목이다. 그래서 사진 않고 작가의 허락을 맡아 한동안 프린트를 하여 책상 위에 액자로 붙여두었다.
언젠가 어느 공간에 정착하게 된다면 사고 싶은 이 그림을 사서 가장 넓은 공간 벽에 내 손으로 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