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아라 Jul 27. 2024

엄마가 그린 그림(1)  

엄마의 어린 시절 장래희망은 화가였다. 어린 시절 자신의 엄마가 논밭에 일하러 가면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고 동생들 돌보며 집을 지켰어야 했는데 그때 자신의 친구가 되어 준 게 그림이었다고,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 준 중학교 선생님을 아직도 기억하며 감사한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고 했다. 작년 엄마를 알아가는 여행으로 함께 간 크로아티아에서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껏 들으며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여행 중 자유시간을 얻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 때 엄마에게 작은 도화지와 펜을 쥐어주었다. 처음에는 부끄럽다고 안 그린다고 했지만 여행은 엄마도 용기를 낼 수 있게 도와주었고, 엄마는 낯선 곳에서 자신의 스타일대로 스케치를 슥슥 이어갔다. 그러면서 엄마는 한국에 돌아가서 일상 속에서 자주 그림을 그리겠노라 다짐했더랬다.


하지만 그 다짐은 올해 엄마가 새롭게 시작한 일과 매일 챙겨야 하는 가정 일 속에 어느덧 묻혔나 보다. 매일 엄마와 통화를 하지만 엄마가 그림 그린다는 소식을 도통 들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그림을 그리게 해주고 싶었다. 엄마의 그림이 보고 싶어졌다.


묘수를 썼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께 꽃 선물을 종종 보냈는데 이번에는 꽃을 보냈다 하지 않고 숙제를 보냈으니 꼭 확인해 달라고 했다. 엄마는 내심 좋으면서 무슨 숙제냐며 다그쳤지만 엄마가 택배를 확인할 때까지 나도 용케 말하지 않고 참았다.


엄마가 택배를 받았는지 전화가 왔다.


엄마 : 이게 숙제가? 꽃이 무슨 숙제고?

나 : 엄마 꽃 좋아하잖아, 꽃을 자세히 보고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하하

엄마: 별시렵구로(별일이네..) 이 더운 날 무슨 그림이고..  

나 : 이번에 꽃 그리면 다음에도 꽃 보내줄게~ 꽃 이름은 리시안셔스다.

엄마 : 이름도 어렵네.. 리샨셔츠.. 알았다.  


오래 걸리지 않아 엄마는 카톡으로 그날 스케치한 그림을 보내주었다.


테이블 천까지 온통 꽃밭 ㅎㅎ


내가 스케치도 좋은데 색을 칠하면 더 좋겠다고 하니 내가 사준 색연필을 찾아 색을 촘촘히 넣었다. 본 그대로 넣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채웠다고 부연설명도 빼놓지 않으셨다.

엄마의 그림 <리샨셔츠> 

배경도 화가 스타일로 채워보면 좋겠다 하니 그건 놔두겠단다. 여백의 미로 두겠다는데 더 그리기 귀찮은 뉘앙스로 느껴지는 건 나의 기분 탓이겠지만, 그 말은 하지 않고 그림이 너무 멋지다고 액자로 만들어야겠다고 하니 그 정도는 아니라고 액자 아깝다고 하셨지만 본가에 갈 때 작은 액자로 넣어놔야지.


그렇게 엄마기 좋아하는 꽃으로 유혹하여 내가 보고 싶은 엄마의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올해도 엄마의 그림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드는 한편,  엄마가 어린 시절 그리고 싶었지만 포기했어야 했던 내면의 아이와 마주할 수 있게 다음에는 같은 풍경을 보고 함께 그려볼 계획을 세워야겠다. 이런저런 엄마와 수다 떨며 그리는 그림도 참 즐겁겠지.


아무튼, 엄마의 그림 그리기 대작전 성공이다!   



  

이전 17화 사고 싶은 그림(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