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어린 시절 장래희망은 화가였다. 어린 시절 자신의 엄마가 논밭에 일하러 가면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고 동생들 돌보며 집을 지켰어야 했는데 그때 자신의 친구가 되어 준 게 그림이었다고,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 준 중학교 선생님을 아직도 기억하며 감사한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고 했다. 작년 엄마를 알아가는 여행으로 함께 간 크로아티아에서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껏 들으며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여행 중 자유시간을 얻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 때 엄마에게 작은 도화지와 펜을 쥐어주었다. 처음에는 부끄럽다고 안 그린다고 했지만 여행은 엄마도 용기를 낼 수 있게 도와주었고, 엄마는 낯선 곳에서 자신의 스타일대로 스케치를 슥슥 이어갔다. 그러면서 엄마는 한국에 돌아가서 일상 속에서 자주 그림을 그리겠노라 다짐했더랬다.
하지만 그 다짐은 올해 엄마가 새롭게 시작한 일과 매일 챙겨야 하는 가정 일 속에 어느덧 묻혔나 보다. 매일 엄마와 통화를 하지만 엄마가 그림 그린다는 소식을 도통 들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그림을 그리게 해주고 싶었다. 엄마의 그림이 보고 싶어졌다.
묘수를 썼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께 꽃 선물을 종종 보냈는데 이번에는 꽃을 보냈다 하지 않고 숙제를 보냈으니 꼭 확인해 달라고 했다. 엄마는 내심 좋으면서 무슨 숙제냐며 다그쳤지만 엄마가 택배를 확인할 때까지 나도 용케 말하지 않고 참았다.
엄마가 택배를 받았는지 전화가 왔다.
엄마 : 이게 숙제가? 꽃이 무슨 숙제고?
나 : 엄마 꽃 좋아하잖아, 꽃을 자세히 보고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하하
엄마: 별시렵구로(별일이네..) 이 더운 날 무슨 그림이고..
나 : 이번에 꽃 그리면 다음에도 꽃 보내줄게~ 꽃 이름은 리시안셔스다.
엄마 : 이름도 어렵네.. 리샨셔츠.. 알았다.
오래 걸리지 않아 엄마는 카톡으로 그날 스케치한 그림을 보내주었다.
내가 스케치도 좋은데 색을 칠하면 더 좋겠다고 하니 내가 사준 색연필을 찾아 색을 촘촘히 넣었다. 본 그대로 넣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채웠다고 부연설명도 빼놓지 않으셨다.
배경도 화가 스타일로 채워보면 좋겠다 하니 그건 놔두겠단다. 여백의 미로 두겠다는데 더 그리기 귀찮은 뉘앙스로 느껴지는 건 나의 기분 탓이겠지만, 그 말은 하지 않고 그림이 너무 멋지다고 액자로 만들어야겠다고 하니 그 정도는 아니라고 액자 아깝다고 하셨지만 본가에 갈 때 작은 액자로 넣어놔야지.
그렇게 엄마기 좋아하는 꽃으로 유혹하여 내가 보고 싶은 엄마의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올해도 엄마의 그림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드는 한편, 엄마가 어린 시절 그리고 싶었지만 포기했어야 했던 내면의 아이와 마주할 수 있게 다음에는 같은 풍경을 보고 함께 그려볼 계획을 세워야겠다. 이런저런 엄마와 수다 떨며 그리는 그림도 참 즐겁겠지.
아무튼, 엄마의 그림 그리기 대작전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