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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Jul 13. 2024

할머니를 그리게 한 그림

나에게도 할머니가 있었다. 엄마의 엄마, 아빠의 엄마 두 분이 계셨다. 외할머니는 노환으로 내가 대학생 때 돌아가셨고, 친할머니는 알츠하이머를 5년 넘게 앓다가 8년 전에 돌아가셨다. 외할머니의 죽음 보다 친할머니의 죽음이 슬펐던 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알츠하이머 병 때문이었다. 평생 고생하신 두 분의 파란만장 삶은 인간극장 100부짜리지만 친할머니가 말년에 겪은 병은 주변인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였다. 


병세가 심해 요양원에 맡기기 전 3년 정도를 부모님 댁에서 돌보셨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할머니의 모습에 가족들이 꽤 충격을 먹었다. 폭력성향이 나타나기도 했다가 한없이 떼를 쓰기도 했다가 과거의 기억이 갑자기 선명해져 할아버지께 울분을 토하시는 등 자신도 모르는 행동을 보일 때면 가족들은 패닉이 되기 일쑤였다. 엄마는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사진을 찍어 실시간으로 내게 알려주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도 휴일이 있는 주말을 포기하고 본가에 자주 갔었다. 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중에 그림 그리기가 있었다. 알츠하이머에 좋은 활동으로 그림 그리기를 추천하는 글을 보고 본가에 갈 때 종이랑 색연필 등 한가득 싸들고 가서 본가에 갈 때마다 할머니와 그림을 그렸다. 그림 그리기 외에 100피스 퍼즐 맞추기, 산책, 마주 보고 계속 대화하는 등 할머니와 예전에 없던 정다운 시간을 보냈었다. 물론, 그 시간에 충격적인 할머니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남아 알츠하이머가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상기하곤 한다. 


할머니와 그렸던 그림 중에 할머니를 스스로 그린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날 것 같아 한동안 보지 않았다가 오랜만에 꺼내보았다. 동작이 어눌해진 손가락으로 탁상 거울을 보며 자기 얼굴을 그리는 할머니는 나보고 계속 부끄럽다고 하며 연신 웃으며 그림을 그렸었다. 할머니가 그 스스로를 보는 모습은 나도 본 적이 없었는데... 그림이 있어 다행이다는 생각을 그때도 한 것 같다. 이 그림을 그린 순간만큼은 알츠하이머를 앓는 할머니가 아닌, 그냥 박종순 본인이었다. 


박종순 할머니, 그곳에서도 할아버지 구박하며 그림을 그리고 계시기를... 

가끔 꿈에서 만나 함께 그림 그려요. 


할머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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