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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Sep 02. 2023

팔도강산 돌아다닌 한 달

2023년 7월 일하고 공부하고 활동한 일기

#엄마의 무릎 수술

몇 해 전부터 엄마가 다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어쩌다 함께 걸을 때면 엄마는 오래 걷지를 못하고 자주 쉬어야 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필히 손으로 잡을 막대바가 필요하고 저상 버스가 아닌 일반 버스를 타고 내릴 때는 한발자국씩 계단을 디뎌야 했다. 엄마의 다리에는 살도, 근육도 상체에 비해 많이 없어서 더 걷기 어려워지는 듯 했다. 종종 한쪽 무릎에 물이 차서 병원에 가서 물을 빼는 임시방편의 치료를 받으셨다가 올봄에 큰 마음을 먹고 중등 병원에 염증 제거 수술을 받기로 했다고 연락을 받았다. 100세 아니 120세 시대라 불리는 지금 나의 엄마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엄마의 무릎 수술은 내게 조금 충격이었다. 이모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받는 수술이라 더 그렇게 느끼는 거겠지만, 엄마와 함께 걷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는 것을 지각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7월 초 수술이라 하여 입원수속이라도 도울 겸 본가로 내려갔다. 입원 전 필요한 것을 챙기고 코로나 검사도 해야 한다 하여 전날 병원 옆에서 검사도 맡았다. 작년에 코로나를 걸린 적이 있는 엄마였기에 설마 싶었는데 다음날 아침 엄마가 코로나 확진이 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_-;) 코로나를 몇 번 걸릴 수 있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엄마가 또 걸릴 줄이야... 입원은 즉각 취소되고 엄마는 격리 생활을 해야 했다. 엄마에게는 걱정 말고 몸조리를 잘하라고 하고 아빠에게 엄마를 잘 부탁한다고 거듭 당부하였다. 예매해둔 열차 시간에 맞춰 집을 나왔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 역시 서울에 오자마자 자가진단을 했지만 두 개의 선은 나타나지 않았다. 엄마의 입원은 7월 말로 미뤄졌고 무사히 수술을 받으셨다. 남이 해주는 병원밥을 먹으며 아주 편하게 지내고 있다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도 긴장이 풀렸다. 엄마는 이어 병실 생활을 자세히 종종 전화로 알려주었다. 같은 병실에 있는 언니들은 인공관절 수술을 하신 분도 있다고 하며 자신은 그 중에서도 막내라며 언니들에게 웃음을 주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며 즐거운 목소리로 나에게 사소한 것까지 얘기해주었다. 나의 엄마가 다시 돌아와 기뻤다. 전화 건너 엄마의 목소리를 종종 들으며 더 늦기 전에 엄마가 가고 싶어하던 크로아티아를 빚을 내서라도 보내드려야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본가에 머물동안 울산 구석구석 걸어다니다 청춘의 한 장면을 마주하기도 했다


#출장스토리

6월 말부터 계획된 출장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7월이었다. 전라남도 나주, 영광, 무안과 제주도를 가열차게 다녔다. 여성농민 공동체별 특성과 지역성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본인이 농부라는 소명감과 그 농부로써 공동체와 사회에 갖고 있는 사명감으로 이야기하는 그들을 보니 내가 사회를 살아가는 절실함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잠정적으로 나에게 크디큰 절실함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도시에서 프로다움, 일잘러와 분명 다른 결로 자신들의 일의 호흡과 정의를 만들어가는 시골의 농사와 공동체들이 기술의 시대, 기후위기 시대에 분명 더 큰 가치를 가지게 될 것 같다. 물론 더 농사짓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과정이 어려울수록 가치는 올라가니까, 부디 출장길에 만났던 여성 농민들이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사계절을 담은, 땅과 하늘의 힘을 담은 농사의 기술 보유자를 대우하는 문화가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내가 맡은 일을 잘해보아야지. 


#도공디공_멋진 구옥을 만나다

모임 멤버가 아주 관심있는 건물을 탐방하기로 했다. 작년 모임 멤버가 남원에 이주한지 얼마 안되어 여기 앞을 지나갔을 때 이 주택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이후 기회를 보다가 집주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안면도 트고, 남원의 구도심 프로젝트에 기록자로 이 집주인과 인터뷰도 하면서 이 집의 건축 역사를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고 한다. 올해 도공디공 주제가 건물을 알아가는 방법이라 마침 주제에 맞춰 이 집을 구석구석 보게 될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70년대 이 집을 지으신 분은 이 일대 땅을 가지신 사업가 분이셨는데 지금은 그의 막내 아들 내외가 살고 계셨다. 2층으로 지었다가 80년대 1층 더 올려 3층이 된 빨간벽돌 건물인데 건축을 잘 모르는 나도 종종 지나가면서 궁금하긴 했었다. 특이한 구조가 있을 것 같은 인상과 아주 튼튼한 건물일 것 같은 인상을 동시에 받았다. 획기적인 기술로 냉난방시스템을 만들었는데 연못의 시원한 공기를 끌어와 집안의 냉기를 보급하는 파이프관도 있고, 당시에 고가인 골드스타 에어컨이 지금도 달려있다. 단열을 위해 4중창으로 창문들을 마감할 저도 벽이 아주 두터웠다. 창틀의 목재하며, 내부 벽면의 나무가 여전히 건강한 상태다. 그리고 내부에 옛 물건들도 3층에 가득 쌓아두셨는데 내 눈에는 보물로 보이는 것들이 천지였다. 이태원 엔틱가구점에서 아주 비싸게 팔 것 같은 물건들 말이다. '제발 버리지 말아주세요'라고 집주인 분에게 말씀드리긴 했지만 왜 이런 걸 좋아하는 거야 하는 눈빛으로 답변을 받았다 ^^; 이런 집이 서울의 연남동에 있었다면 바로 힙스터들의 성지가 될 카페가 되었을 테지만 남원 구도심이라 사람 사는 집으로 남아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집의 건물주는 비싸게 살 사람만 있다면 팔고 싶어하셨지만.. -_-;; 

대대손손 튼튼하고 안전하게 살 공간을 직접 지으며 수리하며 사는 건 돈이 많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좋은 건축을 향한 가치, 세계관이 없으면 집안 곳곳을 돌보는 것은 귀찮고 성가신 일이 된다. 그렇기에 이런 건물이 시민 생활 역사적 가치로 남아있기를, 부디 허물어지고 주차장이 되지 않기를... 

이 집의 굴뚝 시스템도 대단했다


아직도 작동이 되는 에어컨

#새로운 작당모의

참여하고 있는 월독서모임에서 맛있는 양식을 나눠 먹고 그림책을 서로 읽어주다가 콘텐츠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어째 대화가 계속 기승전'영상', 기승전'유튜버'로 귀결되었다. 별것 없는 일상 이야기를 영상으로 표현하며 볼 것 넘쳐나는 세상 계속 보게 하는 인플루언서들이 늘어나는 시대, 명예는 모르겠지만 아는 사람은 아는 유명세와 뜻하는 바 이룰 수 있는 부를 갖는 현상을 보고 우리도 각자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라고 못할쏘냐, 한번 시도라도 해볼 수 있는 거 아니냐, ㅇㅇ님의 이야기는 정말 재밌을 것 같아요, 사실 몇 번 영상을 만들어서 해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러나.. 그렇지만 그만 편집의 벽을 넘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끝나고 말았어요, 그 편집의 벽을 한번 넘어서 볼까요, 자주 해보면 되지 않을까요, 데드라인은 하기 싫은 일도 하게 해주잖아요, 한번 해볼까요? 좋아요, 해봐요! 


그렇게 새로운 모임이 된다 :) 



7월도 아침독서를 부진런히 하며,  한달에 두 번 가는 텃밭학교를 하루만 가서 아쉽지만, 못 간 죄책감은 평일 퇴근 길 짬을 내서 가는 것으로 상쇄하기도 하고, 조간 신문과 책을 읽으며 '찬탄하다'라는 칭찬하며 감탄하다라는 말도 배우고,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 중계를 보며 여자 축구를 보는 눈도 키웠다. 새로운 것도 시도하고, 새로운 곳도 갔지만 이제는 나의 오래된 루틴이 되어 여름이면 보는 일드 '수박'을 빠뜨리지 않고 보며 어느새 드라마 속 주인공 보다 나이가 많아진 나를 발견했다. 막연히 불안했던 시기를 이 드라마가 주는 건강한 메시지 덕에 무사히 지나온 것 같다. 다짐을 잊지 않으려 보는 드라마가 있어 삶의 활력소가 재생되는 것 같다. 콘텐츠의 힘. 그러니 유튜브를 어서(기승전-유튜븥- 또 돌아왔네).. ^^;;


여름의 또다른 이름, 복숭아와 옥수수도 챙겨 먹고 무엇보다 여름 구름을 놓치지 않고 매일 하늘을 바라보는 나를 다행히 여겼다. 7월, 구름이 하늘 위를 돌아다니듯, 나 역시 땅 위를 열심히 다니며 보냈네. 


(8월에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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