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일하고 공부하고 활동한 일기
#추수와 텃밭학교 졸업
올 4월부터 한 달에 두 번 토요일마다 갔던 텃밭학교를 졸업했다. 지구샵에서 커뮤니티 활동으로 진행했던 프로그램이 일정이 종료되었는데 졸업식까지 준비해 주셨고, 자랑스럽게도 '자유로워 난 항상'이라는 상도 받았다. 종종 나를 자유로운 영혼으로 생각해 주는 타인의 시선을 느낄 때마다 신기하다. 나는 나를 자유롭게 두지 않는 것 같은데 말이지.(ㅎㅎ;) 아무튼, 매번 다정한 톤으로 똑부러지게 알려주시는 도시 농부 선생님 덕분에 인류의 역사 중 농사가 얼마나 유서깊은 혁명이었는지 텃밭 활동을 통해서 깨닫는 듬직한 시간이었다. 프로그램 진행 매니저 두 분이 수업 준비나 진행에도 정성을 다해주셨다. 나도 커뮤니티 매니저 일을 해봤기에, 사람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에 강사와 참여자 일일이 환대하고 신경써주는 것도 일의 능력이라 생각한다. 그 일을 잘하는 분들을 만나서 참여자 입장에서 참 행운이었다. 매번 수업 후 내용을 알맞게 요약하여 공유해주어 나의 텃밭일지 노트를 채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여기에도 공유해야지! ^^
졸업 전에 농부 선생님이 빌린 논에 추수를 도우러 가기도 했는데 토종 벼가 이리도 다양하게 있는지 허리 아픈 배움의 시간도 보냈다. 낫으로 익은 벼를 베고, 타작을 하면서 땅과 하늘과, 공기에 저절로 허리가 숙여졌다. 음식물쓰레기를 정말 최소화하리라 다짐 또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사무실 이사
10월 중순, 직장 사무실을 이전이 급하게 결정되었다. 사회적경제지원센터로부터 받는 임대료 지원의 마감 일정이 얼마 안 남은 덕분에 결정이 난 것 같다. 이따금씩 회의 때 모법인과 합치니 마니, 이사를 가니 마니 어쩌니 저쩌니 논의만 하다가 이번에 후다닥 결정이 되고 이사 갈 곳도 빨리 정해졌다. 이삿날이 정해지니 이사 준비는 업무 틈틈이 진행되었는데, 사무국 직원들 기질에 따라 이삿날을 맞이하는 행태가 다른 게 볼거리라면 볼거리였다. ^^; 버릴 짐이 엄청나게 나온 걸 보니 역시 이사를 가야 물건이 정리된다는 진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사 가기로 결정이 된 한 달 뒤, 11월 중순 송파구에서 종로구로 사무실을 옮겼다. 나에겐 출퇴근 거리가 30분은 앞당겨진 기쁨도 기쁨이지만 서울 중심의 역사가 오래된 사대문 안에 있다는 게 평안하다랄까.. 전생에 나는 군자였을 수도.. ㅎㅎ
점심 먹고 산책을 하면 그 자체로 종로 역사를 탐방하는 시간이 된다. 오래된 골목에 많은 사람이 체험 삶의 현장을 찍는 모습을 보노라면 (나도 그중 한 명이지만) 살아낸다는, 삶의 기운을 받는다. 그리고 사무실이 있는 도로명 주소에, '김상옥로'라는 길 이름이 궁금해서 찾아보았는데 김상옥이라는 독립운동가가 일제 순사들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장소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길이었다. 당시 한옥 지붕 위를 달리며 총을 쏘고 맞으며 도주를 했다는데 사망 후 그의 몸에서 발견한 총상 자국은 무려 11개. 어떻게 그렇게 총을 맞아가며 필사적으로 도망갈 수 있는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김상옥로는 기다란 원단 더미를 싣고 다니는 오토바이들의 직장으로 쓰이고 있다.
#오타니 다큐
그러니까, 내가 디즈니플러스(이하: 디플)를 구독한 이유는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 다큐를 보기 위해서였다. 11월 17일 오타니 쇼헤이의 인터뷰가 많이 나올 것으로 보이는 다큐가 디플에서만 나온다고 하니, 내가 받고(?) 있는 구독 서비스, 유튜브 프리미엄, 넷플릭스 외 더 늘리고 싶지 않았지만, 덕심으로 싫음을 극복하였다. 그러나, 기대하고 본 다큐는 헛헛했다. 오타니의 말은 많았지만 메시지는 희미했고 다큐 감독인 일본인이 일본인의 국뽕을 끌어올리기 위해 만든 콘텐츠로 보였다. 뜬금없는 서예 장면은 오타니한테 가혹한 연출 아니었을까... 그래도 오타니 때문에 한 달 동안 디즈니 만화와 코스모스 다큐를 재밌게 보았네.. (-_-;)
#아침달리기 시작!
근원적인 치료를 해준 한의사 덕분인지 왼쪽 무릎이 좋아졌다. 양반다리를 하면 조금 불편감이 있긴 하지만 운동을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래도 풋살이나 격한 움직임이 들어가는 구기 종목은 아직은 아닌 것 같아 달리기를 하기로 했다. 그것도 아침 일찍 달려보고 싶었다. 출근 시간이 준다는 것은 이런 것이지. 아침 활동을 추가할 수 있다는 것이지. 호호호
혼자 뛰어도 되지만 같이 뛰면 어떨까 싶어 책가게 인스타로 아침 달리기 멤버를 구했다. 2명이 선뜻 참여를 해주었지만 단톡방에서 자주 만날 뿐, 왜 함께 달리지 못하는 것인가... ^^;
아무튼, 아침 책방을 1년 운영한 게 헛되지 않을 정도로 아침 일찍 일어나기는 어느 정도 나의 루틴이 되었으니 달리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홍제천을 따라 뛰다가 (걷다가) 안산 동산을 올라 서대문구를 잠시 조망하고 돌아오는 코스로 3킬로 정도 길이도 적당했다. 그렇게 뛰고 오면 아침밥이 너무 맛있다. 이것은 예상 밖의 성과(!)다. 아침 공복에 뛰면 기초대사량이 높아진다는 의사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삼시 세끼를 맛있게 먹으면 높아진 기초대사량 보다 칼로리 섭취를 더 많이 하게 되는 건 아닌지... 하하하핫
#영덕 도서관에서 도공디공 이야기하기
10월 엄마와 크로아티아 여행 중 숙소 침대 위에서 스마트폰을 보면서 허니 타임을 갖고 있었다. 책가게 메일로 강사 섭외 메일이 와있어서 엇, 자세를 고쳐 잡고 메일을 꼼꼼히 읽었다. 작년에 도공디공에서 도서관 탐방을 다녀온 기록을 보고 영덕도서관에서 강의를 해줄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전화로 알려주고 싶다며 연락처를 물어보길래 나는 해외에 있어서 다른 멤버 연락처를 알려드렸다. 영덕도서관을 검색해보니 당연하겠지만, 경북 영덕 공립 도서관이었고, 시민들을 위한 강의가 매달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메일을 주신 분은 도서관 관장님이었다. 하지만 알려준 전화번호로 연락이 한동안 안 오길래 다른 강의로 대체되었나 하던 찰나 11월 초 연락이 와서 시민들에게 도공디공과 도서관 탐방 이야기 2회차로 나눠서 얘기해 줄 수 있겠냐 하여 흔쾌히 하겠다고 하고, 멤버들끼리 없는 시간을 만들어내었다. 외부로부터 초대를 받아 모임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 설레기도 하고, 새로운 곳을 가는 즐거움을 놓칠 수 없었다. 발표자료, 강의 등 역할을 정해서 할 일을 노나 가졌다. 그리고 영덕에 가기 직전 주에, 전주의 저수지 위 도서관이 생겼다고 하여 연화정 도서관에 모여 영덕 도서관에서 나눌 이야기를 짜보았다. 작년 도서관 이야기를 도서관에서 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모이는 상황이 마냥 재밌었더랬다. 이야깃거리를 만들면서 모임의 역사도 정리할 수 있었다. 느슨하게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생각을 나누는 활동, 멈추지 말고 지속해야겠다. 비록 내가 영덕 시민들 앞에서 장황하게 말을 했을지라도, 찰떡같이 알아들으셨으리라.
무엇을 하고 싶다면, 모임을 활용하시길. 적극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이번달 배움이 필요할 때 생각나 책 <배우는 법을 배우기>를 읽으며, 아래 문단을 계속 읽었다.
과제를 부담 없이 다룰 수 있게 만드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배우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자신과 대화하고,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며, 자신의 부정적인 태도와 부적절한 노력에 건설적인 방식으로 대응하는 법을 알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의 교사가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학습에 긍정적인 환경을 다시 만들어갈 수 있다.
- 배우는 법을 배우기 33-34쪽
내가 나를 보는 법을 나는 알고 있는지, 그것을 배워가는 게 삶일 테다.
지인으로부터 같이 알고 있는 지인이 위독하다는 메시지를 받고, 먹먹한 마음에 보지 못할 수도 있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전주에서 도공디공 모임이 끝나고 부모님을 만나 이모가 있는 납골당에 가서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 이모의 죽음을 마주하고, 저녁엔 엄마의 음력 생일을 축하하며 오랜만에 뵌 외삼촌의 남존여비 사상 술주정에 '그런 나쁜 말 하지 마세요'라고 대꾸했지만 분이 풀리지 않기도 했다.
애정하는 보틀팩토리의 다섯 번째 유어보틀위크 오프닝 토크에 사회를 봐달라는 요청을 거침없이 수락하고는 장황하게 사회를 보았지만, 이 부끄러움을 기억하고 당황하진 않으리라.
이렇게 몸과, 머리, 마음을 온전히 다 쓴 것 같은 한 달이 갔다.
(12월에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