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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연맨 Mar 25. 2024

불안형 애착-1. 내면아이

제시카 바움의 <나는 왜 사랑할수록 불안해질까>를 읽고

“환자분,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환자분 뇌 속에 꽤나 큰 ‘불안’이라는 게 발견되었어요. 이건 아주 오래전부터 생긴 것이어서 이미 단단히 자리를 잡은 상태이지만, 그래도 나아질 수 있어요. 제가 환자분의 치료 과정에서 늘 곁에 있을 겁니다.”


제시카 바움의 <나는 왜 사랑할수록 불안해질까>를 읽으며 나는  마치 의사에게 이러한 선고를 받은 기분이었다. 초반부 불안형에 대한 몇몇 묘사에서는 입을 틀어막을 정도였다.


유기 공포, 자기희생, 떼쓰는 어린애와 같은 책 속 표현 들은 마치 내 뇌 속 불안을 조직검사 당하는 것처럼 아팠다.


“그렇군요. 정말 충격이네요. 사실 어렴풋이 불편감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해요. 가끔 숨이 안 쉬어진다거나, 심장이 미친 듯이 빨리 뛴다거나, 속이 울렁거려 헛구역질이 나는 그런 거? 그럴 때마다 손발이 땀으로 축축 해지는 건 당연했고요. 이 모든 것들의 원인이 불안이라니.“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이 알 수 없는 불편감들이 왜 일어나는지 근본적인 원인이 궁금해서였다. 어떻게 보면 억울했던 것 같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든 것인가. 이렇게까지 힘든 게 괜찮은 건가.


책의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고 한다면 ‘내면아이’, ‘내면양육자’, ‘내면파수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셋의 관계성을 이해하는 게 중요한데, 이에 대한 책 속 표현을 빌리자면

내면아이: 치유가 필요한 고통과 두려움을 짊어진 부분

내면양육자(Inner Nurturer): 몸에서 따스함과 다정함을 경험하는 부분

내면파수꾼(Inner Protector): 매일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려고 애쓰는 부분

이다.


즉, 자기 채움(self-full)의 과정이란

‘내면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자주 들여다보고

‘내면양육자’의 내면화를 통해 끊임없이 아이를 달래는 과정을 거쳐

‘내면파수꾼’의 방어기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가 할 일은 스스로 자기 상처를 찾아내고, 그게 어디서 왔는지 알아보고, 상처를 이해하고 치유함으로써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죠.
제시카 바움, <나는 왜 사랑할수록 불안해질까>


이 중 ‘내면아이’는 어린 아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부터 가족이 아닌 타인과 상호작용을 하게 되는 어느 시점까지 느껴온 여러 결핍된 욕구와 상처들이 잠재의식 속에 똬리를 튼 모습으로 존재한다. 이 ‘내면아이’는 곧 불안의 핵심 원인이 되기에 꾸준히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기 채움 과정의 첫 단계로, 나의 ’내면아이‘를 들여다봐주기 위해 아주 오랜만에 부스스한 반곱슬머리 어린이를 떠올렸다. 그러고 나선 ’불안‘에 대한 내가 인지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네다섯 살 정도 되었을 때였을까. 흔한 맞벌이 부모님의 자녀로서 한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었다. 내가 다닌 어린이집은 같은 달 생일을 맞은 어린이들의 공동 생일파티를 해주었는데, 그 달에 태어난 어린이들을 테이블에 나란히 앉혀 귀여운 머리띠를 씌워주고, 부모님으로부터 미리 공수한 케이크를 앞에 둔 뒤 모두에게 생일 축하를 받게 하는 행사였다.


문제는 태양력 시스템에서 시작했다. 나의 양력 생일은 10월인데, 아마도 부모님이 어린이집에 제출하는 자녀 정보에는 음력 생일로 기재했던 것 같다. 생일파티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했던, 알았다 했더라도 당연히 딸의 생일을 9월이 아닌 10월로 생각한 우리 부모님은 생일케이크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고, 자기들의 몸집만 한 1인 1 홀케이크를 앞에 둔 9월 생일 어린이들 사이에서 반곱슬머리 어린이는 자신의 앞에만 케이크가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모두의 시선 집중을 받으며,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한 어린 나는 패닉에 빠졌다. 이내 곧 엄청난 불안과 함께 수치심이 밀려왔고, 나만 버려진 듯한 슬픔과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는 폭풍 오열을 했다. 늦게나마 상황을 눈치챈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우는 나를 달래기 위해 옆의 친구 케이크를 내쪽으로 밀어주었다.



이 날의 기억이 비교적 생생히 남아있는 것은 아마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찍힌 그날의 사진이 있기 때문일 테지만, 다른 사진을 봐도 불안과 관련된 그보다 더 오래된 기억은 없는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 모습을 생각하면 하염없이 귀엽고 짠한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그 당시의 어린 나에겐 과연 그날의 기억이 얼마나 크게 작용했던 것일까. 내 뇌 속 불안이 발견된 지금, 그 씨앗은 그때 즈음부터 뿌리내린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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