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에서 맞이하는 새벽이 나는 좋다. 평상시라면 반복되는 삶의 시작 시간이다. 길게 늘어져 있긴 불가능에 가까우며, 게으른 나에게 아침에 산책은 꿈속의 일이다. 하지만 여행지에선 그 꿈속의 일이 현실이 된다. 난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면 새벽에 일어나 머리를 질끈 묶고 카메라만 들고 집을 나선다.
새벽부터 하루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조용하지만 분주한 움직임, 그 속에 있으면 늘 시끄럽기만 한 관광지가 일순간 내가 한동안 살았을 것 같은 조용한 동네로 변화한다. 그 순간만큼은 여행자가 아닌 그들과 일상을 공유하는 생활인이 된다. 나의 일상을 벗어나고자 여행을 와서, 타인의 일상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의 마음이 참 이상하다. 하지만 나의 일상과 타인의 일상은 다르다. 타인의 일상은 언제나 재미있어 보인다. 나의 일상이 언제나 제일 지루한 것처럼.
여행을 하면서 아침에 산책을 하는 덕분에 소중한 경험들을 많이 했다. 늘 사람으로 분비는 프라하의 카렐교와 마드리드의 솔광장을 혼자 여유 있게 걸어 보았고, 리스본의 28번 전차를 고요함속에서 아무런 눈치(낮에는 사람이 많아서 오래타면 혼자 엄청 눈치가 보이며, 끊임없이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없이 종점에서 종점까지 왔다갔다 해보기도 했다.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키갈리는 어떤 새로운 일을 나에게 보여줄지 기대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새벽 6시. 알람소리에 눈을 떠 커튼을 열고 밖을 봤다. 이게 웬일..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헉... 내가 기대했던 차가운 푸른빛은 품은 하늘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 날씨는 참 좋다.. 혹시 시간을 잘못 본 것 일수도 있으니 다시 시계를 봤다. 오전 11시 정도라고 해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밖은 환한데, 시간은 여전히 오전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뭔가 억울한 느낌은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음 날은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또 이게 웬걸... 너무 어두워서 밖이 안 보인다. 한 밤중에서 한낮이 되는 게 1시간 안에 가능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 모르겠다.. 아침부터 무슨 산책을 한다고.. 됐다, 하면서 그냥 잤다.
하지만 도저히 그냥 가기엔 너무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 키갈리를 떠나기 전날 아침 6시 30분쯤 일어나 머리를 질끈 묶고 카메라를 들고 난 길을 나섰다.
2주간을 열심히 돌아다닌 길이었다. 더 이상 지도는 필요하지 않았다. 천천히, 최대한 천천히 걸으면서 아침의 키갈리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보지 못할 수 도 있는 장면들이기에 더 마음에, 더 카메라에 담았다. 그 날의 바람도 햇살도 담고 싶었을 정도로 다 좋았다. 좋은 날씨 때문인지 일요일에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가게들은 거의 다 열려 있었고, 거리에 사람들도 참 많았다. 아니 평상시보다 훨씬 많았다.
사람들 구경을 하면서 길모퉁이를 지나 걸고 있는데, 앞 골목에서 흰색드레스를 입은 숙녀한분과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은 신사 두 분이 내 앞에 등장하였다. 나이차이가 별로 나지 않을 것 같은 삼남매였다. 많아야 8~9살 정도가 되었을 것 같은 큰누나는 뒤에서 두 동생을 살폈고, 한 살 정도 더 많아 보이는 둘째는 막내 동생의 보호하기 위해 도로 안쪽으로 동생을 계속 밀면서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이 예뻐서 나도 느리게 그들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난 나의 길을 간 것인데... 이상한 동양애가 쫓아온다고 생각했는지 누나가 뒤를 살짝살짝 돌아보기 시작했다. 난 앞으로 가서 누나에게 ‘안녕, 어디가?’ 물었더니 교회를 간다고 했다. 만나서 반갑다고 하니, 알았다고 하면서 쑥 앞으로 갔다. 귀찮아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낯선이의 질문에 대답해준 누나가 참 고마웠다. 더 이상 따라가는 건 실례가 되는 것 같아, 발걸음을 멈추고 삼남매가 걸어가는 교회로 들어가는 모습만 더 지켜보았다.
지나가면서 삼남매가 들어간 교회를 보니, 사람들이 다들 멋지게 차려입고 있었다. 그제야 거리에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삼남매가 멋지게 차려입은 이유도 알게 되었다.
소중한 곳에 가는 그 마음이, 그 곳을 향하는 그 발걸음들이 그날의 분위기를 좋게 만들었는지 일요일 아침의 분위기는 평소와 다르게 활기찼다. 일요일의 나른함은 없었다. 거리 곳곳이 활기차고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르완다 사람들은 참 부지런하지만 평일의 아침은 좀 나른함이 있는데, 일요일의 아침은 분주하다고 해야 할까, 그동안 내가 경험한 아침과는 사뭇 달라 신선했다.
르완다의 아침에는 새벽녘의 파란빛을 가득품은 하늘이나 기분 좋게 피부를 스치는 상쾌한 기운이 가득한 차가운 바람은 없었다. 하지만 강렬한 태양이 있었고, 사람들의 열정이 있었다.
새벽에서 아침을 넘어가는 그 시간, 여행을 하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을 르완다에서도 보낼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