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하얀색과 검은색을 좋아하고 모던한 디자인을 사랑한다. 가끔 화려한 프린트 원단으로 만든 옷을 사긴 하지만 디자인의 심플함을 놓치지 않는다. 깔끔한 스타일을 사랑하는 나는 많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해진 틀을 벗어나는 것도 즐기는 편도 아니다. 변화는 늘 나에게 낯선 것이다.
그런데 여행은 참 묘하다. 여행지에선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많을 일들을 굳이 찾아서 한다. 여행을 떠나는 순간부터 변할 준비가 되어 있는 걸 보면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닌 것 같다.
무계획이 계획인 나에게 친구가 지나가는 말로 “시간도 많은데 머리나 할래?”라고 했다. 친구는 지난 여행에서 분홍색, 보라색을 섞어서 땋은 머리를 했는데 여행이 훨씬 즐거웠다며 사진을 보여주는데 평소에도 웃음이 참 환한 친구임에도 사진 속의 친구의 웃음은 한층 밝아 보였다.
땋은 머리, 일명 레게머리는 티비에서나 볼 수 있는 머리였다. 땋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시간이 엄청 필요하다. 그리고 머리 감기가 엄청 어렵다. 미용실에 가서 감아야 한다고 했다. 다행인 것은 요즘은 스프레이형 드라이샴푸가 있어 머리 감는 게 간단하다고 했다. 하지만 비싼 가격으로 르완다에서 구하기는 어렵다는 큰 단점도 있었다. 또한 땋는 시간만큼 푸는 시간도 엄청나다. 친구는 남자 친구가 정성껏 한 올 한 올 풀어주었다고 하는데.. 난 내가 다 해야 했다. 그 순간은 서럽기도 했다. 장점보다는 단점이 너무 많았다. 많은 단점에 평소라면 단칼에 거절했을 제안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제안에 귀가 솔깃했다.
고민을 눈치챈 친구가 또 툭하니 말을 던졌다. “한국의 1/10도 안 되는 가격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더 이상의 고민은 사치였다. 여기서가 아니라면 또 언제 해보겠는가. 안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는 신념대로 행동을 개시했다. 머리 못 감아서 힘들다면 풀면 된다. 머리 푸는 게 힘들다면 돈 주고 하면 된다. 머리하나로 여행이 몇 배 더 즐거워진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선택이었다.
결심한 순간 진행은 빨랐다. 다음날 바로 예약이 되었고, 머리를 잘 땋기로 소문이 난 미용사가 집으로 오기로 했다. 아침 10시에 미용사가 집으로 왔다. 아침에 시작한 머리는 저녁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장장 6시간에 동안 머리를 땋았다. 머리카락을 계속 당겨서 머리도 아프고 목도 아팠다. 정말 ‘더 이상은 못해’라고 포기할 때 쯤 머리가 끝이 났다.
땋는 머리에도 여러 방식이 있는데, 일반적으론 나의 머리카락 조금에 인조머리를 묶어서 땋는 방식을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 길이나 두께 조절도 마음대로 가능하다.
평상시에 미용실에 가면 엄청난 머리숱에 미용사들은 돈을 더 받아야 한다는 등의 말을 한 마디씩 하곤 했다. 하여 어느정도 인조머리를 사용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3봉지 째부터는 한 봉지씩 열릴 때마다 ‘이게 마지막이겠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났다. 결국 5봉지에서 마무리가 되었는데.. 그 무게가 엄청 났다. 밑에서 누군가 나의 머리를 계속 잡아당기는 기분이었다.
나의 기대와는 달리 머리를 하고 나선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무게를 다 떠나서 완성된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고 싶은 스타일을 아프리카스타일로 찾은 게 실수였다. 흑인이나 백인들은 머리카락과 두피의 색이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난... 검은색머리카락과 너무 대조적인 두피 색을 가지고 있다. 머리를 끝내고 거울을 봤는데, 나의 두피가 너무 오픈이 되어 있었다. 나의 두피를 그날 처음으로 그리 많이 보았다. 가르마대로 나의 두피가 너무 잘 보였다. 친구는 예쁘다고, 잘 나왔다고, 어울린다고 했지만, 환한 두피에 솟아있는 머리카락은 마음에 들지 않았따. 옹졸한 난 속상한 마음에 6시간이나 고생한 미용사 언니에게 팁도 주지 않았다(언니가 알아서 더 달라고 한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 마음에 들지 않던 머리였는데, 그새 적응이 된 것인지 아니면 머리로 인한 즐거움이 많아서 인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머리카락도 조금 자라서 한층 자연스러워졌으며, 일단 머리카락으로 두피가 많이 가려졌다. 초콜릿색으로 염색한 나의 머리와 검은색 인조머리가 섞여 색도 예쁘게 나와서 더 마음에 들었다. 레게머리는 르완다 사람들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매력을 더하고 있었다.
선글라스라도 차고 있으면 진짜 한국사람 같지 않았다. 아무리 낯가림이 없는 아프리카 사람들이라고 해도, 수줍음이 많은 동양 사람한테 먼저 말을 걸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머리를 하고 나서는 르완다 사람들이 더 친근하게 느꼈는지 스스럼없이 인사를 건내고 말을 걸었다. 어디서 르완다 스타일의 머리를 했냐며, 한국 사람은 한국스타일이 더 예쁘다며 지금은 별로라며 진지한 얼굴로 장난을 치는 사람도 있었고. 호텔 계단에서 만난 머리가 정말 예뻤던 친구는 머리 감는 방법도 나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머리가 아니었다면 초면에, 지나가는 행인에게 머리감는 방법을 전수 받을 수 있었을까? 지나가는 동양인들의 저 친구 뭐지 하는 눈길은 좀 기분이 상했지만, 전반적으론 마음에 들었다. 머리스타일을 바뀐 작은 변화가 여행을 훨씬 다채롭게 즐겁가 만든다는 사실이 놀라운 따름이었다. 정말 회사 다니면서는 못할 머리이며, 머리숱이 걱정되는 시기에도 못할 머리이다(머리가 엄청 빠진다). 정말 그때, 그 순간, 그 자리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살면서 몇 번 못할 경험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