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
“아빠, 나랑 같이 놀자.”
첫째 아들이 나한테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주말엔 편히 쉬고 싶은데?
동생이랑 놀면 안 되나?
이기주 작가님의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다’를 읽고 나서 생각해 보니,
아들은 아빠와 함께하는 그 시간을 원했던 것 같다.
우리는 소중한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해 준,
이기주 작가님의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다’의 소중한 표현들을 적어본다.
우리는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특히 사랑은, 내 시간을 상대에게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면, 그 사람이 내 일상에 침입해 시간을 훔쳐 달아나는 것처럼 여겨진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거나, 사랑이라는 감정과 점점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창하게 ‘말을 잘하는 것’보다
할 말과 하지 않아야 하는 말을 가려가며
‘잘 말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고 싶은 말의 반절만 입 밖으로 내보내면,
해선 안 되는 말을 쏟아낼 확률이 그만큼 줄어든다.
이 확률이 줄어들어야 서로 주고받는 대화의 빈칸을
말이 아닌 진심으로 채우는 일도 가능하다.
스트레스라는 어두운 터널에 진입할 때마다
달달한 디저트에 손을 대는 이들이 많다.
단맛이 아는 음식으로 입안을 가득 채우면
뇌의 쾌감 중추가 한껏 자극되기 때문일까.
“이런저런 뇌과학적인 이유가 있을 텐지만
영어 단어 ‘stressed’를 거꾸로 읽으면 ‘desserts’가 되는 사실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어쨌거나 지금 이 순간에도 회사와 직장과 집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이들 중 상당수는
“손이 가요, 손이 가”라고 되뇌며
목구멍 속으로 디저트를 욱여넣고 있을 것이다.
극지에 사는 이누이트들은 분노를 현명하게 다스린다. 아니, 놓아준다. 그들은 화가 치밀어 오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언제까지? 분노의 감정이 스르륵 가라앉을 때까지. 그리고 충분히 멀리 왔다 싶으면 그 자리에 긴 막대기 하나를 꽂아두고 온다. 미움, 원망, 서러움으로 얽히고설킨, 누군가에게 화상을 입힐지도 모르는 지나치게 뜨거운 감정을 그곳에 남겨두고 돌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누이트처럼 화를 조용히 발산하거나 다스리지 못한 채 살아간다. 외부로 분출하지 못한 화를 안으로 차곡차곡 모으며 지내다가 자기보다 만만해 보이는 사람에게 한꺼번에 쏟아내곤 한다. 때로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의 마음을 향해 폐수를 방류하듯이 말이다. 애처로운 일이다.
무협 영화를 보면,
고수는 소리 없이 강하지만 하수는 소란스럽다.
하수는 적을 발견하는 순간 주저 없이 칼을 내두른다.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애매하게 진격한다.
그러면서 전력을 쉽게 노출하고 늘 싸움에서 패배한다.
무릇 칼은 칼집에 있을 때 위엄이 있다.
무작정 꺼내 들면 칼의 위력은 줄어든다.
칼의 크기와 날카로움이 뻔히 드러나는 탓이다.
뉴스를 보았다. 한 아파트 주민들이 자기네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 사이에 담을 설치했고, 결국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단지를 빙 돌아서 등교하고 있다고 했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렸다. 씁쓸한 생각이 밀려들었다. 왜 자꾸 나누고 구획하려는 걸까. 인류의 불행 중 상당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선을 긋는 행위에서 비롯되지 않던가.
중국 송나라 고서 <통감절요>에 “해납백천 유용내대’라는 글귀가 있다. 직역하면 “바다는 모든 강물을 받아들이고 이 때문에 바다는 더욱 커진다”는 뜻이다.
바다의 본질이 그러하다. 바다가 바다일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넓고 깊어서가 아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물을 끌어당겨 제 품속에 담기 때문이다.
작가는 대표적인 프리랜서 직업이다. 우리나라에선 프리랜서! 영미권에선 프리랜스! 이는 얼핏 세련된 단어 같지만 서늘한 단어이기도 하다. 중세 시대 유럽의 영주는 어떤 단체에도 소속되지 않은 자유로운(free) 용병과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았다. 전쟁이 나면 용병은 긴 창(lancer)을 들고 나타나 영주 대신 싸웠다. 지금은 프리랜서가 자유 계약직 종사자를 일컫는 말이지만, 과거엔 ‘대신 피를 흘리며 싸우는 용병’, ‘쓸 만한 창을 소유한 병사’ 정도의 뜻으로 사용됐다.
고어사전을 뒤적이다가 월급을 뜻하는 영어 단어 ‘salary’가 ‘salt’, 즉 소금에서 유래했다는 문장을 읽고 굵게 밑줄을 그었다. 로마 시대에는 군인들에게 소금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아, 월급이란 필연적으로 짤 수밖에 없는 것인가! 오래전 어느 월급날 소금을 지급받은 로마 병사들이 삼삼오오 광장에 모여 “이번 달도 짜네! 짜!”라고 불만을 터뜨렸을 모습을 상상하니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온다.
“기주야, 인생 말이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어찌 보면 간단해.
산타클로스를 믿다가, 믿지 않다가,
결국에는 본인이 산타 할아버지가 되는 거야.
그게 인생이야.”
요즘 많이 바빴다.
회사 일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책도 많이 못 읽었고,
글도 쓰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했다.
아이들은 내게 말한다.
“아빠, 오늘은 일찍 와?”
“아빠, 우리 같이 놀자.”
적어도 아직까지 아이들에게 나는 소중한 사람인가 보다. 나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시간을 얼마나 많이 건네주었던가?
단지 바쁘다는 핑계로.
빠지기 곤란한 자리라는 이유로.
소중한 사람들보다는
비즈니스적인 사람들에게만
나의 시간을 건네주지는 않았을까?
오늘은 나의 시간을,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하루를 보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