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투덜이, 멘토의 대화
첫 번째 직장에서 나는 인사 담당자였다.
인사 담당자는 폼났다.
회사에서는 내 앞가림도 못하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을 만났을 때는
“선배가 인사담당자로서 조언해 준다면~”
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게 했다.
회사에서는 승진자 명단, 연봉 인상률, 임원인사와 같이 모두가 궁금해하는 사항을 제일 먼저 알았다. 나는 그것이 무슨 벼슬이나 되는 것처럼,
목에 꽤나 힘을 주고 다녔다.
(훗날 퇴직 이후 동기들은 그런 내가 참 재수 없었다고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꼰대가 되어갔다.
주변에 취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는
“나 인사담당자야. 그러니깐 네가 취직이 안되지”
라는 말도 서슴지 않게 했다.
와이프와 결혼하기 직전,
와이프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와이프 친구 중 한 명이 취업준비생이었던 자신의 남자 친구(H)를 불렀다.
H는 인상이 참 좋았다.
취업을 준비하는데, 서류전형 통과가 잘 안된다고 했다.
나는 거만했다.
“자소서 줘봐~ 내가 봐줄게.
나 인사담당자잖아.”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뜨겁다.
나이도 동갑이었는데,
내가 자소서를 봐준다고 뭐가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었을 텐데.
나는 그냥 호기를 부리고 싶었던 것일까?
당시 꼰대였던 30대 초반의 나의 모습을
30대 후반의 나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지금 그 당시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절대 거들먹거리지 않았을 것 같다.
“H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으니, 그래도 취업이 잘 될 것 같아. 지금처럼 마음에 드는 회사를 지원하다 보면 어디선가 반드시 연락이 올 거야. 그러니깐 너무 걱정하지 말고. 혹시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생기면 이야기해 줘~^^”라고 말할 것 같다.
후회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간절했던 취업의 소중함을
나는 이미 취업했다며 가볍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지?
“공무원 시험 몇 번 떨어졌다고 인생이 비참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합격한 애들은 ‘땀은 배반하지 않는다’며, ‘떨어지는 애들은 이유가 있다’며 그들의 우월감을 한껏 과시하고, 시험에서 떨어진 친구들은 졸지에 능력도 없고, 노력도 안 하는 막장인생이 되어버렸다. 아직 20대인데,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은 이들에게 누가 손가락질하고 ‘패배자’로 규정하는가?
- 개천에서 용나면 안 된다. 강준만 저. 인물과 사상사 출판사-
취업에 대해 나의 3가지 자아는 이렇게 말했다.
꼰대. “나니깐 이런 말 해주는 거야!”
투덜이. “내가 더러워서 관두고 말지!”
멘토.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