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인사 Dec 21. 2019

서운함의 이중성

서운해하지 말고, 차라리 말을 해줘요

임원분께서 잠시 회의실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얼마 전까지 같은 A팀 동료였던 L직원과 함께.


‘뭐지?’란 생각을 하며,

회의실에 들어가 앉았다.


임원분께서 말을 꺼내셨다.

“저는 책인사님이 동료들과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응? 이건 무슨 소리?’

뭐가 뭔지 모르는 듯한 나에게

임원분께서 설명을 덧붙여 주셨다.


“이번에 책인사님이 결정한 사항.

A팀과 상의를 하지 않으셨나 보네요.

L님께서 이의를 제기하셨습니다.”


L직원은 바닥만 보고 있었다.


A팀은 내가 창립 멤버로 4년간 몸 담았던 팀이다.

L직원은 내가 올해 내 손으로 직접 뽑은 직원이었다.

그런데 내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팀을 옮기자마자

A팀에서 나를 음해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래. 너희들의 과오를 가리기 위해서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 삼았다. 이거지?

내가 말을 안 해줘서 문제라며,

너희는 이런 작은 문제를 가지고

임원분께 직접 말을 했다. 이거지?’


임원분께서 먼저 회의실을 나서며 말씀하셨다.

“저는 책인사님과 L님이 잘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임원분이 나서고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 이중적인 면상에 한바탕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내고 싶었지만,

임원분의 부탁도 있었기에 내가 먼저 물었다.


“그게 그렇게도 불편했나요?”

L이 답했다.

“네, 서운했습니다.

저에게 그리고 우리 A팀에게 먼저 상의하지 않으신 게 서운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4년간 나의 혼을 쏟아 넣은 A팀에서 우리 가족이 아닌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는 A팀과 관련한 사항이라면,

미리 그들에게 상의하고 알려줘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




회의 자리에서 누군가 “서운하다”라고 말했다.

통역을 하던 Interpreter 직원은, 잠시 생각하다

‘disappoint’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회의가 끝나고 Interpreter 직원분께 물어봤다.

‘서운하다’가 영어로 ‘disappoint’에요?


Interpreter 직원이 답했다.

외국 사람들에게는 ‘서운하다’는 개념이 없어요.

외국 사람들은 뭔가 생각의 차이가 있으면 바로 말해요.

그 일 때문에 화가 났어.

말해 주지 않아서 시행착오를 겪었어.

다음부터는 미리 알려줬으면 좋겠어.

이런 식으로요.”


왜 며칠 전까지는 한 팀이었던 그 동료는 나에게 서운했을까?

그 일 때문에 정작 마음앓이한 것은 나인 것 같은데?


서운하다는 말이

자신의 과오는 숨기고

그 책임은 타인에게 돌리는

무책임한 표현처럼 들렸다.


말을 하자.

자기 잘 못 덮으려고 혼자 끙끙 앓다가

괜한 사람 이상하게 만들지 말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