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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Apr 06. 2021

한강

한강의 기적은 부모님 세대의 땀과 눈물로 이뤄졌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조정래 장편소설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을 읽어야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조정래 장편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시대적 순서에 따라

일제시대의 한을 표현한 ‘아리랑’,

해방 후, 그리고 6.25 전쟁으로 인한 시대적 혼란을 알 수 있는 ‘태백산맥’,

마지막으로 1960~70년대 경제발전 시기의 아픔과 희생을 묘사한 ‘한강’을 읽었다.

[조정래 장편소설 _ 한강]


소설 ‘한강’을 통해,

대한민국 경제발전 이면의 명암을 적어본다.


[부끄러운 역사]

1) 교통순경들의 부정행위도 그 돈을 혼자서 착복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서의 운영비를 충당하려고 위에서 책임액을 할당하고, 그 액수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무능자로 몰려 한직으로 자리가 바뀐다는 사실이 신문에 공공연하게 보도되고 있는 형편이었다.

(제2권)


2) 사장이 그러니깐 주먹질 발길질은 밥그릇 수에 따라 아래로  아래로 내려왔다. 그러다 보니 가장 말석인 ‘시다’들은 이 사람한테 얻어맞고 저 사람한테 채이고, 동네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허진은 그 이유 없는 구타가 일이 힘드는 것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정식으로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었다.

(제2권)


3) 평생 논산을 향해서는 오줌도 안 누겠다는 말이 실감 나도록 훈련소 생활을 지긋지긋했었다. 훈련보다 더 견디기 어렵게 고통스러웠던 것은 이유 없는 기합과 구타였다. 하사 계급장을 단 스물한 살짜리 소대 선임하사의 횡포는 어느 순간 살의까지 품게 만들었다. 무조건 두들겨 패면 군기가 선다고 생각하는 한국 군대, 그 야만적 행위는 일제시대 일본군의 악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었다. 그때의 일들이 지금도 꿈에 나타나고 있었다.

(제4권)


4) “그게 벼락출세에 머리가 뺑그르 돌았는지 어쩐지 그 데모 진압하는 것 좀 봐. 아무리 맘이 변했다고 4.19에 나섰던 놈이 어찌 그럴 수가 있나. 우리 4.19 세대 중에서 그놈이 제일 더럽게 변한 놈이야.”

 “그래, 출세의 꿀맛이란 그런 거야. 그렇게 데모 진압 잘하면서 충성을 다 바치니까 승승장구 출세하게 되잖아. 인생의 스승님이니까 잘들 배우라구.”

(제6권)


5) 그런데 식사를 말없이 빨리 하는 것이 서양 사람들에게 흉거리가 되고 있었다. 그 내용인즉, 한국 사람들은 서로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두 시간쯤 즐길 줄 아는 문화 수준을 갖추지 못하고 서로 말 한마디 없이 그저 식사를 빨리 해치우기에 바쁜 야만적 생활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흉을 말로만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네 신문이나 잡지에 그런 글까지 거침없이 써대고 있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자기네 입장과 기준으로 평가하고 비판하는 백인들의 전형적인 형태였다.

 그 독선에 찬 자만과 우월감도 문제였지만, 더 문제는 그런 일방적인 언행에 대해 무슨 큰 치부라도 내보인 것처럼 창피스러워하고 자기 비하를 서슴지 않는 이쪽 사람들의 열등감이었다. 배운 사람들일수록, 서양 물을 먹은 사람들일수록 그런 증세가 심한 것은 묘한 일이었다.

(제7권)


6) 정치하는 놈들은 권력이 있어서 해 먹고, 돈 많은 놈들은 돈 힘으로 더 큰돈을 해 먹고, 말단 경찰들은 행상들의 등까지 처먹고, 크고 작은 장사들은 세무공무원들과 짜고 해 먹고, 해 먹지 않는 놈이 없는 세상에서 못해먹는 놈만 병신이었고, 병신만 못해먹었다. 죄를 짓고도 돈만 있으면 풀려나는 세상이니 판검사, 변호사 다 면허증 딴 도둑놈들이라는 말이 괜히 퍼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무식한 자신이 유전무죄요 무전유죄라는 유식한 무자까지 알게 되었을 것인가.

(제8권)


7) 여 직원은 왜 말이 많으냐는 느낌으로 눈을 치뜨며 톡 쏘는 어투로 말했다. 그 태도는 거만하고 도도하고 불친절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공무원의 전형이었다.

 이상재는 기분이 휙 상하고 말았다. 더러 공무원들을 대할 때마다 기분이 언짢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왜 그리 불친절하냐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그냥 참고 돌아섰다. 그런 말을 한다고 고쳐질 그들이 아니었다. 자기들이 대단히 높은 자리에나 군림하고 있는 것처럼 길들여진 그 못된 버릇은 달리 고칠 도리가 없는 그들의 고질병이었다. 공무원들이란 국민의 세금으로 먹여 살리는 무리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국민에 대한 봉사의 의무가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국민 위에 군림하여 제 나름의 횡포를 자행하는 존재들로 둔갑해 있었다. 그것은 군대에서 폭력 행사를 당연시하는 것과 함께 일제 식민지 시대의 악습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못된 행태였다. 총독부 시절에 일본인 공무원들이 조선 식민지 백성들 위에 얼마나 무도하게 군림했던가. 그 못된 버릇이 세월 따라 고쳐지기는커녕 독재권력이 길어지면서 더 심해져가고 있는 양상이었다. 독재권력은 정권 유지를 위한 한 세력으로 공무원 집단을 이용하고, 공무원들은 그 우산 아래서 멋대로 부정부패하며 횡포를 일삼고 있었다. 그건 더없이 잘 어울리는 공생 관계였다. 나라를 위해 독재권력은 무너뜨려야 하고, 썩은 공무원들을 일소시키기 위해서도 독재권력은 무너뜨려야 했다. 정직하고 양심적인 공무원들도 적지 않겠지만, 어떻게 된 것이 눈에 띄는 공무원은 다 그 모양이었다.

(제10권)


8) 혁명으로 쟁취한 정권을 영광스럽게 물려받았으니 이제야말로 나라를 잘되게 하고, 올바른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얼마나 꿈에 부풀었던가. 그 제대로 된 정치 속에 친일파 세력의 척결이 포함된 것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 그들을 제거하지 않고는 나라가 바로설 수가 없었고, 사회 정의가 이루어질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 꿈이 얼마나 순진무구한 것이었는지는 곧 확인되었다. 야당에서 힘 하나 안 들이고 여당이 된 민주당은 그날부터 피 흘린 혁명의 숭고함을 배신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혁명의 나라를 강건하게 세우는 올바른 정치를 펼치는 데 총력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서로 권력을 많이 갖겠다는 탐욕을 앞세우며 파벌끼리 진흙탕 개싸움으로 나날을 지새웠다. 같은 여당의 입장에서 그 싸움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참 어처구니없고도 기가 막혔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양쪽 파벌의 수뇌부 대부분이 친일파라는 사실이었다. 그 뒤늦은 사실 확인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제10권)


9) 아참, 딱 한 사람만이 반성을 했군요. 소설가 채만식이라고, 제 책 때문이 아니고 해방이 되자마자 그 사람은 민족 앞에 죄지은 붓을 더 놀려 글을 쓰지 않겠다고 절필 선언을 했습니다. 그 사람의 친일은 이광수에 비해 몇백 분의 1도 안 되는데, 친일의 글을 쓴 것은 민족을  위해서였다고 파렴치하기 이를 데 없는 괴변을 늘어놓으며 끝끝내 반성을 하지 않았던 이광수하고는 좋은 대조가 되지요. 다른 문인들이 전혀 반성을 하지 않고 온갖 비양심적이고 해괴망측한 변명들을 해대며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뻔뻔스럽게 살아가는 데는 이광수가 반성하지 않은 것에 절대적인 책임이 있지요 왜냐하면 이광수는 친일의 거두일 분만 아니라 문단의 최고 원로였으니까요. 이광수가 민족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했더라면 그 뒤에 선후배들이  어찌 감히 말도 안 되는 변명들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제10권)


10) “이 나라 모든 분야는 친일파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보면 틀림없는 답입니다. 이 한 가지 사실만 기억하면 됩니다. 우리나라 양쪽 끝인 두만강변에서 제주도까지, 일제시대에 있었던 일본인들은 조선 총독부터 숯장사까지 다 합쳐서 80만 명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빌붙었던 친일파들은 150만 명을 넘었습니다. 그들 중에서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고 고스란히 기득권을 누리며 살고 있는 곳이 이 대한민국입니다.”

(제10권)


[손바닥으로 진실을 가릴 수 없다]

1) 보라! 갖가지 부정과 사회악이 민족적 정기의 심판을 받을 때는 왔다.  이제 우리는 대학의 양심으로 일어나노니 총칼로 저지 말라. 우리는 살아 있다. 동포의 무참한 살상 앞에 안일만을 탐할소냐! 한숨만 쉴소냐! 학도여, 우리 모두 정의를 위하여 총궐기하자.”

(제1권)


2)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저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흔히 공부벌레라고 불리고, 완력 쓰는 데는 별로 자신이 없는 이 집단이 어쩐 일인가. 이게 정의의 힘일까? 양심의 용기라는 걸까? 아니면, 흔히  말하는 군중심리일까?

(제1권)


3) 짐승도 이런 악조건에 몰아넣으면 물고 덤비게 됩니다. 하물며 사람이 어찌 참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곳 사람들은 그동안 너무 오래 참고 견디어온 것입니다. 이번 사건은 터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폭발입니다.

(제6권)


4) 빨갱이라는 누명은 유신독재 반대에 용감하게 나섰던 한 여대생을 순식간에 그렇게 허약하게 만들어버리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독재정권은 자기네를 위해 공산주의를 마음대로 악용하고 있었고, 빨갱이라는 죄목은 그 누구의 심장이든 찌를 수 있는 비수로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제8권)


5) “연대, 고대에 이어 서울대 총장까지 손을 보셨으니까 다른 대학 총장들은 군기가 바짝 들었겠군. 그나저나 총장들은 날파리 잡듯 해버리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학자라는 것들이 그 자리를 냉큼냉큼 차지하고 앉는 꼴이야. 지식인이란 것들이 아무 배알도 없이 허겁지겁 그 꼴들을 하니까 독재자가 더욱 기고만장해지는 거야. 지금까지 이 정권이 제대로 군바리 천국이라고 하지만 막상 따지고 보면 여기에 빌붙은 지식인들 숫자가 더 많다는 걸 알아야 해. 결국 지식인이란 것들이 권력에 기생해 가면서 이 나라 다 망쳐 먹고 있는 거야.

(제8권)


6) 신문사에서는 은밀하게 원 선배에게 접근해 온 일이 두어 번 있었다. 직책을 올려 우대할 테니 신문사로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이미 서너 명이 어물쩍 뒷손을 써 신문사로 다시 들어간 것에 비하면 그런 제의는 이쪽 입장이 당당해지고 자존심이 서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원 선배는 ‘너희 신문사가 망하기를 바란다’는 한마디를 던지고 돌아서 버렸다.

(제9권)


[한 맺힌 희생]

1) “내가 죽을 때 자식들한테 남길 유연이 꼭 한마디 있네. 그게 뭔고 하니, 나라를 또다시 뺏기게 되더라도 절대로 독립운동하지 말아라. 눈치껏 요령껏 사는 게 최상수다. 하고 말할 작정이야.”

 어느 날 만취한 옛 동지가 한 말이었고

“허! 그것 참 명언 중에 명언이로군. 그래. 나도 그리 해야 되겠구먼. 허허허허...”

 남편의 헛웃음은 공허하고 길었다.

(제3권)


2) 너희들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야. 사람은 누구나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어. 이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어. 그리고, 혼자만 알고 있지 말고 마음이 통하는 가까운 사람들한테 전해.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한테 전하게 하고. 그래서 같은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의 힘은 커지는 거야. 그 힘은 결국 사장들을 이길 수 있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절대로 잊지 말어.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야!”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모두가 사람답게 일하고, 다 같이 사람다운 대우를 받아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

(제5권)


3) ‘형제간들한테 짐이 되지 말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정신이 아뜩해졌었다. 그리고,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나자 가슴이 걷잡을 수 없이 뛰면서 헛구역질이 마구 솟았다. 통곡을 하고 싶은 절망감에 빠지면서.

 내가 누구 때문에 6년 동안이나 그런 고생을 했던가... 두 오빠와 동생은 누구 덕에 다 대학을 나왔는가... 다섯 식구는 그동안 누구 힘으로 먹고살았는가. 1년 365일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일을 하게 만든 짐이었던 형제들이 나를 짐으로 생각하다니... 나한테는 아무것도 갚은 것 없이 짐이라고 생각하다니... 형제들간이 나를 귀찮아하는 눈치는 얼핏 얼핏 챘었지만 어머니까지 그들의 편을 들다니... 나는 무엇인가. 내 희생은 무엇인가...

(제8권)


[나약한 존재]

1) 나도 억울하고 분한 감정 눌러가며 이모저모로 많이 생각해 봤는데, 일단 군복을 벗은 내가 사회인으로서 아무 능력도 없다는 게 문제야.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아나, 군대 경험을 써먹을 데가 있나, 그렇다고 돈이나 모아둔 게 있나. 무슨 새 기술을 배우기에도 어중간한 나이에 아이들은 커 나고..., 참 내가 이렇게 미약하고 보잘것없는 인간인지 몰랐어. 너무 기막히고 한심해서 살 마음이 없어.

(제2권)


2) 6월 초순에 공포된 농어촌고리채정리법은 8월 초순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그런데 대뜸 나타난 현상이 돈가뭄이었다. 이미 빌려준 돈이 법으로 규제를 당해 손해를 보게 된 판인데 돈푼이나 있는 사람들이 새 피해를 자초할 리 없었던 것이다. 크고 작은 돈줄이 전부 막히고 끊기면서 궁지에 몰린 것은 가난한 농가들이었다. 하필이면 한창의 농번기에 돈 구경을 할 수 없게 되어 가난한 사람들은 비료 살 돈도 구하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당장 시급한 농비를 변통할 수 없는 빈농들은 꼼짝없이 농사를 망치는 피해를 입고 있었다. 절대다수의 가난한 농어민들을 고리채라는 고질적인 빚 구덩이에서 구하자고 실시한 그 정책은 너무 서두른 나머지 시기 선택이 잘못되어 오히려 피해를 유발하고 있었다. 군인들의 생각은 추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데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제3권)


2) 연좌제에 걸렸다 하면 그 어떤 빽으로도 안 된다는 것을 유일민은 뒤늦게 알았다. 그리고, 광부로 떠나는 일에도 연좌제가 적용된다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이 불찰이었다. 남은 것은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뿐이었다. 유일민은 차라리 죽고 싶은 절망에 빠졌다.

(제4권)


3) 사내답지 못하다는 것... 남자답지 못하다는 것... 고등학교 시절에 신물나게 들었던 그 말을 그는 또 생각하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걸핏하면 그 말을 쓰곤 했는데 특히 선생님들은 걸핏하면 그 말을 쓰곤 했는데 특히 체육선생님들은 심했다. 힘이 약한 애들은 힘이 약한 것도 서러운데 운동을 잘 못한다고 체육시간이면 맨날 구박을 받아야 했다.

 물론 학교에서만이 아니었다. 무슨 일에 겁을 내거나, 내키지 않는 일을 피하려 하면 집에서나 동네 어른들이나 서슴없이 사내답지 못하다거나 남자답지 못하다는 퉁을 놓았다. 사내답기 위해서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삼켜야 했고, 남자답기 위해서 억지 기운을 쓰거나 거짓 용기를 낸 경험이 없는 남자는 아마 하나도 없으리라 싶었다. 그건 여자들과 달리 남자들이 겪는 고통이고 시달림이었다.

 그러나 사회인이 되면서 그 기준은 더욱 확대되었다. 기운 세고, 씩씩하고, 담이 크고, 용감해야 하는 데다가 사회적 능력까지 덧붙여지게 되는 것이다.

(제7권)


4) 신문과 통신을 사전 검열하는 계엄 상황의 위험을 감지하는 촉수는 그렇게  예민했던 것이다. 그 본능적 예민함을 십분 이용하며 그들은 자기네 목표를 향하여 질주하고 있는 거였다. 군대를 앞세운 국가적 폭력 앞에서 개개인들은 얼마나 허약한가. 그 허약함을 단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다수가 만들어내는 침묵이었다. 그러나 개개인만 침묵하는 것이 아니었다. 신문들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침묵하고 있었다. 신문들의 침묵은 대중들의  침묵을 낳고, 그 침묵은 독재가 거침없이 뿌리를 뻗어 가게 해주고 있었다.

(제7권)


5) 정동진은 낭떠러지 끝에 몰려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 했다. 사업이 잘 풀려나가는 동안 술을 마신 사람들도 많았고, 명함을 주고받은 사람들은 더욱 많았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단 하나도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뭇가지는 고사하고 풀 한 포기 없는 낭떠러지 끝에서 아래로 굴러 떨어져 곧두박일 수밖에 없는 막다른 상황이었다.

(제7권)


6) 다음날 한인곤은 그들이 시키는 대로 옷을 챙겨 입었다. 옷을 한 가지씩 입으며 한인곤은 자꾸 눈물이 나려는 목메임을 느끼고 있었다. 이곳에 끌려와 옷이 벗겨진 이후로 처음 입는 옷이었다. 옷의 기능이 단순히 추위를 막는 것이 아니고, 멋을 부리기 위한 것은 더구나 아닌 것을 그는 이번에 절실하게 깨달았다. 옷으로 수치를 가리고 위신을 보호한다는 것은 옷의 기능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옷을 벗겨버리는 것, 그것은 또 하나의 잔혹한 고문이었다.

(제7권)


7) 그 사건 이후로 인간이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가를 새롭게 체험하고 있었다. 매일 세 끼를 먹어야 한다는 것. 그 기본이 깨졌을 때 인간은 허약하기 이를 데 없는 동물이 되었다. 사흘 굶어 남의 집 담 안 넘어갈 사람 없다는 옛말은 먹는 것의 절실함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박봉이었던 기자 월급은 저금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없게 했고, 그들이 내몰리기 바쁘게 굶어야 하는 위협을 가해왔다. 하루하루 쪼들림이 심해져온 7개월은 긴 시간이었고, 먹이를 구하는 것이 다급해진 상황에서 그들의 투지는 창백해지고 있었다.

(제8권)


8) 그때부터 고사작전은 줄기차게 이어져온 것이었다. 그렇다고 자식들을 굶겨죽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슨 짓을 해서든 자식들의 입에 밥을 떠 넣게 해야 했고, 살아남아 새로운 세상을 보아야 했다. 그래서 낯설고 거친 밥벌이들을 찾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옷장사, 과일장사, 생선장사, 종이장사, 명함 장사, 돌가루 장사, 그림 장사, 월부 장사, 글 장사 등 닥치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검은 손도 그런 것까지 막을 도리가 없었다.

(제8권)


9) 철없는 아들에게 애비 노릇을 못하는 것은 그때마다 가슴 아리고 마음을 그늘지게 했다. 특히 유치원에 보내지 못했을 때는 그 괴로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때 불현듯 언론 투쟁에 나섰던 것 없이 독재는 건재하고 있었고, 신문사에서는 딴사람들을 받아들여 보란 듯이 신문을 찍어내고 있었다. 그런 철벽의 현실 앞에서 자유언론의 깃발을 들었다는 것은 정말 갈 데 없는 돈키호테이었는지도 몰랐다.

(제9권)


[인간적인 고뇌]

1) 아무 결론 없이 맴돌이질하는 갈등 속에서 기차가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괴로움은 커지고 있었다. 아니, 결론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 결론대로 따르자면 바로 닥치는 것이 서울에서의 생존과 공부의 위협이었다. 그렇지만 데모에서 목숨을 버린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건 치졸한 변명일 뿐이었다. 그 죽음의 뜻을 살리고, 살아남은 자로서 부끄럽지 않으려면 선거운동을 거부하고 장학사를 스스로 걸어 나와 고생을 무릅쓸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용기를 발휘하지 못하고 비겁한 굴종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이규백은 동료들도 자신과 똑같은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의식하며 깊은 한숨을 또 가슴에 되묻고 있었다.

(제2권)


2) 골목을 벗어나자 예비군복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모자를 바지 뒷주머니에 찌르거나 한 손에 구겨진 사람들도 더러 보였다. 그 멋대로 흐트러진 모습에서 최주한은 소리 없는 저항을 느꼈다. 자신도 모자를 벗어 바지 뒷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제6권)


3) 세상은 좀 참고 굽히고 살아야지 모나게 살 게 없다는 것이 아버지의 생각이기도 했다. 그건 평범한 사람들이 으레 체득하고 있는 약한 체세관이고 생활관이었다. 역시 그대로 따랐더라면 오늘의 어려움이 생겼을 리 없었다. 그런 식으로 신문사에 남은 기자들은 빈자리를 채우고  올라가며 그야말로 출세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자신이 취한 행동에 대해서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러니까 더 옹색하고 죄스러울 뿐이었다.

(제9권)


4) 이규백은 다시 김지혁 판사를 생각했다. 만약 그 선배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 변호사를 고려할 것도 없이 법조계를 완전히 떠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때 벌어진 사법파동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박 정권이 사법부를 손아귀에 넣고 꼭두각시를 만들고자 했던 의도가 감추어진 전체의 문제였는데도 그 선배는 단호하게 법복을 멋고 이민을 떠나버렸다. 그 선배는 그때 이미 사법부의 독립이란 가망 없다는 것을 꿰뚤어보았던 것이다. 정권과의 관계에서 법집행의 한계에 얼마나 절망했으면 그 선배는 이민을 가서 식품점을 했을 것인가. 그런데 자신은 개인적으로 그런 배신과 모독을 당하고서도 법조계를 떠나버릴 결심을 하기는커녕 두 가지 중에 하나도 결정을 못하고 있었다.

(제9권)


[개천에서 용 나는 이유]

1) 모르는 소리 하지 말어. 난 죽어도 공부는 포기 안 해. 이런 데서 평생을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아. 난 어떡하든 공부를 해서 아버지처럼 살지는 않을 거야. 아버지처럼 살지는 않을 거야...

(제2권)


2) 깁고 또 기워 입은 속옷과 달리 겉으로 드러난 가난은 큰 괴로움이고 고통이었다. 그렇잖아도 창피스럽고 부끄러운 것을 참고 견디기 어려운데 남들에게 자꾸 놀림감이 되고 업신여김을 당하게 되면서 창피스러움과 부끄러움은 괴로움과 고통으로 변해갔다.

(제2권)


3) 고등고시 합격을 확인하는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아버지였고, 고향에 내려갔을 때 어머니도 아버지를 부르며 흐느꼈다. 아버지는 출중한 농부였으면서도 자식들에게는 절대 농사를 물리려고 하지 않았다. 모든 농부들이 그렇듯이 아버지도 평생 당하고만 살아온 미천한 신분을 억울해하고 한스러워했던 것이다.

(제4권)


4) “그까짓 건 한두 문제 틀린 거로 백지 한 장의 차이야. 날 보라구, 날. 마흔인 나도 버티고 있는데 겨우 서른밖에 안 된 사람이 왜 그래. 여기서 포기하는 건 말야 노다지를 한 자 앞에다 두고 곡괭이를 던져버린 광부와 같다구. 고등고시 합격! 그건 평생 파먹어도 되는 노다지라구. 뻔쩍뻔쩍한 황금의 광맥! 그 얼마나 황홀해. 힘내라구.”

(제6권)


5) 고등고시는 몇십 대 일이 아니라 몇백 대 일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하늘의 별 따기가 바로 그것으로, 한 사람이 합격해서 웃으면 수백 명은 낙방해서 울 수밖에 없었다.

(제6권)


6) “... 우리나라의 대학을 왜 우골탑이라고 합니까? 무식한 농사꾼들이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소까지 팔아 자식들을 대학에 보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의 교육열은 그렇게 열광적이고 지독합니다. 농사꾼들만이 아니라 서울 사람들이 더 심한 것은 말할 것이 없습니다.

(제8권)


[인생의 진리]

1) 누가 여러분한테 턱없이 많은 돈을 주며 손쉬운 심부름 같은 것을 시킨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여러분을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무서운 함정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이 세상에서 쉽게 벌리는 돈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리고, 공짜로 생기는 돈도 절대로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점 명심하고, 여러분들이 손수 땀 흘려 버는 돈만이 여러분의 돈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헛된 욕심 갖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6권)


2) “...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은 자기의 인생 목표를 자기 스스로 정하고,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꾸준히 노력한다는 점이다. 모든 인간에게 자기 인생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다. 그러므로 노력하는 고통도 그리고 그다음에 오는 성취의 행복과 기쁨도 오로지 그 사람의 것이다. 여자라고 주저하거나 못할 것이 없다. 난 의사가 될 작정이다...

 언니의 편지는 커다란 위안이고 힘이었다.

(제6권)


3)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순간적으로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서라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제7권)


4) 곰곰이 생각해 보니 두부장수들이 울리는 종소리라는 게 하루 이틀에 예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아침저녁으로 골목골목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두부장수들이다 하고 세상 사람들이 알아듣게 된 것은 오랜 세월이 걸린 것이었다.

(제8권)


5) 민청학련 사건의 선고 공판 때였다. 사형 선고를 받는 순간 한 대학생은 ‘영광입니다’하고 외쳤다. 그 순간 법정은 얼어붙고 말았다. 그런데, 그 법정의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학생도 같은 대학의 법대 선후배 사이였다. 그 법정에서 그야말로 영광스러운 승리자는 그 대학생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비겁한 패배자였다. 그 이야기는 법조계에서 금방 퍼져 모든 판검사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고 있었다.

(제8권)


6) 술은 세상사의 괴로움이나 고통에 대하여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일시적인 망각제나 도피처 역할은 해주었다. 특히 악몽을 피할 수 있는 수면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서 감정을 토해내는 것도 괴로움과 고통이 덜어지는 것 같은 착각의 효과를 나타내기도 했다. 또한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묘해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끼리 술잔을 나누며 속 깊은 하소연을 하고 나면, 실제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마음은 다소 편해지고 또 하루를 살 수 있는 위안을 얻기도 했다.

(제8권)


7) “너희가 저지르는 가장 큰 죄는 무작정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김기돈은 책에서 읽은 코란의 한 구절을 생각하고 있었다. 지당한 가르침이고, 지고한 일깨움이었다.

 그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하면서 자기에게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일은 없다고 했다. 20여 분 동안 알라신께 죄짓지 않고 살겠다고 약속하고, 더불어 화평하게 살겠다고 다짐하고, 실천해야 할 코란의 구절구절을 염송 한다고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다섯 번씩 기도하며 평생을 살다 보면 이마에 군살이 박힌다고 했다.

(제9권)


[리더란]

1) “왜 조지 워싱턴을 위대하다고 하겠어. 국민 여론이, 나라를 위해 당신은 대통령을 세 번 해도 된다고 했을 때 워싱턴은 단호하게 말했어. 나는 대통령을 세 번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차후에 나보다 못한 자가 나를 빙자하여 세 번 하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자 한다. 그래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룩된 거야.”

(제5권)


2) ”자아, 자네한테 한 가지 물어볼까? 박 통(박정희 대통령의 줄임말)이 최고회의 의장으로 앉아 민정이양을 몇 번씩 반복하다가 결국 ‘혁명공약’을 어기고 대통령이 됐고, 또 헌법까지 날치기로 통과시켜 3선 개헌을 했을 때, 그때마다 최측근으로서 반대의사를 굽히지 않은 게 누군지 아나?”

 “그 사람이 박태준이란 말입니까?”

 답이 뻔한 유도형 물음인데도 이상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머리가 복잡하게 몇 가지 생각이 동시에 뒤엉켰다. 그건 사안의 성격으로 보나, 그 조직의 특성으로 보나 반대가 용납될 리 없는 일이었다.

 “응, 그 사람은 국민과의 약속인 ‘혁명공약’을 어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고, 더구나 국가의 기본법인 헌법을 마음대로 뜯어고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대했던 거지.”

 “그래서 미움을 사 정치와 권력에서 멀어진 겁니까?”

 “아니야, 그렇게 빨리 가지 말어. 오히려 그 반대야. 박 통이 정식으로 청와대 주인이 되자 그 측근들은 다투어 권자를 차지하기에 정신이 없었는데, 그 사람은 미국 워싱턴대학으로 유학 갈 준비를 하고 있었어. 하도 이상해서 내가 굳이 찾아가 물어봤지. 지금 자네가 물은 것처럼. 미운털 박혀서 바다 건너 유배 가는 거냐고, 그랬더니 말없이 웃다가 하는 말이, 자기 혼자서라도 군대로 북귀하고 싶은데 그동안 정치판에서 순수한 군인정신을 너무 더럽혔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는 거야. 그래서 생각다 못해 새 길을 찾아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는 거였어. 그때 박 통은 공천 자리를 하나 비워놓고 그에게 고향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라고 종용하고 있었어.”

(제7권)


3) “그 돈을 손쉽게 정치자금으로 이용해 먹으니 주인 없는 회사 꼴이 어찌 됐겠어? 층층이 해 먹느라고 정신없어 회사는 썩고 썩어 만년 적자에 빠져 있었지. 박태준은 그런 회사를 맡아 1년 만에 흑자 회사로 돌려놓았어. 그 비결이 뭐지 알아? 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채굴 현장으로 가서 1천 미터 이하의 갱 속으로 직접 들어간 거야. 전임 사장들이야 갱은 고사하고 현장에도 와보지 않았는데. 우스운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어. 박태준이 포철로 옮기고 신임 사장이 현장 시찰을 나왔지. 현장소장은 박 사장 때 했던 것처럼 신임 사장을 갱으로 들어가는 승강기에 태웠지. 그랬더니 어떻게 됐겠어? 신임 사장이 노발대발, 난리가 난 거야. 현장소장은 정반대의 상황 속에서 두 번 진땀을 뺀 거지. 박태준은 그런 사람이야.”

(제7권)


4) 차가 멈춘 곳은 공장지대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어떤 단층 건물 앞이었다.

 “이것이 유치원입니다.”

 “유치원이라니요?”

 “직원 아이들을 위해 2년 전에 지은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라고 요구하지 말고 먼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라’ 하는 사장님의 경영론에 따른 것입니다. 이 둘레에 심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도 다 사장님이 고르신 겁니다.”

(제7권)


5) “예, 사장님께서는 교육시설보다 주택문제를 우선시합니다. 단 한 명의 직원도 주택 불안을 겪게 해서는 안 된다는 계획이니까 계속 지어나갈 겁니다.”

 “계획은 더없이 좋은데 그래 가지고 회사가 운영이 될까요?”

 “예, 잘될 겁니다. 사원복지 잘해서 망하는 회사는 없다는 게 사장님 신념이고, 우리 회사는 벌써 1년 경영의 흑자를 예상해 놓고 있습니다.”

(제7권)


6) “작년에 있었던 일인데, 호랑이 눈썹도 뽑는다고 소문난 실세 중의 실세인 박 모라는 사람이 인사청탁을 하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걸 비서한테서 받아 든 사장님은 봉투를 뜯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박박 찢어 휴지통에 던져버렸습니다. 질겁을 한 비서는 그게 박 모의 편지라는 걸 다시 환기시켰습니다. 그러나 호통만 맞고 쫓겨났지요. 그 소문이 퍼진 뒤로 정치권의 인사청탁은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습니다. 공채 때 인사청탁이 들어오면 그 사람 이력서는 미리 빼내버리는 것은 처음부터 해온 일이고요,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사장님은 효자로 소문나신 분입니다. 언젠가 고향으로 부모님을 뵈러 가셨는데, 큰절을 올리고 나자 사장님의 아버님께서 어렵게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문중의 누군가를 포철에 좀 데려다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사장님은 아무 대꾸도 없이 마루 끝으로 돌아앉아 구두끈을 매고 대문을 나섰습니다.

(제7권)


7) “참, 말을 듣고 보니 더 믿기가 어렵군요. 사장님은 계속 여기 계십니까?”

 “예, 부득이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여기를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실 때는 새벽 2시에 순시 도는 것을 하루도 빼먹은 적이 없습니다. 부지 공사 때 흙먼지 뒤집어쓴 사장님 모습을 어떤 수녀님이 보시고 ‘흙 강아지’ 같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흙 강아지’가 별명이 되고 말았는데, 사장님도 그 별명을 좋아하십니다.”

 “흙 강아지...”

(제7권)


8) 이상재는 앞에 커다란 쇳덩이가 버티고 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그 쇳덩어리는 견고함과 무게감과는 달리 변함없이 ‘저는... 저는...’하는 겸손을 보이고 있었다.

(제7권)


9) “사장님 숙소에서 ‘짧은 인생 영원 조국에’라는 좌우명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인생관과 애국심이 형성된 것입니까?”

 “이런, 숙소까지 가보셨습니까! 그게 그러니까... 저의 유학 시절에 아까 말씀드렸던 아스오카 선생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선생은 ‘공적 사회적 임무를 맡은 사람은 사심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지식과 실천이 일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감명 깊게 가슴에 박혔고, 해방이 되어 제 나름으로 진로를 고심하다가 나라를 위해 한평생 살기로 결심하고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제7권)


10) “인도의 간디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던 것처럼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는데, 간디는 인도의 독립운동을 이끌어 영국으로부터 인도를 독립시켰기 때문에 ‘인도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간디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비폭력 저항’이라는 독립투쟁 방법을 세계 최초로 실행했기 때문입니다. 비폭력 저항이란 무기를 든 영국군을 향하여 인도의 독립 대원들이 아무것도 갖지 않은 맨몸으로 덤벼 항의하고 독립을 외쳐대는 것입니다. 무장을 했지만 수가 적은 영국군은 자기네보다 수십 배가 넘는 인도 사람들을 해산시키려고 공포를 쏘아대고, 그에 맞서 인도 사람들은 ‘영국군 물러가라!’를 더 크게 외쳐대고, 그러다 안 되니까 영국군은 개머리판이나 몽둥이로 인도 사람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합니다. 그때 인도 독립 대원들은 맨주먹으로 맞서 싸우는 육박전을 하는 게 아닙니다. 때리는 대로 맞고 피 흘리며 쓰러집니다. 그럼 그 사람들을 끌어내고 다음 사람들이 앞으로 나섭니다. 그러는 동안 쓰러진 사람들은 여자 간호대가 치료를 합니다. 중상자들은 빼고 경상자들은 붕대를 감거나 붉은 약을 바른 몸으로 다시 줄을 서  영국군을 향해 듭니다. 부상자들이 다시 덤벼들고 또다시 덤벼들고... 결국은 영국군들이 질려버리고 맙니다. 그러한 독립투쟁이 인도 곳곳에서 일어났고, 그 세계 최초의 육탄 투쟁은 외국 기자들에 의해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각 나라 사람들은 그 희한한 육탄 투쟁에 놀라는 한편으로, 세계 여론은 비무장인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해 대는 영군군을 지탄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영국은 인도에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고, 인도는 우리보다 2년 뒤인 1947년에 독립을 이룩하게 되었습니다.

(제8권)


[책장을 덮으며]

할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지독한 가난에 아버지의 형제자매도 어린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일을 하셨다.

그렇게 작은아버지의 공부를 뒷바라지하셨다고 한다.

부모님의 신혼방은 대각선으로 누워야 발을 펼 수 있었다고 한다.

나의 어릴 적 시절도 부유했던 기억은 없다.


부모님은 나를 열과 성을 다해 교육을 시키셨고,

그래서 나는 성공할 수 있었다.


그 사이 부모님은 나이가 드셨다.

이제는 편하게 인생을 즐기셔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 못하다.




소설 ‘한강’에는 부모님 세대의 희생과 고난이 녹아있다.

그 희생과 고난이 있었기에,

지금의 경제적 풍요가 있을 수 있었다.


부모님 세대의 헌신이

지금의 자유를 일구어 냈다.


대한민국은 열심히 살아가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소설 ‘한강’은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 나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후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이 될 것인가?’


일제시대의 억압과

광복 전후, 6.25의 혼란,

그리고 경제성장기의 희생을 넘어서.

우리는 자유와 정의, 그리고 창조를 일구어낸 세대로 나아가고 있다.

자유와 정의, 그리고 창조를 지켜나가는 것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역사적 소명이라 생각한다.


2019년 아리랑,

2020년 태백산맥,

2021년 한강.

햇수로 3년에 걸쳐 읽었던 조정래 작가님의 장편소설은 나에게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역사관을 세워주는 매우 소중한 길잡이였다.


+ 아리랑

+ 태백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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