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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Aug 27. 2021

벽을 쌓고 산다는 것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신축 아파트가 생겼다.

무엇보다 놀이터가 참 좋았다.

덕분에 아이들은 신축 아파트 놀이터에서 재미있게 놀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신축 아파트의 모든 출입구에 철문이 설치됐다.

철문에는 ‘외부인들의 출입으로 소음 민원이 발생하여 출입문을 설치합니다’라고 적혀있었다.


하긴.. 우리 아이들이 많이 시끄럽기는 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출입문이 닫힌 날, 우리 아이들은 딱 이런 모습으로 한참을 서 있었다. (KCC건설 스위첸 광고 중)


그날부터 아이들은  밖에 나가지 않았다.

우리 가족이 살던 구축 아파트 놀이터는 시시했고,

차가 많이 다녀서 아이들에게 위험했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났고,

우리 가족은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던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아이들은 다시 만난 놀이터에 너무나도 즐거워했다.

신축 아파트에 거주하며 체감하는 경제적 부담감은 커졌지만,

매일 놀이터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이사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문제는 며칠 전 저녁에 발생했다.

장을 고 집에 가는 길에,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우산은 었고, 양팔에는 저녁거리가 한가득 들려 있었다.

 와중에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는 철문이 나를 가로막았다.

핸드폰으로 블루투스 인증을 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두 팔은 이미 장 본 음식들을 한가득 들고 있어서

핸드폰을 꺼낼 수도 없었다.


한 두 방울 내리던 비는 소나기로 바뀌어 있었고,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낑낑 거리며 입력하는 비밀번호는 자꾸만 틀리다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순간 욕이 나올 뻔했다.

(어쩌면 나왔을 수도 있다.)


[내가 사는 곳에 인증을 받고 들어가야 하다니…]


구획하는 행위

뉴스를 보았다.  아파트 주민들이 자기네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 사이에 담을 설치했고, 결국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단지를  돌아서 등교하고 있다고 했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렸다. 씁쓸한 생각이 밀려들었다.  자꾸 나누고 구획하려는 걸까. 인류의 불행  상당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선을 긋는 행위에서 비롯되지 않던가.

- 사랑은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다 (이기주 지음) -


구획하고 담을 쌓는 행위는

순간 안전하고 편안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가 구획하고 담을 쌓는 행위로 인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언제까지고 내 구역이

남들보다 더 좋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내가 베풀어 준 만큼, 언젠가는 보답을 받는다.

내가 마음을 연 만큼, 상대방도 마음을 연다.


담을 허무는 일이,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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