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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사 Dec 07. 2021

사과를 강요하는 사회

서대문구 미용실 사건.

전단지를 우편함에 넣은 70대 할머니를 무릎 꿇고 사과하게 한 일이 각종 매체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전단지 할머니가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모습]

(+관련기사)


사건을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미용실 우편함에 전단지 배부 아르바이트를 하던 할머니가 전단지를 넣었고, 미용실 사장은 할머니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우편함에 전단지를 넣은 것이 얼마나 큰 잘 못 일까? 전단지를 배부한 업체에서도 사과를 했다고 하는데, 굳이 전단지 할머니를 오라고 해서 무릎을 꿇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미용실 사장이 말했던 할머니의 태도는 논외로 한다.)


바야흐로 ‘사과를 강요하는 시대’다.

인사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

“너 왜 나한테 인사 안 해?”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꼰대라고 한다.


인사는 아랫사람이 높은 사람,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높은 사람도 나이 많은 사람도 누구나 먼저 인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과도 마찬가지다.

타인에게 사과를 강요하기에 앞서,

먼저 용서를 하거나 이해해 주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용서하고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사과를 강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당신이 먼저 사과를 하면, 내가 용서를 해주겠다.’와 같은 조건부 용서는 진정한 용서가 아니다.

특히 이번 서대문구 미용실 사건처럼 사과를 받아 내고자, 공권력이나 타인의 힘을 빌린다면 더더욱 제대로 된 사과와 용서가 아니다.


그저 본인이 상대방을 굴복시키겠다는 또 다른 갑질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갑질은 결코 많은 권력과 금력을 가진 사람들만 저지르는 게 아니다. 그건 상대적이거니와 다단계 먹이사슬 구조로 되어 있어 전 국민의 머리와 가슴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삶의 기본 양식이다. 즉, 이른바 ‘억압 이양의 원리’에 따라, 상층부 갑질의 억압적 성격은 지위의 고저에 따라 낮은 쪽으로 이양되는 것이다.
-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강준만 지음)-




회사 일을 하다가도 강요된 사과, 조건부 사과를 종종 접하게 된다.

‘내가 OO에 민원 넣었어. 그러니깐 ㅁㅁ보고 나한테 사과하라고 그래. 그럼 없던 일로 해줄게.”

이런 경우는 쌍방과실인 경우가 많다.

본인도  못을 했지만, 상대방도 잘못을 했으니, 사과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강요된 사과를 통해 잠시라도 우월적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마음인 것이다.


강요하는 사과.

절대 사과할 수 없다는 당사자.

풀리지 않을 것만 같던 이 문제는 비교적 간단히 해결될 수 있었다.

사과를 할 수 없다는 당사자의 상사가 사과를 강요하는 이에게 사과를 했다. 진심 어린 마음으로 사과를 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고. 내가 책임자인데 회사를 대표해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강요된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조건부 사과도 사과가 아니다.

진심이 담긴 자발적 사과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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